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곳간에 있는 작물들은 계속 쌓아두라고 있는 게 아니다.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려울 때 쓰라고 곳간에 재정을 비축해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지방재정 집행률을 높이라고 독려한데 대해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에 대응한 대변인의 발언으로 들린다.
고민정 대변인은 11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현재 글로벌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기구에서도 대한민국 경제는 나름 탄탄하기 때문에 확장재정을 해도 괜찮다, 더 해도 된다라는 이야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꾸만 곳간에 있는 것이 다 바닥나버리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한다"며 "글로벌 경기가 어렵고 우리나라도 그 상황 속에 있다면 적극적으로 정부가 나서는 것이 해야 될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민정 대변인의 발언은 청와대와 여권의 생각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7일 당정회의를 갖고 금년의 확장적 재정기조가 나타나도록 당정은 중앙재정 97% 이상, 지방재정 90% 이상, 지방교육재정 91.5% 집행률을 목표로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마디로 남아 있는 돈을 다 써버리자는 것이다. 그 명분으로 경기활성화를 들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이런 방침을 세우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는 남은 한달여 동안에 예산을 아낄 생각을 않고 펑펑 써대게 될 게 분명하다. 멀쩡한 보도 블록을 뜯어내 다시 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크게 하고, 연말 행사를 크게 벌이는 일도 생겨날 수 있다. 예산을 다 쓰는 게 선(善)이요, 남겨두면 잘못이라는 상부의 방침이 정해졌으니, 말단 집행자들은 어떻게든 예산들 다 써야 할 입장이 되었다.
대변인의 발언 가운데 옳은 것은 있다. 글로벌 경제가 어렵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재정의 역할을 높이는 게 옳은 방향이다. 국제신용평가기관도 그렇게 지적한다.
그런데 정부는 재정 역할을 늘리라는 지적을 재정 확대로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재정이 남아돌아가면 국민들에게 돌려 주는 세금 환급(tax refund)이라는 개념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세금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국민들에게서 재산권을 빼앗는 것이다. 따라서 늘 정부와 국민 사이를 긴장시키는 것이 세금이고 세금이 남으면 국민(주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선진국에서는 돈이 남아돌아가거나 경기가 불황에 빠질 때 세금환급 정책을 사용하곤 했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정적자를 해소한 후 세금을 환급해주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에는 경기 불황 해소 대책으로 세금 환급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는 국민(주민)에게서 세금을 걷어 남으면 되돌려 주려 하지 않는다. 어떤 명분으로라도 정부가 사용하고 싶어 한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예산을 정부가 집행하는 것보다 개인이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인당 100만원씩 세금을 개인에게 돌려주면 그 돈이 대부분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돈을 목돈으로 삼아 정부가 집행하면 그 효율이 떨어진다. 공공기관의 효율성에 문제가 있기도 하고, 선심성 정책으로 남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남은 예산을 다 써버리겠다면 그 돈을 납세자들에게 연말 보너스로 돌려줘 보라. 봉급쟁이들이 연말에 얼마 되지 않는 세금정산 환급금으로 즐거워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지지율도 오르고, 정부가 예산을 아껴쓰다가 남은 것을 돌려줬다고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내년에 확장예산을 하더라도 아껴 쓸 터이지 하며 믿게 된다.
고민정 대변인의 말은 틀렸다. 예산 창고에서 썩어가는 돈을 써야 한다며 논리를 둘러 댈 게 아니라, 돈이 썩지 않게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했으면, 정부가 얼마나 이쁘게 보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