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치르는 볼리비아 대선, 정치현 캐스팅보트
다시 치르는 볼리비아 대선, 정치현 캐스팅보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11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부 지지 못 얻어 좌파 모랄레스 사임…돌풍 일으킨 한국계 교포, 주요 변수

 

남미의 내륙국 볼리비아가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 당선자이자 현 대통령은 현지시간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사임하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020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현 모랄레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치렀다며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3주째 이어져 왔다. 모랄레스의 사임은 민주정치 회복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저항에 백기를 든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모랄레스가 민주화 시위에도 불구하고 권력 유지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쓰려다 결국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해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모랄레스가 사임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 8일 시위를 저지하던 경찰 일부가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대의 편에 가담한 사실이다. 모랄레스는 군부가 나서주길 기대했지만, 군 장성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모랄레스는 사임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또 대통령 선거를 감시해온 미주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가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재선거를 치를 것을 촉구했다.

 

2008년 모랄레스 /위키피디아
2008년 모랄레스 /위키피디아

 

선거 개표과정에서부터 부정 선거의 의혹이 불거졌다. 개표 당일 개표율 83.76%에 이르렀을 때에 볼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개표현황 공개를 중단했다. 이때 모랄레스 대통령과 중도우파 야당후보 카를로스 메사(Carlos Mesa) 전 대통령 간 격차는 7% 남짓했다.

정치현 트윗 사진
정치현 트윗 사진

 

볼리비아 선거법 상 1위와 2위 격차가 10% 미만이면 결선투표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결선투표를 치르면 3위를 한 한국계 교포 정치현(Chi Hyun Chung), 4위 오스카 오르티스 후보등이 2위를 밀어줄 경우 모랄레스의 당선이 불확실해 지게 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튿날 오후에 개표상황을 공개했는데, 97% 개표 상황에서 모랄레스 후보46.85%, 메사 후보 36.74%의 득표율로 나타났다. 7%의 격차가 갑자기 10%로 커지면서 결선투표가 필요 없게 되었다. 즉시 모랄레스는 4연임을 선언했다.

 

누가 보아도 이번 선거는 부정투표 가능성이 컸다. 볼리비아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 나왔고, 처음에는 얼굴이 드러나길 꺼려해 마스크를 썼다가 시위가 격화하면서 마스크를 벗고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나갔다.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소가 불탔고, 방송국이 점거되었다. 시위대는 모랄레스의 즉각 퇴진과 재선거를 주장했다. 지금까지 3명이 숨지고 300명이 다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 결과를 보인 사람이 한국 이민 1.5세인 정치현 후보다. 그는 개표조작 의혹이 있는 결과에서도 8.8%의 지지를 얻어 3위를 했다. 그의 표와 4위를 한 오스카 오르티스 후보의 표가 2위 메사 후보의 표에 더해지면 조작된 개표결과로도 모랄레스의 표를 넘게 된다.

모랄레스 사임과 함께 알바로 리네라(Álvaro García Linera) 부통령도 함께 사임했다. 다시 치러질 대선에서 모랄레스측 주자가 불투명한 가운데 정치현 후보는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셈이다.

 

정치현 후보(49)1970년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1982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볼리비아로 건너갔다. 그때 나이가 12살이었다. 이후 그는 볼리비아 수크레의 샌프란시스코 하비에르 국립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외과의사로 일하면서 목사로 활동했다. 1999년에 볼리비아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예수교장로회 국제연합총회장을 맡고 있다.

기독민주당 후보인 정치현씨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모랄레스 정권은 볼리비아를 북한처럼 공산주의 독재체제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면서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협동·근면·자립 정신을 바탕으로 캠페인을 벌여 풍부한 지하자원과 새마을 정신이 결합하면 볼리비아를 빠른 시일 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한국과 볼리비아가 좋은 관계를 맺어 세계의 으뜸이 되길 원한다면서 한국과 경제, 스포츠, 문화등 다양한 교류 확대를 희망했다.

 

정치현 후보 선거운동 /정치현 트윗
정치현 후보 선거운동 /정치현 트윗

 

모랄레스 사임 이후 볼리비아 정치 상황은 아직 불투명하다. 모랄레스의 사임만 발표되었을 뿐, 임시 정부는 어떻게 꾸려질지에 대해 불투명하다.

남미 분석가들은 군부의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군부가 개입된 정황이 보이기 때문에 과도 정부에 군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모랄레스가 볼리비아에 남을지 망명할지도 불투명하다. 멕시코 외무장관 마르셀로 에브라드(Marcelo Ebrard)는 트위터로 모랄레스가 멕시코로 망명한다면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에보 모랄레스는 사회주의 운동당(Movement for Socialism) 출신의 좌파 정치인으로, 스페인 정복 470년 이래 최초의 인디언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이다. 2005년에 집권해 14년간 3연임했으며, 남미 국가에서 최장수 국가원수로 꼽힌다. 그는 토지 개혁과 천연가스 수입 재분배를 통해 더 많은 권력을 볼리비아 원주민과 빈민에게 돌려주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수행하며 빈민층의 지지를 얻어왔다. 하지만 그는 4연임하려고 부정선거를 자행하다 끝내 정치적 불명예로 퇴장하게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