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붕괴⑦…앨런 그린스펀의 오류
닷컴버블 붕괴⑦…앨런 그린스펀의 오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0.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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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화정책의 효과 감소…금리로 경기를 조절할수 없음을 인정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002년 여름 와이오밍주 산장에서 재임기간의 오류에 대해 변명이자 고백을 토해냈다. 그는 통화정책으로 자산거품을 막을수 없었다며 금리 조절을 통해 거품을 막지 못했다는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인정했다. 그는 금리인상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채 말로만 주가 거품을 경고함으로써 증시의 거품 팽창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실제로 금리 수단이 만능이 아님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린스펀은 통화주의자로,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거시경제의 사이클을 조절할수 있다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미국이 경기침체를 겪던 2001년 한해 동안 그는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면 미국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린스펀은 그동안 의회 증언에서 통화정책은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채널을 경유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 금리인하가 결국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2001FRB11차례에 걸쳐 단기금리를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2002년말 현재 16년째 FRB 의장을 맡고 있는 76세의 노익장은 스스로 통화주의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FRB 내부에서는 일찍부터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논의가 제기돼 왔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M1’, ‘M2’등 통화총량 개념을 사용하며 돈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는 것으로 경기를 조절할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만능 요술방망이는 아니었다. 증시 투자자들의 탐욕과 패닉, 기업인들의 투자과열 등 사회심리적 현상을 통화조절 장치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린스펀의 고백으로도 뒷받침되었다.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1990년대 장기 호황을 이끌어 뉴욕 월가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던 그린스펀 의장도 21세기 들어 미국 경제가 허우적거리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인기를 잃었다. 그는 장기 호황으로 거품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Fed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은 뉴욕 증시를 회복시키는데도 실패하고, 소비 심리를 일시적으로 유지하는데 효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경기 침체기에도 부동산 시장의 활황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경기 슬럼프의 직접 원인이었던 기업의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실업률을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린스펀의 금리인하 조치는 소비를 촉진시키고 유동성을 풀어 증시를 살리는 데 타깃이 맞춰졌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의도가 기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1999년 말과 2000년 초에 소비증가율을 능가하는 속도로 막대한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이때 만들어진 설비과잉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금리인하의 효과가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처방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료: 위키피디아
자료: 위키피디아

 

전미경제조사국(NBER)의 멤버인 노스웨스턴대의 로버트 고든 교수는 금리 인하로 미국 경제가 극심한 불황은 피해 갈 수 있겠지만 설비투자가 확대되지 않는 한 장기적인 저성장과 실업률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기업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1이나 되며 1990년대 미국의 장기호황은 미국인들의 높은 소비심리와 기업의 설비 확장에 따른 것이다.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점도 설비 확장의 요인이 되고 있다. 금리는 떨어졌지만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까다롭게 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에 결정적 기여를 해온 닷컴 기업들은 아예 자금줄이 막혀버렸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증시의 거품이 무너지면서 기업 부문의 설비투자 감소로 악화됐다.

금리인하의 직접적 영향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영역이 노동 시장이었다. 기업들은 경기과열 때 상승한 임금을 내리는 것보다 인원을 정리하는 것이 수월해 실업자가 빠른 속도로 늘었다. 1990년대말 3.9%까지 내려갔던 미국의 실업률은 2002년말에 6.0%까지 치솟았고,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의 늪에 허우적거리고 있는데도 주택시장만은 식을 줄 모르고 달아올랐다. 그린스펀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활황이라는 부산물을 낳았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꺾이는데도 부동산 시장이 살아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유지될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주택시장의 거품을 확대시키는 역효과를 냈다.

미국 주택시장은 2001년 전반적인 경기침체 시기에도 달아올랐다. 2000~20012년째 주식시장이 25% 하락했지만, 주택 가격은 2001년에 평균 9% 상승함으로써 미국인들의 부의 효과(wealth effect) 감소를 완충했다. 9·11 테러 이후 우려됐던 소비 위축이 잠시에 그치고, 미국인들의 왕성한 소비가 살아나 경기 회복의 원동력을 제공했던 것이 다름 아닌 부동산 시장의 활황이었다는 분석이다.

 

주택 경기 호황은 FRB의 대폭적인 금리 인하에 크게 힘입었다. 20005월에 8.7%에 달랬던 주택담보(모기지) 금리가 200111월 이후 3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인들의 부는 크게 주식과 부동산의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주식은 부자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주택은 미국인의 3분의2가 소유하는 대중화된 자산이기 때문에 경기침체기에도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지 않게 하는 심리적 배경이 됐다.

하지만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확대되는 문제가 불거졌다. 주택금융 회사인 HSBC 증권의 이코노미스트 아이언 모리스는 2002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주가수익률(PER)의 개념을 주택시장에 도입, 주택가격과 소득의 비율이 1.6으로 집값이 미국인의 소득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수치가 지난 1989년 부동산 폭락 한해전과 비슷하며, 따라서 올해 금리가 상승할 경우 주택가격이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부동산 가격 안정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주택 시장에 어느 정도 거품이 형성돼 있고, 일부에서 냉각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붕괴로 이어지기보다는 그간의 과잉 상승압력이 해소되는 과정을 보일 것으로 진단했다. 1980년대 후반의 미국 주택시장 거품때는 공급 과잉으로 꺼졌지만, 지금의 주택공급 규모는 1970년대 이래 가장 낮고, 현재의 집값이 1980년대 버블 때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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