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사태에 얽혀 있는 석유의 이해 관계
쿠르드 사태에 얽혀 있는 석유의 이해 관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0.2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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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셰일가스 생산 힘입어 경찰 역할 포기…터키 역내로 송유관 지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르드족과의 동맹을 깨고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해서 국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터키는 국제적인 반발을 감수하면서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족 지역을 침공했다. 미국은 시리아에서 철수한 병력을 이라크에 주둔시키려 하는데, 이라크의 친미 정권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외교는 국가간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시리아 쿠르드지역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된 행위 같다. 어제의 동맹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미국, 21세기에 남의 나라 국경을 침공한 터키, 터키의 공격을 묵인하는 러시아 등.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각국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해관계는 석유라는 자원이다.

 

쿠르드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쿠르드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쿠르드족의 주거지역, 즉 쿠르디스탄(Kurdistan)은 주요 유전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몇가지 중요한 팩트를 보자.

이라크는 세계 6위의 산유국인데, 모술·키르쿠크 등 주요유전지대가 쿠르드족 지역에 있다. 이라크 산유량의 3분의1이 쿠르드지역에서 나온다.

이라크의 원유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터키 영내를 지나 터키의 지중해 항구 제이한(Ceyhan)에서 선적된다.

기름이 별로 나지 않는 터키에서 최근 유전이 발견되었는데 쿠르드족 밀집지역인 디야르바키르(Diyarbakır)과 그 주변이다. 이 기름은 질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터키는 산유국 순위 50위로 쳐져 있는데 쿠르드지역 유전 발굴을 통해 메이저 산유국으로 부상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국내 셰일오일 생산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산유국이 되었으며, 국내 채굴 석유로 조만간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된다. 미국은 더 이상 기름 확보를 위해 중동사태에 개입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쿠르드족은 셀주크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1천년 가까이 받아왔다. 1차 대전 이후 독립의 희망을 가졌지만, 터키 공화국 수립과 영국-프랑스의 중동 분할로 그 꿈이 좌절되었다.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의 국경지대에 거주하는데, 네나라 모두 짠 듯이 쿠르드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쿠르드족이 석유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석유 전문가 재니 디 조바니(Janine di Giovanni)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주요 수단은 석유라면서 쿠르드족이 독립할 경우 지역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터키 역내를 지나는 파이프라인 /위키피디아
터키 역내를 지나는 파이프라인 /위키피디아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쿠르디스탄이 걸치고 있는 네 나라는 수니파니 시아피니 하면서 대립하지만 쿠르드족에 대해서만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어느 한쪽에서 독립국에 생기면 자국에 파급되므로 이웃 나라에서 독립운동이 벌어져도 신경을 쓴다. 힘의 공백이 발생하면 먼저 군대를 파견한다. 그 사태가 지난 9일 터키가 시리아 국경을 침공한 사건이다.

터키는 국제법상 불법 행위를 했지만, 남쪽 시리아 영내에서 쿠르드 독립국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시리아에서 쿠르드 독립국이 생기면 터키 영토내의 쿠르드족을 선동할 것을 우려했다. 미군이 철수한 직후 생긴 힘의 공백을 군대로 밀고들어가 시리아쪽 쿠르드족을 제압할 필요성이 생겼다. 게다가 터키 국경지대에 이라크의 파이프라인이 지나가기 때문에 시리아 쿠르드의 공격 대상이 될 것도 우려했다.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 지역을 점령할 욕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휴전에도 동의했다. 며칠간의 공격으로 시리아 쿠르드군을 제압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 석유를 들여올 필요성이 없어졌다. 미국에서 셰일오일이 생산되면서 중동의 경찰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이러한 속셈은 트럼프가 솔직하게 표현했다.

트럼프는 23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재앙적이고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또 다른 값비싼 군사 개입을 피했다"면서 우리 군대의 과제는 세계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나서서 그들의 공정한 몫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곧바로 터키에 가한 경제제제를 해제했다. 이라크-시리아 영내에 있느 IS 세력은 재기 불능 상태로 제압되었고, 터키군도 실리를 챙긴 만큼 이 선에서 끝내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쿠르드족 독립에 관해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 지역의 석유에 대한 미련은 남겨두었다. 트럼프는 "우리는 석유를 확보했고, 따라서 소수의 미군이 석유를 보유한 지역에 남을 것"이라며 유전지대는 지킬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러시아도 쿠르드족 독립에 심드렁하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22일 정상회담을 갖고 터키 접경의 시리아 내 '안전지대'(buffer zone)을 만들어 쿠르드 민병대의 철수와 러시아-터키 양국 군의 합동 순찰에 합의했다. 길이 480km, 30km의 완충지대는 쿠르드 중심지역을 포함한다. 이 내용은 그동안 터키가 강력하게 주장해온 것이다. 완충지대가 안전하게 유지되면 터키를 지나는 송유관의 안전도 보장된다.

 

미국은 시리아에서 빠져나온 미군 7백명을 시리아 쿠르드지역에 배치하려 하자, 이라크가 반대했다. 공연히 미군을 끌어들여 쿠르드족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이 이라크내 미군의 강화에 반대하기 때문에 신경 썼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쿠르드족만 열강과 이웃나라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쿠르드족은 지난 4년간 미국과 동맹을 맺고 중동지방에 창궐한 수니파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IS를 격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쿠르드족은 11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IS를 퇴치하는데 주력군으로 싸웠고, 밀어낸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터키가 침공해 크루드 거주지역 내에 완충지대를 만들게 됨에 따라 쿠르드족은 오히려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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