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의 고독 500년의 희망…강낙규의 아르헨티나 여행①
500년의 고독 500년의 희망…강낙규의 아르헨티나 여행①
  • 강낙규 전 기술보증기금 전무이사
  • 승인 2019.10.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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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60일간의 여행기…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 프롤로그>

 

2019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름이다. 4월초 한국은 초봄이었지만 라틴아메리카는 여름이었으며, 귀국한 6월초 한국은 이미 여름이었다. 지난해에 비해 무더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9월까지 한국은 여름이었고, 12월 아프리카로 떠나면 다시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

여행기를 쓴다고 할 때 많은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물었다. 먼 나라 먼 이웃 라틴아메리카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혹은 이미 많은 여행기와 수필집이 있는데 글을 쓰는 의미는 무엇인지가 질문의 요지다.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더 이상 먼 나라 먼 이웃이 아니라 아직은 멀지만 가까운 이웃이다.

라틴아메리카까지 직항로가 생겼으며, 당장 20191020일 볼리비아 대통령선거에 한국인 정치현님이 야당후보로 결정되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만약 볼리비아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과 긴밀한 경제, 사회, 문화 교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는 전 세계 리듐의 50%이상이 매장되어 있다. 리듐은 한국의 차세대 산업인 2차 전지의 중요한 원료다. 또한 1027일에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데, 예비선거에서 페론당 후보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현 대통령인 마크리를 압도하여 대통령으로 선출된 가능성이 확실 해졌다. 2021년까지 한국과 남미공동시장(Mercosur)FTA협상 타결을 목표로 매진중인데,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FTA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구의 산소 중 20%를 생산하는 지구의 허파 브라질 아마존은 이 시간에도 불타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아마존을 살리고자 200억 유로를 긴급 원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브라질의 트럼프 자이브 보우소나루대통령은 프랑스대통령 마크롱이 자기를 모독했다며 사과하기 전에는 원조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때가 우유니소금사막과 쿠스코 등 3,7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오는 고산증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데 산소가 10%부족해서다. 그런데 아마존이 모두 불타서 산소가 20% 줄어들면 우리는 고도 5,500미터 높이에서 사는 것과 같다. 인류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라틴아메리카 9개국을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K-POP의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케이블 카에서, 우유니사막에서, 페루 쿠스코광장에서, 칠레 이슬라네그라에서, 멕시코시티 기억과 관용의 박물관 광장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K-POP을 틀어 놓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꼬레아(Corea)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한 멕시코 젊은이는 인스타에 박윤이란 한국이름을 쓰고 있다.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는 먼 나라 먼 이웃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는 특유의 화려한 색채(Color)와 삼바(브라질), 탱고(아르헨티나), 살사(쿠바), 쿰비아(콜롬비아) 등 흥겨운 춤 그리고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친구(아미고 Amigo)라 부르며 친절하게 대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늘 기분이 상쾌하다. 그런데 세계 최대의 야외미술관인 브라질 이뇨칭 미술관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틴아메리카미술관(MALBA)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곳곳의 벽화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가득했다. 그 이유가 뭔지를 꼭 밝혀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인문학인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에 대해, 나아가 사회과학인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 살펴봤다.

이 여행기는 라틴아메리카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짧은 글이며,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그들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300년 동안 유럽에 착취를 당하고, 200년 동안 독재에 시달린 그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까운 친구로서 위로와 희망을 기원하며 이 글을 올린다.

 

<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여전히 남미의 파리인가? (아르헨티나) >

 

1.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의 거처>

 

60여 일간 라틴아메리카여행을 다녀온 후 어디가 제일 좋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인간 이성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은 마추픽추며, 자연이 만든 최고의 창조물은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이라 답한다. 원주민 과라니 족()의 말로 큰물(Igu(), Azu(, 웅장한))이라는 이과수 폭포는 너비 4.5km275개의 폭포와 평균낙차 70m의 거대한 폭포다. 이과수 폭포를 보고 엘리스너 루즈벨트 대통령부인은 “Oh! Poor Niagara!” (어머! 나이아가라는 어떡해!) 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3개국에 걸쳐있는데 파라과이 쪽은 아직 전망대가 없어 아르헨티나(80%)와 브라질(20%)에서만 볼 수 있다. 이과수강물의 절반이 악마의 목구멍으로 쏟아진다.

악마의 목구멍은 공원 내에 운행되는 기차를 타고 가르간다역(Estacion Garganta)에서 내려 1.2km를 걸어간다. 이과수강위에 놓인 목책 트레일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서 폭포 소리가 들린다. 악마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 이슬비 내리듯 물방울을 날린다.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하면 악마는 천둥치는 것 같이 울부짖으며 엄청난 물보라를 쏟아내어 금방 온몸이 물에 흠뻑 젖는다. 초당 6만 톤 씩 쏟아지는 물과 하얀 물거품, 무지개와 원시림 그리고 뭉게구름은 왜 이곳이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인지를 말해준다. ‘악마의 목구멍을 1분만 보고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고 10분을 보면 인생의 시름을 잃고 30분을 보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악마의 목구멍에서 자살을 한다. 5분만 악마의 목구멍을 바라보고 있어도 빨려들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과수 폭포 /남영주 사진작가
이과수 폭포 /남영주 사진작가

 

영화 해운대를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의 영향으로 인도양에서 조업하던 원양어선이 거대한 파도에 침몰 할 듯 말듯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거대한 자연의 힘에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안도하게 된다.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역동적인 힘을 이성으로 종합함으로써 마음을 안도하게 하는 것을 칸트(I. Kant)숭고’(The Sublime)라고 했다.

쓰나미 같은 거대한 힘은 상상이 안 되고 감성적인 능력을 초월하여 스스로 자신의 무능력함을 알게 됨으로써,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만 곧 이성으로써 무한한 전체를 생각하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이러한 불쾌감은 쾌감으로 바뀌며 숭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힘에 의한 숭고를 역학적 숭고라고 하는 반면, 피라미드나 쾰른대성당 같은 거대한 대상과 마주쳤을 때 한눈에 이 대상이 다 들어오지 않아 그 크기에 상상력이 좌절되어 나의 왜소함을 일깨워 줌으로써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수학적 숭고라고 한다.

이과수 폭포의 악마의 목구멍을 보면서 신()의 존재를 언 듯 보게 된다면 바로 이런 역동적 숭고함 때문이다.

악마의 목구멍은 영화 인디아나존스 크리스탈해골‘007문레이크’, ‘해피투게더그리고 미션의 배경으로도 등장 한다. 미션의 OST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의 아름답지만 구슬픈 가락처럼 이과수 폭포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 3국 연합 전쟁 - 파라과이 전쟁 >

 

파라과이는 1814년 독립 후 가스팔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26년간(1814~1840) 독재정치를 하면서 철저히 쇄국정책을 고수한다. 그러면서 무상 의무교육의 실시로 문맹률을 낮췄으며, 나라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 이어 등장한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 대통령은 18년 동안(1844~1862) 독재정치를 펼치지만, 국방력을 강화하고 외교, 안보, 경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다. 1862년 로페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솔라스 로페스가 대통령에 취임한다. 역시 독재정치를 펼치지만 군대를 증강하고 현대화를 통하여 군사 강국으로 키운다. 이렇게 3명의 대통령이 52년간 모두 죽을 때까지 독재정치를 한다.

1864년 우루과이에서 홍당(紅黨 Partido Colorado 도시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이 집권하면서 내란이 발생하자 브라질이 개입한다. 우루과이 백당(白黨)과 노선을 같이하던 파라과이가 브라질의 개입을 경고하면서 브라질과 외교를 단절한다. 186411월 브라질함정 올라다호를 나포하고, 12월에는 브라질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브라질의 마투그로수를 침공한다. 이어 18651월 브라질 리오그란지두술 주 침공을 위해 아르헨티나에 파라과이군이 통과할 것을 요청한다. 아르헨티나가 이를 거부하자 18653월 아르헨티나에도 선전포고를 한다.

위기를 느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는 186533국 동맹조약을 맺는다. 전쟁초기에는 파라과이의 병력과 무기가 3국 연합 보다 우세하여 승세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18656월 리오추엘로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전세가 급격히 기운다. 18693국 연합은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을 점령한다. 솔라스 로페스는 북부산악지대로 퇴각하여 끝까지 항전하다 나는 조국과 함께 죽는다.”는 최후의 말을 던지고 전사하면서 18703월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후 브라질군은 무자비하게 부녀자와 청소년까지 살육하여 인구는 53만 명에서 22만 명으로 줄어들고 남성인구의 90%가 사망하거나 노예로 끌려간다. 전쟁배상금 1,900만 페소 외에 국토의 40%에 해당하는 15km2를 빼앗긴다. (남한면적 10km2) 전쟁 전 파라과이 땅이었던 이과수 폭포가 이 때부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접경이 된다. 산업기반은 완전히 파괴되어 파탄상태가 되고, 그 후유증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파라과이는 남미에서 가장 낙후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독재와 지도자의 자만과 오판이 국가와 국민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극명한 사례다.

그런데 다른 시각도 있다.

전쟁 전 파라과이는 국토의 98%를 국가가 소유했으며, 주거와 동시에 경작하는 조건으로 토지 사용권을 농민에게 양도한다. 국가가 관개, 저수, 운하, 다리,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지원하여 농업생산성을 높였고, 이모작 전통도 부활시킨다. 외국무역도 국가가 독점하여 마테차와 담배, 목재를 수출하여 무역수지는 대규모 흑자를 유지한다. 당시 남미에서 유일하게 외채가 없던 국가였다. 또한 전선, 철도, 건설기계, 직물, 화약 공장을 소유하고 대학생들을 유럽에 유학 보낸다. 파라과이는 거지도 굶주리는 사람도 도둑도 없는 라틴아메리카의 유일한 나라였다.

파라과이 개방을 강요하던 영국이 거부당하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부추겨 전쟁을 벌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영국공사 에드워드 손튼은 아르헨티나 국무회의에 정부고문자격으로 참석하여 파라과이의 운명을 결정할 음모를 획책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협정을 체결하고 1864년 손튼은 런던에 비밀보고서를 보낸다. 186551일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조약을 체결하는데 1년 뒤 <더 타임즈>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채권자인 금융업자로부터 조약내용을 입수하여 공표한다. 미래의 전승국인 아르헨티나는 미시오네스와 광대한 차코영토 전부(94km2), 브라질은 국경 서쪽의 광대한 지역(6km2)를 병합하기로 조약에서 미리 결정한다.

패배당한 파라과이는 영토가 축소되고 자유무역과 대농장제가 실시된다. 모든 것이 약탈되고 모든 것이 매각된다. 파라과이는 사상 최초로 차관을 도입하여 최초 1백만파운드는 3백만파운드로 확대되고, 무역자유화로 영국 직물이 수입되어 파라과이 면화재배는 괴멸된다. 이후 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는 미국과 브라질의 이익을 위해 국경 인접 토지의 외국 매각 법안을 폐지하고 브라질 커피 농장주에게 국유지를 매각한다. 승전국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세 나라의 재정도 함께 파탄나고 영국에 대한 종속이 심화된다.

 

자료: 위키피디아
자료: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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