오스만 술탄의 여인들이 살던 곳, 하렘
오스만 술탄의 여인들이 살던 곳, 하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9.30 08: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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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내전 개념과 이슬람의 일부다처제가 결합한 제도

 

우리가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의 하렘을 둘러볼 때 여성 가이더는 하렘이 여성 노예들이 머물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 가이더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하렘의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가이더가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오스만투르크를 야만인으로 보던 서유립인들의 시각을 읽었고, 그 정보를 관광객들에게 전해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중세와 근대에 서유럽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집요하게 공격당했다. 이탈리아 해안가 백성들은 오스만에 복종하는 이슬람 해적들에게 끌려가 북아프리카 목욕장에 갇혀 중노동을 했다. 당대 유럽의 최강대국 오스트리아는 두차례나 오스만에 의해 수도 빈을 공격받았다. 그런 유럽인들의 악감정이 오스만의 하렘제도를 여성노예의 소굴로 그렸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오스만의 하렘을 성적인 판타지와 비극적 분위기로 묘사했다. 동방 사회에 대한 신비의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던 서양의 화가나 작가들이 유행처럼 하렘을 노예로 팔려와 성적 노리개가 되고 평생 감옥 같은 궁전에서 눈물을 흘리며 갇혀 산다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프랑스 화가 도미나크 앵그르가 그린 하렘 그림 /위키피디아
프랑스 화가 도미나크 앵그르가 그린 하렘 그림 /위키피디아

 

물론 현대적 양성평등주의 개념으로 보면 여러 여인을 갖는 오스만의 술탄이 악의 화신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당대의 시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땐 그랬다. 동양의 후궁제도와 다를 게 없었고, 조선시대 임금도 후궁을 자기마음대로 취했다. 조선조 왕실 여성들의 권력다툼이 우리가 흔히 보는 역사드라마였다. 하렘 제도는 동양에서 발원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오스만의 독특한 제도였다고 보면 무난할 것 같다.

하렘(Harem)은 술탄의 어머니와 여인들이 살던 곳이다. ‘금지라는 뜻의 아랍어 하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외부와 격리되어 술탄 가족에게만 개방되는 곳으로, 조선시대 내전에 해당한다. 일반 남자의 출입이 금지된다.

원래 술탄의 하렘은 톱카프 궁전이 아닌 별궁에서 살았지만, 슐레이만 대제가 총애하는 왕비 휴렘이 화재를 빌미로 톱카프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후궁과 황자들은 별궁에서 지내던 전통이 깨어지게 된다.

이후부터 술탄이 죽으면 옛 술탄의 어머니와 여자형제, 후궁과 노예들이 옛 궁전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술탄이 톱카프의 하렘을 차지하게 되었다. 슐레이만과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다는 휴렘의 욕심은 하렘의 입김이 지나치게 세지고 이후 술탄들이 하렘에 틀어박혀 정치를 멀리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슐레이만 대제 이후 하렘은 계속 증측되어 250개의 방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지게 되었다. 술탄과 왕자, 환관 이외에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다양한 인종의 젊은 여자들이 살고 있었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처녀들만이 선발과정을 거쳐 들어갈수 있었기에 하렘의 입성은 명예로운 일이기도 했다. 술탄에게 선물로 바쳐지거나, 전리품으로 잡혀온 여자들, 노예시장에서 딸려온 여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시종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쳐 이슬람 규율을 배우고 온갖 기예를 배우며 이른바 완벽한 여자로 길러졌다.

모든 여자들이 술탄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 과정이 끝나면 지참금을 받아 시종 출신의 고위인사들과 결혼하기도 했다.

톱카프 궁전의 하렘은 일부 방만 공개하고 있는데, 푸른 타일의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 벽화등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에 창마다 달려 있는 창살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의 공간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하렘에는 꽃과 과일이 그려진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아즈닉 타일 장식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왕자들이 머물던 공간은 새장이라는 뜻의 카페스(Kafes)라 불렸다. 오스만 제국 초기에는 왕자들이 지방도시를 맡아 다스리며 통치능력을 키웠지만, 마흐멧 3세 이후 이 제도가 사라지면서 왕가들은 하렘에서 머물게 된다. 사실상 하렘에 유폐된 왕자들은 황태자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 여겨져 처형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자신이 술탄이 될 때에야 하렘 밖으로 나갈수 있었다. 이른바 형제 살해다. 한사람이 국왕(술탄)이 되면, 그의 형제가 죽어나가야 하는데, 그들은 죽기전까지 하렘에서 살았다.

 

하렘 내부. 술탄의 어머니와 시종들. /위키피디아
하렘 내부. 술탄의 어머니와 시종들. /위키피디아

 

하렘 안에는 궁전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다양한 계급의 여성이 있었다. 또 술탄의 어머니와 누이, 부인을 비롯해 하렘의 여성들은 오스만 제국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곤 했다. 하렘을 다스리는 가장 큰 어른은 재위중인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Valide Sultan)으로 자기 아들의 즉위 여부에 따라 그 지위가 달라졌다. 발리데 술탄은 오스만 왕실의 상징이자 통솔자로 술탄과 그의 부인들, 왕자들을 관장하는 권한까지 가지며 오스만 제국의 정치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발리데 술탄의 허가 없이는 어떤 이도 하렘에 들어오거나 나갈수 없었으며, 후궁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존속과 왕실가족의 시중을 위해 아름답고 똑똑한 궁녀는 필수적이었다. 이들은 유럽이나 발칸 지역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오기도 했지만, 제국 내에서 궁녀를 모집하기도 하고 이웃나라에서 정략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온 소녀들은 궁녀로서의 능력에 따라 경력을 쌓으며 등급을 높이다가 나이가 들면 거액의 퇴직금을 받으며 은퇴를 했다.

궁녀보다 한단계 높은 계급으로 술탄과 잠자리를 같이한 여인은 애첩인 괴즈데(Gozde) 또는 익발(Ikbal) 이 되어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술탄의 아들을 낳은 순서에 따라 네명까지 있었던 카든(kadin) 은 왕실의 특권을 누릴수 있는 계급이었다. 특히 황태자의 어머니는 미래의 발리데 술탄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런 여인들의 뒤에는 톱카프 궁전의 흑인 환관들이 있었다. 특히 하렘을 관장하는 흑인 환관장은 크를라르 아아시(Kizlar Agasi)라 불리며 재상 다음의 2인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탄과 밀접한 신뢰 관계를 쌓으며 술탄의 의중을 파악할수 있었다. 환관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기 십상이었다. 특히 술탄의 여인들이 섭정에 나섰던 시대에는 유능하고 유식한 어린 술탄들을 좌지우지하면서 정치불안을 초래하기도 했다.

 

톱카프 궁전의 하렘 입구 /위키피디아
톱카프 궁전의 하렘 입구 /위키피디아
톱카프 궁전의 하렘 내부 /위키피디아
톱카프 궁전의 하렘 내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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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6-03 10:54:41
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