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모디 총리는 왜 RCEP에서 빠졌을까
인도 모디 총리는 왜 RCEP에서 빠졌을까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11.08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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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농산물 유입으로 인도 농민 피해…중국의 아시아 주도에 불만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가 마지막에 RCEP 협정문 서명을 거부했다. 아세안 10개국과 중국·인도·한국·일본등 비아세안국 6개국 등 16개국이 모두 이 조약에 참여할 것이 예상되었지만, 마지막 날에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인도 대표단이 협정문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참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인도가 막판에 뒤집은 까닭은 무엇일까.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의 머릿 글자를 딴 말로,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이라 한다. 2012년 캄보디에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기 시작해 7년만에 협정문 작성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권의 FTA라 일컫는 이 협정은 전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인구 10억 이상의 인도가 가입을 우물쭈물하면서 덩치가 크게 쪼그라들게 되었다.

모디 총리의 RCEP 탈퇴 경정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이 주도하는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탈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모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국가우선주의(Nation First)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인도에서 보는듯한 느낌이다.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트윗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트윗

 

인도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RCEP가 인도의 무역적자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인도의 최대무역 적자국이다. 2017~2018 회계연도의 경우 인도 무역거래에서 중국에서 수입하는 금액이 680억 달러, 대중국 수출이 163억 달러로 540억 달러 가량의 적자를 냈다. 전체 무역적자 1,376억 달러 가운데 중국 무역에서 발생하는 적자가 40%에 이른다. 한해전 중국 무역에서 100억 달러 정도 적자폭을 줄여 놓았는데, RCEP가 체결되면 적자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인도 정부의 입장에서는 RCEP가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무역적자를 키우는 기능을 할 바에야 국가 이익을 위해 거부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야당이 반대했다. 인도 야당 리더인 국민의회당의 라울 간디(Rahul Gandhi)4일 트윗에 “(RCEP에 합의하면) 싼 제품들이 인도에 홍수처럼 밀려와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쏘았다. 인도 유권자의 대다수가 농민이기 때문에 나렌드라 모디는 정치적 이득이 없는 RCEP 서명을 거부했다는 평가다. 인도 농민은 상당수가 국가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농업 경쟁력이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다.

 

RCEP 협정문 서명국 /위키피디아
RCEP 협정문 서명국 /위키피디아

 

모디 총리의 RECP 탈퇴는 중국에 대한 헤게모니 싸움의 성격도 띤다.

인도는 오랫동안 이웃으로서 아세안 국가를 중시해왔다. 인도 정부는 1992년에 동방정책(Look East Policy)를 채택했고, 모디 총리는 2014년에 동방 행동정책(Act East Policy)를 선언하며 아시안 국가와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가 리더십을 가지고 동남아시아 정책을 이끈다는 야심을 가졌다. 지난해 126인도 공화국의 날에는 동남아 10개국 지도자를 초청해 행사를 가졌고, 같은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란 샹그리라 대화에는 태평양-인도양 안보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4자 회담을 열어 지역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구상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인도에 불리한 역내 자유무역 협정이 중국에 의해 주도되고 일본, 한국등이 서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모디 총리는 몇차례 자국에 유리하도록 세이프가드 조항등을 수정했지만, 최종 협정문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더 이상 중국 주도의 아시아 정책에 숟가락을 언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서명할 듯 하다가 마지막 날에 발을 뺀 모디 총리는 국제적으로 어색한 입장에 처했다. 특히 인도의 남아시아 정책 추진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인도 저널리스트 나란잔 마르자니(Niranjan Marjani)는 온라인 미디어 디플로맷(Diplomat)에 기고한 글에서 인도는 동남아시아의 이해관계에 분명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썼다.

 

인도와 중국은 인구 10억의 대국으로 경쟁과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두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분리되었지만, 근현대사에서 대립적 위치에 있었다. 19세기 중엽 아편전쟁은 영국령 인도제국과 중국의 전쟁이었고, 2차 대전 이후 수차례 국경분쟁을 일으켰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정책에도 인도는 거부하고 있다. 근대 이전에 인도가 동남아시아 상권을 잡고 있었는데, 명나라 때 정화(鄭和) 원정 한번으로 해상루트를 중국이 쥐었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도는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이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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