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⑤…자본의 의한 지배 강화
9/11 그후⑤…자본의 의한 지배 강화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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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사회주의 정부에 부시 정부, 경제압박…룰라, 온건노선으로 전환

 

200210, 코파카바나 해변 야시장의 실업자들은 금속노동자 출신인 노동당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의 당선으로 미국의 안방인 라틴아메리카에 최대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고, 미국은 남미의 경제위기를 우려했다.

룰라가 당선되자,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은 "룰라가 미친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좌파 정권이 미국에 반대하다간 큰 코를 다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인접 아르헨티나는 미국에 대항하다가 연초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아르헨티나에선 노동자빈민의 시위가 격해지자 부자들의 해외송금 규모가 커지고, 그 결과는 페소화 절하와 국가파산 선언이었다. 미국이 아르헨티나의 파산을 막아주지 않았다.

브라질은 진퇴의 기로에 섰다. 룰라의 당선이 확정되자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갑자기 부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길거리를 뛰쳐나오며 환호했다. 하지만 룰라는 당선과 동시에 그를 지지해준 서민 대중보다는 대형 뱅커 등 부유층의 눈치를 살펴야 할 입장이었다. 해외 자금 이탈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브라질 부유층들이 돈을 다 빼내갈 경우 룰라는 빈털터리 국가를 인수하게 되는 것이다.

 

브라질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룰라 당선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의 주시했다. 브라질 주재 미국 대사는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룰라를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라며 외교적 발언을 했지만, 미국의 속마음은 아니었다.

동서 냉전이 치열했던 시절에 미국은 중남미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 물리적 힘()을 동원해 붕괴시키려고 했다. 1960년대말 쿠바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반혁명 쿠데타와 암살을 지원하고, 쿠바 해역을 봉쇄했다. 1973년 아우구스토 피토체트 장군의 우익 쿠데타를 배후에서 조정, 민주선거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당 정부가 무너지게 한 것도 미국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 미국은 안방인 남미에 최대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가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바로 자본()의 힘을 동원한 것이다.

브라질에 좌파 정권이 들어설 우려가 높아지자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로부터 자본의 공격이 시작됐다. 소로스는 선거가 있기 5개월 전인 20026월초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호세 세라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룰라가 당선되면 브라질은 국가파산을 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 그의 발언이 뉴스를 탄후 헤알화는 급락하고 국채 가산금리가 10% 이상 폭등했다.

퀀텀 펀드의 소로스 회장은 외환투기자와 자선사업가로서 국제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이젠 뉴욕 월가 사람들이 이머징 마켓의 정치 변동기에 지지하고, 배척할 상대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이 3선 금지 조항으로 선거에 나갈수 없게 되자 여권은 세라 후보를 밀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에 밀리고 있다.

룰라는 당선되면 2,500억 달러의 외채를 상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좌파 인사들은 외국 빚을 갚지 않겠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이에 해외투자자들은 소로스의 손짓에 따라 브라질을 떠나기 시작했다. 한때 퀀텀 펀드에서 소로스의 부하로 일한 경력이 있던 브라질 중앙은행의 아르미니오 프라가 총재가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해외 자본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브라질은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때 부시 행정부가 나타났다. 미국은 20028월 국가 파산 위기에서 구한다는 명분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워 브라질에 3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약속했다. 소로스를 대표로 하는 뉴욕 월가 자본이 브라질 경제에 병을 주고, 부시 정부가 약을 준 것이다. 하지만 우선 60억 달러를 주고, 나머지 80%는 대통령 당선자가 IMF 조건을 수용할 경우에 준다는 단서를 달았다.

룰라가 외채 동결을 주장하는 강경 좌파의 말을 따르다가는 당장에 국가가 파산하고, 노동자농민을 굶게 할 것이 명백했다. 전투적 인물로 비춰졌던 룰라는 선거에 임박하면서 현정부의 개방 정책을 이어가겠다며 온건좌파로 변신했다.

1999년 칠레에 아옌데 정권 붕괴후 20년만에 리카르도 라고스의 사회당 정부가 출범했다. 국내에서 빈곤퇴치와 복지향상등 사회주의 공약을 내걸던 라고스도 선거 직전에 뉴욕 월가를 찾아와서 시장 경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며, 좌파노선을 수정해야 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브라질에도 나타날 것임을 예고했다.

제프리 가튼 예일대 교수는 근작 재산의 정치학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보다 중요하고, 일본의 시장 개방이 미군 주둔보다 큰 이슈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글로벌 시장 시대의 미국의 세계전략이 에서 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위키피디아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위키피디아

 

룰라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당선자의 신분으로 200212월초 워싱턴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룰라 당선자는 집권 후 시장 경제와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시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야말로 공화당원이라며 농을 던졌다. 회담은 예정시간을 초과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백악관측은 매우 건설적이고, 긍정적 회담이었다고 논평했다.

금속노동자 출신의 룰라 당선자는 영리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선거에 임박해 시장 경제를 유지하고, 해외부채를 갚겠다고 한발 물러선데 이어 당선자의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 부시 행정부의 우려를 씻어낸 것이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농업에 보조금을 주고 무역장벽을 쌓는 것이 자유무역에 위배된다고 훈수까지 하고 돌아갔다. 룰라는 중앙은행 총재, 재무산업농업부 장관 등 차기 경제팀의 핵심을 모두 기업인 또는 금융인 출신으로 임명해, 중도 내각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룰라와 함께 미국에 온 안토니오 팔로치 재무장관 내정자는 뉴욕 월가를 방문해 룰라는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이로써 미국은 브라질을 제2의 쿠바로 보지 않게 됐고, 브라질도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미국과 브라질의 화해는 몇가지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선거에 앞서 자국의 이해에 유리한 후보가 당선되기를 희망하지만, 국민투표에서 당선자가 결정됐을 때는 우호관계를 원한다는 점이다. 해외 자본의 입장에서도 조지 소로스를 비롯, 투자가들이 노골적으로 룰라의 당선을 원하지 않았지만 부채 상환과 시장 개방을 약속하는한 좌파 정부의 중도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브라질로선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글로벌 경제를 피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미국에 협력을 약속했다.

 

이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불행한 나라였다. 미국의 미움을 받아 끝내 국가파산을 해야만 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그동안 IMF가 구제금융을 주고 미국이 뒤에서 이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텨왔다.

미국의 폴 오닐 재무장관은 IMF의 요구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자금지원을 거부했고,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를 낼수밖에 없었다. IMF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 40%의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놀고먹는 연금생활자를 줄이라고 요구했고,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 정부는 이를 거부, 결국 미국의 미움을 산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미국은 왜 브라질은 도와주고, 아르헨티나는 도와주지 않았던 것일까. 뉴욕 월가의 사람들은 브라질에 떼먹힐 돈이 아르헨티나보다 많았던 점을 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브라질의 대외 채무는 2,500억 달러로 아르헨티나보다 두배나 많았다. 월가에서는 브라질에 많은 돈을 빌려준 시티은행이 미국 재무부를 움직였고, 시티은행에는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회장으로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구제에 차이를 둔 것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논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터키는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해외부채를 안고 있는데도 미국이 직접 나서 구제해주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기지로 터키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도 대외부채가 얼마되지 않은데도 파산 직전에 미국이 구해주었는데, 그 이유는 9·11 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지로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경제전문가는 아르헨티나아에 미군기지가 있었더라면 미국이 구제금융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의 주도적 국가이고, 브라질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다면 미국으로선 세계전략 추진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제지원을 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또 브라질의 지도자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움직인데 비해, 아르헨티나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려했지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괴씸죄가 적용됐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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