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지리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
세종실록 지리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
  • 아틀라스
  • 승인 2019.04.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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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려 조선조에 울릉도와 독도를 지속적으로 관리했음을 입증

 

독도가 우리 땅임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세종실록 153권 지리지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 조에 나온 내용을 보자.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하였는데,

지방(地方)1백 리이며, 사람들이 지세가 험함을 믿고 복종하지 아니하므로,

지증왕(智證王) 13년에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軍主)가 되어 이르기를,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 사나와서 위엄으로는 복종시키기 어려우니, 가히 계교로써 하리라." 하고는,

나무로써 사나운 짐승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전선(戰船)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에 가서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항복하지 아니하면, 사나운짐승을 놓아서 너희들을잡아먹게 하리라." 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와서 항복하였다.

고려 태조(太祖) 13년에, 그 섬 사람들이 백길토두(白吉土豆)로 하여금 방물(方物)을 헌납하게 하였다.

의종(毅宗) 13년에 심찰사(審察使) 김유립(金柔立) 등이 돌아와서 고하기를, "섬 가운데 큰 산이 있는데, 산꼭대기로부터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1만여 보이요, 서쪽으로 가기 13천여 보이며, 남쪽으로 가기 15천여 보이요, 북쪽으로 가기 8천여보이며, 촌락의 터가 7곳이 있고, 간혹 돌부처·쇠북·돌탑이 있으며, 멧미나리[柴胡호본(蒿本석남초(石南草) 등이 많이 난다." 하였다.

우리 태조(太祖) , 유리하는 백성들이 그 섬으로 도망하여 들어가는 자가 심히 많다 함을 듣고, 다시 삼척(三陟) 사람 김인우(金麟雨)를 명하여 안무사(安撫使)를 삼아서 사람들을 쇄출(刷出)하여 그 땅을 비우게 하였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땅이 비옥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씨가 되[]처럼 큰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하였다.“

 

이 기록은 울릉도와 독도가 신라 때부터 고려에 걸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영토로서 지속적으로 관리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삼축도호부 편 /울릉군 독도박물관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삼축도호부 편 /울릉군 독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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