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크루프 가문①…5대 걸쳐 철강제국 형성
독일 크루프 가문①…5대 걸쳐 철강제국 형성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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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2차 대전에 대포와 무기 공급, 전후 전범기업 낙인…조상은 네덜란드

 

독일에 크루프(Krupp)라는 가문과 회사가 있었다. 제국에서 나치에 이르기까지 독일 역사와 함께 한 이 회사는 2차 대전 직전엔 유럽 최대의 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철강에서 출발해 대포와 잠수함 등 군수품과 병기를 제조해 독일이 1차와 2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크루프 가문은 4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가문은 앞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을 추월하는 기술력을 개발했고, 이를 토대로 독일을 산업국가로 부상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으로 돈을 벌었고, 전쟁으로 망했다. 독일은 두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크루프 회사와 가문도 고난을 겪었다.

크루프는 현재 철강·기계회사 티센크루프(Thyssen Krupp)의 회사명 뒷부분에 붙어 있다. 그들이 개발한 기술력은 전후 독일을 불사조처럼 일어나게 한 밑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수 없다.

 

독일 에센시에 위치한 티센크루프 본사 /위키피디아
독일 에센시에 위치한 티센크루프 본사 /위키피디아

 

크루프 가문과 회사는 독일 서부 루르(Ruhr) 지방의 에센(Essen)에 기반을 두었다. 에센은 크루프의 도시였고 요새였다. 또한 에센은 두 세계대전에서 대포의 도시였고, 독일의 무기제조창이었다. 독일황제 빌헬름 2세는 1차 대전에서 에센을 난공불락이라고 선언했고,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는 2차 대전에서 크루프의 철강처럼 단단해 지라고 비유했다.

크루프는 프랑스와 영국에 비해 뒤늦게 통일한 독일의 신화와 같은 기업이었고, 이 회사가 생산한 군수품과 무기는 독일로 하여금 세계 재패의 야욕에 불타게 했다. 이에 비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입장에서 크루프는 독일 제국과 함께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였다. 1차 대전이 끝난후 크루프는 연합국 관할로 넘어갔고, 2차 대전 후에 가문은 전범으로 재판을 받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1920년 당시에 크루프는 115천명의 노동자가 일하던 대형 공장이었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철과 강철, 대포와 포탄, 철판과 기관차, 군함과 상선이 독일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이 회사에는 크루프 가문만이 소유주이자 경영자가 될수 있었고, 그들은 회사에서 황제와 같은 지위를 누렸다.

크루프는 독일 뿐 아니라 미국에 철도를 공급했고, 러시아에 대포를 판매했다. 베네수엘라 철도공사에 크루프 강철이 사용되었고, 태평양 마리애나 해구를 처음 탐사한 잠수정에도 크루프의 제품이 사용되었다.

 

크루프의 강철신화는 5대에 걸쳐 전개된다.

1대 프리드리히 크루프(Friedrich Krupp)는 할머니로부터 철강회사 경영권을 인수받아 경영했지만, 자신은 주강 개발에 빠진데다 사업을 과신하는 바람에 사업에 실패했다.

철강회사의 본격적인 성장은 2대 알프레드(Alfred)3대 프리드리히 알프레드(Friedrich Alfred) 크루프 시대에 이뤄졌다. 2대와 3대에 걸쳐 크루프는 독일 최강의 철강 및 무기생산회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3대 프리드리히 알프레드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큰 딸 베르타(Bertha)를 외교관이던 구스타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Gustav Krupp von Bohlen und Halbach)와 결혼시켜, 사위에게 크루프 성()을 주어 대를 잇게 했다. 이때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관례를 깨고 칙령을 내려 사위도 크루프 성을 이어받도록 허락했다. 구스타프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무기를 제공했다.

구스타프와 베르타의 아들 프리이드(Fried)도 히틀러에 의해 크루프 성을 물려 받아 5대 계승자가 된다. 하지만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면서 프리이드는 전범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프리이드는 1968년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가문의 자산을 재단에 넘겼다. 이로써 크루프 가문의 강철제국은 5대로 150년만에 끝나게 된다. 그후 크루프 사는 전문경영인에 의해 경영되다가 1999년 독일의 또다른 철강회사인 티센과 합병해 티센크루프로 전환된다.

 

크루프의 함정용 대포(1905) /위키피디아
크루프의 함정용 대포(1905) /위키피디아

 

20세기에 전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던 크루프 가문의 뿌리는 독일이 아니라 네덜란드였다.

크루프 가문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6세기 후반이었다. 1587년에 아른트 크루프(Arndt Krupp)라는 상인이 에센 상인 길드에 가입하면서 가족사가 시작되었다. 아른트는 원래 네덜란드인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군주가 카톨릭을 국교로 선언하자, 루터파를 신봉하던 아른트는 네덜란드를 떠나 종교활동이 자유로운 에센으로 이주했다.

아른트는 상인 길드에 등록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포도주와 네덜란드산 식품을 주로 거래하고, 후손들이 주력으로 생산한 철()도 거래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크루프가의 조상격인 아른트는 부동산 투자에 귀재였다. 1599년 유럽에 흑사병이 돌고, 세상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 넣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나 피난갔다. 그런 와중에도 아른트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장사를 했다. 그는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에게서 싼 값으로 토지를 사들였다. 흑사병이 진정되면서 사람들은 돌아왔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아른트는 상인 길드에 등록된지 13년만에 에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크루프 가문은 에센을 좌지우지하는 가문으로 부상한다. 아른트의 자손들은 부를 통해 권력을 확장하는데도 주력했다. 후손들은 에센시의 시의원, 행정국장, 시장 자리를 차지했다. 크루프 가문은 다른 유력가문과 결혼을 통해 족벌사회를 형성화며 에센시의 행정과 의회를 장악하며 신흥계층을 형성했고, 어느 사이에 그런 자리를 세습화하게 되었다.

크루프 가문은 자신의 직책을 사업에 교묘히 이용했다. 에센시 위원회의 재정으로 개인 활동비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시정부의 돈을 빌려 사업 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크루프 가문 사람들은 에센시에서 옥좌에 오르지 않은 황제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직위를 세습했다.

아른트의 아들 안톤(Anton)은 무기제조 사업에 투자했다. 바야흐로 30년 전쟁(161848)이 발발했고, 독일 제후국들은 전쟁에 휘말렸다. 안톤은 무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 소형화기를 생산했다.

안톤은 만든 무기를 네덜란드의 카톨릭과 브란덴부르크의 개혁세력에게도 팔았다. 그에게 적과 아군의 개념은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시장이었다. 전쟁을 하는 군인들이 갈증이 생기면 포도주를 찾게 되므로 포도주 장사도 했다. 하지만 안톤의 군수품 사업은 전쟁이 끝나자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그 사업은 후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후대로 내려가면서 사업과 에센시의 일을 병행했다. 후손 중 게오르크 디데리히 크루프는 에센시의 장부를 집에 보관했기 때문에 아무도 시의 수입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집이 시청역할을 했고, 그곳에서 회의가 열렸다.

당연히 반대자가 나타났다. 반대자들은 크루프 가문의 비리를 법원으로 끌고 갔고, 프로이센 황제에게 청원했다. 빌헬름 1세의 대리인이 파견되어 재판이 열렸다. 재판 결과, 크루프 가문은 지고 시에서의 직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크루프 가문이 소도시 에센에서 돈과 권력을 결합해 장사하며 대를 이어오는 가운데 1787년 프리드리히 크루프가 태어났다. 크루프 가문에 그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때까지 가문 사람들은 크든 작든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장사를 통해 돈을 벌었다. 그런데 프리드리히는 상인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공업을 통해 돈을 벌려고 했다. 그는 강철을 만드는데 열광했고, 결국엔 실패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의 실패는 크루프 강철왕국의 초석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크루프(위의 왼쪽)와 티센(위의 오른쪽)이 합병한 티센크루프(아래) 로고 /위키피디아
크루프(위의 왼쪽)와 티센(위의 오른쪽)이 합병한 티센크루프(아래) 로고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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