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술탄은 왜 로마 황제가 되지 못했나
오스만 술탄은 왜 로마 황제가 되지 못했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0.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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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정교 주교가 인정했지만, 로마 교황이 반대…그후 유럽 군주들, 제3제국론 펼쳐

 

옛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모두 집어삼킨 오스만투르크의 술탄들은 왜 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르지 못했을까. 만약 오스만 술탄이 로마 황제의 지위를 획득했더라면,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높일수 있었고, 합스부르크와의 싸움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4차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라틴제국(Latin Empire, 1204~1261)을 세웠을 때 6명의 군주가 로마 황제의 지위를 획득했었다. 로마 교황청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의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에게 로마 황제의 제위를 내주지 않았다.

 

오스만투르크가 로마 황제 자리를 피한 것은 아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술탄 메흐메트 2(Mehmed II)는 로마황제 직을 무척 갖고 싶어 했다.

1453529일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후 스스로 로마 황제임을 선포했다. 그가 지명한 콘스탄티노플 주교는 술탄에게 동로마황제 지위가 있음을 인정했다.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Knnstantinus XI)는 콘스탄티노플 함락될 때 전사했고, 그는 후계자를 두지 않았다. 따라서 그 지위는 당연히 정복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메흐메트 2세가 스스로 로마 황제(Caesar of Rome)임을 주장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후 로마제국의 정통성은 콘스탄티노플에 있다.

이후 역대 콘스탄티노플의 군주가 로마 황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라틴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메흐메트 2세는 자신이 동로마제국 공주와 결혼한 오르한 1(Orhan I)의 후손이므로, 로마 황제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동로마제국의 제위권을 가진 요하네스 콤네노스(Jōannēs Komnēnos)가 오스만 제국와 결혼동맹을 맺기 위해 딸을 술탄에게 시집보냈다.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 주교 게나디우스를 접견하는 그림 /위키피디아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 주교 게나디우스를 접견하는 그림 /위키피디아

 

메흐메트 2세의 주장을 그리스정교의 주교 게나디우스 2(Gennadius Scholarius)가 받아들였다. 게나디우스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직후에 감옥에 갇혔지만, 술탄이 서방 기독교 세력의 단합을 와해시키고 영토내 기독교도들을 진무하기 위해 그를 풀어 주어 신임 주교에 임명했다. 신임 주교는 로마 교황이 주도하는 카톨릭에 적개심을 강하게 표현하는 반 서방주의자로, 로마 교회와 대항하기 위해 술탄의 황제직을 인정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과 또다른 로마제국임을 주장하는 신성로마제국은 오스만 술탄이 로마황제가 되려는 시도에 코웃음을 쳤다. 이슬람의 지도자가 로마황제 자리에 오를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메흐메트 2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로마황제를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년에 로마황제로서 로마를 차지하기 위해 이탈리아 반도에 장화 끝 부분처럼 생긴 곳에 있는 오트란토(Otranto)를 공격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메흐메트 2세가 죽은 후 그의 후임 술탄들은 더 이상 로마 황제임을 주장하지 않았다.

 

군주가 로마황제를 참칭한 나라들. /Brilliant Maps 캡쳐
군주가 로마황제를 참칭한 나라들. /Brilliant Maps 캡쳐

 

로마제국을 계승한 동로마가 멸망한 이후 유럽의 군주들이 서로 로마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로마 제3제국’(Third Rome)이라고 부른다. 1제국은 동서 분리 이전의 로마제국이고, 2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의미한다.

독일 제후국들이 주도한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의 역대 황제들은 자신들이 로마 황제라고 주장했다. 1871년 독일 제국은 스스로 3의 로마제국이라 칭했고,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스스로 제3제국이라 불렀다. 이탈리아에서도 민족주의자 마치니가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강조하며 통일운동을 펼쳤고, 그후 성립된 이탈리아 왕국은 제3제국을 표방했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 붕괴후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운 합스부르크가는 신성로마제국을 이어 로마황제임을 주장했다. 나폴레옹도 로마 제위를 아어받은 카롤링거 왕조를 대신해 황제라고 칭했다.

그리스도 1844년 독립한 이후 메갈리 이데아(Megali Idea)라는 국수주의를 주창하며 동로마제국을 이어받은 황제국이라고 주장했다. 불가리아도 동로마제국을 이어받은 제국임을 참칭했다.

러시아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그리스정교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황제의 칭호를 차르(Czar)라고 했는데, 이는 로마황제를 칭하는 카이사르(Caesar)에서 파생한 말이다. 오스만투르크에서 독립한 세르비아도 군주를 차르(Tsar)라고 부르며 황제국임을 내세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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