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붕괴⑧…부시 행정부의 선택
닷컴버블 붕괴⑧…부시 행정부의 선택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0.1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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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에 기업 회계부정으로 주가 폭락…부시 정부, 감세 카드 꺼내

 

뉴욕 증시가 붕괴직전에 있던 20027월 뉴욕타임스지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1927년 이후 취임한 미국 대통령 가운데 취임 18개월 동안 최악의 주가 하락을 경험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냈다.

그때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2001120일 취임한 후 2002720일까지 18개월 동안 블루칩 지수인 S&P 500 지수가 무려 36.9% 하락했다. 이는 과거 13명의 대통령이 같은 기간에 겪은 낙폭과 비교할 때 가장 크며, 대공황 발발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 때의 낙폭 18.6%에 두 배에 이르렀다. 다우존스 지수 낙폭은 부시 대통령 18개월간 24.3%, 후버 대통령의 24.8%에 비슷했다. 두번째 낙폭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로 23.6%에 달했다.

취임후 1년반 동안 가장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록한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55.1%, 이어 린든 존슨 대통령 27.5%, 아버지 부시 대통령 26.2% 순이다.

뉴욕타임스지는 과거 선례에 비추어 취임 직후 주가 폭락이 재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경기침체기에 취임했다가 경제를 살릴 경우 재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취임 18개월동안 4.8%의 주가가 폭락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경제문제를 등한시하는 바람에 재선에 실패했고, 초기에 주가가 폭등했지만 말기에 경기침체를 겪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경우도 재선에 쓴맛을 보았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빌 클린턴, 린든 존슨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경기침체를 겪지 않았다.

이 기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치명적이었다. 미국 유권자의 3분의2가 주식투자자인 상황에서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인기가 떨어져 선거에 질 것을 의미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아버지 조지 W. H. 부시 전 대통령 /위키피디아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아버지 조지 W. H. 부시 전 대통령 /위키피디아

 

뉴욕 증시가 하락하고, 경제가 휘청거리는데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미국 금융시장에 먹혀들지 않았고, 역으로 시장이 부시 정부를 불신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기업 재직 시의 기업 회계 스캔들이 정치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부시 대통령의 초기 경제팀은 무능을 노출했다. 폴 오닐 재무장관과 하비 피트 증권거래위원장(SEC)은 외환 정책과 기업 부정 척결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여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내에서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FRB가 수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했지만, 경제와 증시가 살아나지 않고, FRB로선 더 이상의 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단을 거의 다 소모했다. 따라서 금융시장에 대한 미 행정부의 리더십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뉴욕 월가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팀을 불신했고,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골드만 삭스의 로버트 호매츠 부회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3년전에는 행정부의 리더십이 시장에 먹혔지만, 지금은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시장이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존 맥케인과 같은 공화당 상원의원은 하비 피트 SEC 위원장의 사퇴를 거듭 주장하며, 부시 대통령의 기업 부정 척결방안보다 강력한 민주당의 회계개혁법안의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피트 위원장의 친기업적인 금융규제 정책이 현재의 기업 범죄를 가중시켰다며 피트 위원장의 사퇴가 개혁의 첫 단계라고 주장했다.

 

폴 오닐 미국 재무장관(오른쪽)과 록 가수 보노 /Truck and Barter
폴 오닐 미국 재무장관(오른쪽)과 록 가수 보노 /Truck and Barter

 

폴 오닐 재무장관은 2002년 여름에 달러화가 급락하고 있을 때 한달동안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록 가수 보노와 함께 광대모자를 쓰고 가난 구제에 관한 논쟁을 벌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오닐 장관은 이 같은 비난을 의식, 아시아와 유럽 순방계획을 중도에 취소하고 의회에 출석했지만, 시장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난지 오래였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은 엔론월드컴의 부정이 터졌을 때 천재들의 수법”, “미국 자본주의에 기여할 것등이라고 언급하며 사태를 안이하게 인식했었다.

 

초기 부시 경제팀 가운데 로렌스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은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존 테일러 재무부 차관은 유순하며 글렌 허바드 경제자문위(CEA) 의장은 대중적 설득력이 있으나 정책 결정력이 없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평한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대통령이라고 자부했지만, 대공황의 책임을 뒤집어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었다.

200211월 중간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되는데 성공했다. 선거후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경제를 이대로 나두었다가는 걸프전에 이기고도 선거에 지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을 걱정했다. 그가 경제에 취한 첫 조치는 폴 오닐 재무장관, 로렌스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 하비 피트 SEC 의장의 경제팀을 교체한 것이었다.

 

폴 오닐 재무장관의 후임에는 CSX라는 미국 동부 철도회사 회장을 지낸 존 스노(John W. Snow)를 임명하고, 백악관 경제수석에 골드만 삭스 회장을 지낸 스티븐 프리드먼을 지명했다. 그러나 스노 장관의 임명은 금융시장과의 화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감세정책을 널리 홍보할 세일즈맨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뉴욕 월가와 교류가 거의 없었던 재무장관이 금융시장과 원만하게 조율하고,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는 없었다.

따라서 골드만 삭스 출신인 프리드먼 경제수석이 뉴욕 월가 금융기관과의 핫라인을 형성키로 했지만, 경제 수석이 금융시장을 컨트롤하는데는 역부족이다. 민주당의 지적처럼 부시 대통령의 경제팀 교체는 얼굴만 바꾸었을 뿐 정책 오류를 시정할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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