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비밀정원 백사실 계곡에서 가을을 느끼다
도심 비밀정원 백사실 계곡에서 가을을 느끼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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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항복의 별장터…도룡뇽과 맹꽁이가 서식하는 청정지역

 

입동이 지나고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 졌다. 가로수 은행나무 잎은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졌다. 이제 단풍은 절정을 지나 낙엽으로 변해가는 게 역력하다. 깊어가는 가을에 발길을 내디딘 곳이 부암동 백사실 계곡이다.

서울 한복판에 비밀정원이 있다는 사실은 서울시민들에겐 행복한 일이다. 도심에서 버스로 몇정거장만 가면 한적한 산책로가 나오고, 강원도 어느 산간마을과 같은 자연의 숲을 만날 수 있다.

 

백사실 계곡의 단풍 /김현민
백사실 계곡의 단풍 /김현민

 

백사(白沙)는 조선 중기 문신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호로, 이 곳은 이항복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백사실이란 지명이 생겼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211월 조선후기 서예가인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이 터를 사들여 새롭게 별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옛 문헌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창의문(자하문) 일대는 박정희 정권 때 쳐놓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인해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집이 허물어져도 고치지 못했고, 빈 땅이 있어도 새 집을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서울 도심에 이렇게 원시림이 보존되었다.

그 규제가 수십년 지나 도시인들에게 큰 복으로 돌아왔다. 행정구역은 종로구 부암동.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상 /김현민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상 /김현민

 

백사실 계곡을 가기 위해 자하문 터널 직전 경기상고 앞에서 내렸다. 언덕길을 오르면 창의문 바로 앞에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상이 우뚝 서 있다. 최규식 경무관은 종로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중에 1968121일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공격하기 위해 남하 중이라는 첩보를 접수하고 이를 막기 위해 경찰관들과 현장을 지휘하다 공비들이 난사하는 총탄에 맞아 순국했다. 정종수 경사도 최 경무관과 함께 무장공비와 교전하다가 순국했다.

 

윤동주 문학관 /김현민
윤동주 문학관 /김현민

 

길 건너편에는 운동주 문학관이다. 윤동주(1917~1945)는 일제강점기에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등으로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194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해방되기 직전인 1945216일에 세상을 떠났다.

 

커피프린스 1호점 '산모퉁이' /김현민
커피프린스 1호점 '산모퉁이' /김현민

 

창의문 앞 삼거리에서 북악산로 샛길로 빠져 산책 코스가 나온다. 부암동에서 가는 길은 아기자기하다.

가벼운 오르막길을 산책삼아 가다보면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배경이 된 산모퉁이라는 커피숍이 나온다. 거의 정상 부근이라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암동 풍경이 넉넉하다.

그곳에서 커피 한잔하고 내려가면 백사실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쩌든 도시 생활을 피해 잠시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걷기 좋은 코스다.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새겨진 각자 바위 /김현민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새겨진 각자 바위 /김현민

 

백사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새겨진 각자(刻字) 바위가 나온다. 백석동천이란 말은 백악산(북악산) 뒷자락 수려한 백사골에 조성된 동천(洞天: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의 하나로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석산백악산(북악산)’에서 착안된 것으로 풀이 된다. 명승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석 아래에는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연못이 있고 그 옆에 정자의 기둥으로 사용되었을 주춧돌이 땅에 박혀 있다. 주춧돌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보면 작은 한옥 한 채가 그려진다. 남북을 중심으로 육각정자이며, 3.78m 정도의 높은 대지 위에 사랑채 부분과 안채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랑채와 정자 등은 건물터에 기초만 남아 있고, 담장과 석축 일부도 남아 있다.

 

백사실 계곡의 정자 터 /김현민
백사실 계곡의 정자 터 /김현민

 

이곳에 별장을 지었던 이항복은 해학과 기지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래서 어린이용 책자에 오성과 한음을 짝지어 소개된다.

그의 장인은 임진왜란때 도원수 권율(權慄)이었다. 이항복이 어렸을 때 집에서 자라던 감나무 가지가 이웃 권율 대감집으로 휘어지자, 권율은 자기네 것이라며 감을 따먹었다. 그러자 이항복은 권율의 방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그럼 이 주먹은 누구 것입니까추궁했고, 결국 권율에게서 미안하다는 승복을 얻어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권율은 그에게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 친구인 한음 이덕형과의 우정에서 나온 우스갯소리도 있다. 어느날, 이항복이 전염병으로 몰살한 일가족의 염습을 이덕형에게서 부탁받고 혼자 그 집에 갔는데, 갑자기 시체가 일어나 볼을 쥐어박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 알고보니 이덕형의 장난이었다.

이항복은 이런 기지와 해학이 있었기에 풍류를 즐길줄 알았고, 이 백석계곡에 정자를 지어 벗들과 정담을 나눌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백사실 계곡의 연못 터 /김현민
백사실 계곡의 연못 터 /김현민

 

최근에는 이 백사실 계곡에 도룡뇽과 맹꽁이들이 집단서식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만큼 청정계곡인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폭포가 나오고, 그곳에 현통사라는 절이 있다.

백사실 계곡은 서울의 대표적 자연생태 명소로, 2009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백사실 계곡의 현통사 /김현민
백사실 계곡의 현통사 /김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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