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금단현상이 빚어낸 에콰도르 시위
포퓰리즘 금단현상이 빚어낸 에콰도르 시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0.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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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 정부, 국가부도 피하려 유류보조금 폐지…제2의 베네수엘라 되나

 

포퓰리즘은 달콤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에서 돈을 지원받는다. 부자와 기득권자들이 독식하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쓰는 줄 착각한다, 경제가 잘 굴러갈 때는 포퓰리스트 정책은 그럭저럭 버텨낸다. 정권이 유지된다.

하지만 정부의 곳간이 비면 포퓰리즘도 끝난다. 외국인들은 돈을 갚으라고 한다. 정부는 펑펑 쓰던 국가예산을 줄여야 한다. 국민들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런데 포퓰리즘의 달콤함에 젖어있던 국민들은 정부가 왜 복지비용을 줄이느냐며 항의한다. 일종의 금단 현상이다. 정부가 아무리 설명해도 국민들은 듣지 않는다. 결국엔 폭동이 일어나고 정권교체를 요구한다.

 

10년 포퓰리즘의 단물이 끝난 나라의 실체를 보여주는 곳이 적도 선상에 있는 남미 에콰도르(Ecuador).

에콰도르에서는 지난 3일 정부가 유류보조금을 폐지하자 일주일 이상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도로를 봉쇄하고 경찰관들을 무장해제시켰다. 레닌 모레노(Lenín Moreno) 대통령은 시위대를 피해 수도 키토에서 벗어나 지방으로 도망쳤다. 죽은 자가 5명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체포된 사람만 800, 부상자도 400명이나 된다. 사망자가 나오면서 시위는 격화하고 있다. 시위대는 죽은 사람의 관을 들고 거리로 행진하고 있다.

 

사망자의 관을 둘러메고 키토 시내를 행진하는 에콰도르 시위대 /알자지라 방송 캡쳐
사망자의 관을 둘러메고 키토 시내를 행진하는 에콰도르 시위대 /알자지라 방송 캡쳐

 

시위의 원인은 기름 값이다. 정부가 그동안 국민들에게 베풀던 유류보조금을 없앤 것이다. 에콰도르는 1970년 이래 정부예산에서 매년 13억 달러의 유류보조금을 지불해 국민들의 기름값을 보조해줬다. 그런데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한 모레노 정부가 연초에 IMF에 구제금융 42억 달러를 요청하고, 재정적자를 개선하는 조건으로 각종 정부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류보조금이 폐지되면서 기름값이 지난 3일 이후 두배나 뛰었다.

기름값 인상은 국민들에게 휘발성 높은 이슈다. 1998년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IMF의 요구로 유류보조금을 없앴다. 기름 소비자가격이 70% 인상되었고, 이를 참지 못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30년간 집권한 수하르토를 물러나게 한 적이 있다.

나라가 부도가 나면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금모으기를 하지 못할망정 그동안 지원받던 각종 복지혜택이 줄어든 것을 인내해야 한다.

에콰도르 국민들도 정부지원 중단에 금단현상을 일으키며 시위에 나섰다.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기름값을 원상복귀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인종적 갈등도 노출되었다.

 

에콰도르 위치 /위키피디아
에콰도르 위치 /위키피디아

 

에콰도르는 면적 28, 한반도의 1,3배쯤 된다. 1인당 GDP6,600달러로 최빈국은 아니다. 이 나라의 갈라파고스 제도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열대 자원도 많다.

인구는 17백만 정도다. 인구구성은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70%, 흑인 7%이고, 스폐인인 후손인 백인이 7%에 불과하다. 역대 대통령과 집권자들은 거의 백인이었다. 정치인들 중 부패혐의로 구속된 사람들도 많다. 시위자의 대부분이 원주민이다. 시위가 백인 정권에 대항하는 성격을 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너네들이 다 해먹고 이제와서 우리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우느냐는 심리가 원주민 사이에 팽배하다.

이 나라에는 석유가 난다. 많이 나지 않지만 OPEC에 가입되어 있다. 석유가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고, 국유화되어 있기 때문에 세수의 상당액을 석유에서 뽑아낸다.

 

그런데 왜 산유국 에콰도르가 IMF에 손을 벌리고, 기름 보조금을 없애야 했을까.

그 이유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10년 이상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포퓰리스트 정책을 남발하며 재정적자를 키워 왔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 대통령이 있다. 그는 20071월부터 20175월까지 10년동안 대통령 직을 수행했다.

코레아는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베네수엘라의 반미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우고 차베스(Hugo Chávez)를 지지해, 남미에서 2의 차베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코레아는 ‘21세기 사회주의’(21st century socialism)를 주창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코레아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좌파 성향의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땄다.

코레아는 2005년에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코레아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그 수익을 다른 산업 및 교육·복지 비용으로 쓸 것과 긴축정책을 완화할 것을 주장하면서 IMF와 마찰을 일으켰다. 알프레도 팔라시오 대통령이 IMF 요구를 따르자, 이에 반발해 재무장관직을 사퇴했다.

2006년말 대선에서 그는 경쟁자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의 언행은 거칠었지만, IMF와 대항해 국가부채를 줄이고, 석유산업에서 나오는 이득을 빈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공약이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경제학자라는 직함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자료: 코트라 에콰도르 키토 무역관
자료: 코트라 에콰도르 키토 무역관

 

취임하자마자, 코레아는 GDP25%에 이르는 102억 달러의 대외 채무 재협상을 요구했다. 코레아는 에콰도르의 대외 채무는 과거 군사 정권들과 계약한 것이므로 불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코레아는 채무 이행을 거부하고 세계은행과 IMF의 경제 조사를 중지하겠다고 위협했다. 2007426일 그는 에콰도르의 세계은행 감독관에 추방 명령을 내렸다.

2008년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에콰도르는 이듬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내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채무조정에 성공해 그럭저럭 경제를 이끌어 나갔다.

그의 지지도는 국제유가가 버텨주었다. 2010년 라파엘 코레아는 교육개혁안과 경찰개혁안을 밀어붙이면서 교사들과 경찰관들이 대거 반발했지만,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경기 호황으로 높은 지지를 유지할수 있었다. 2013년 대선에서 그는 압승을 거두며 집권을 이어나갔다.

코레아는 장기집권을 꾀했다. 비판적 언론에게 재갈을 물렸고,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 추진에 반대하는 의원 57명에게 의원자격을 박탈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세수가 급감하고, 그의 포퓰리즘 정책에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수도 키토의 지하철 건설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코레아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세금을 신설하고 상속세 납부 기준도 완화했으며 예산삭감도 단행하며 재정적자를 메우려 했다. 그럼에도 경기 침체는 지속되고 재정 적자는 악화되어 갔다. 부유층과 중산층들이 반발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에콰도르 국가재정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2014~2019년 국제금융시장에서 발행된 에콰도르 국채는 총 1575천만 달러에 이른다. 국채 이자도 8~10%로 뛰어 올랐다.

코레아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국에 손을 내밀어 50억 달러의 차관을 받았고, 광물 자원 개발에 중국자본을 유치했다. 미국과 IMF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을 견제세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2016년 에콰도르에 규모 7.8의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코레아는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지진피해 수습에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그는 4선을 준비했는데, 끝내 출마를 고사했다. 코레아는 결국 부통령이던 레닌 모레노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그는 모레노가 집권하고도 자신에게 고분고분할 줄 알았다.

 

2017년 4월 3일 취임식에서 레닌 모레노 대통령 부부(가운데)와 라파렐 코레아 전임 대통령 부부(가장자리) /위키피디아
2017년 4월 3일 취임식에서 레닌 모레노 대통령 부부(가운데)와 라파렐 코레아 전임 대통령 부부(가장자리) /위키피디아

 

2017년 집권한 모레노는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의 후임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길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모레노는 코레아와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전임자가 대화조차 하기 싫어했던 IMF와 협상을 하고, 친서방 노선을 걸었다.

모레노 정부는 재정건전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가 추진한 재정적자 개선 정책은 각종 보조금 축소, 정부규모 축소, 공기업 인원조정 및 경쟁력 강화, 관세조정, 외화유출세(ISD) 단계적 철폐,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이다. 이 모든 내용들이 그동안 단물에 젖어 있던 국민과 공무원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1주일 이상 사위가 격화되면서 모레노 정부는 위기에 처했다. 모레노의 정책도 국민들의 요구를 따를 것인지, IMF와의 약속을 이행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있다. 모레노는 결코 베네수엘라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의 성공은 대중주의에 젖은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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