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⑫…조셉 나이의 ‘소프트 파워’론
9/11 그후⑫…조셉 나이의 ‘소프트 파워’론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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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등 ‘하드 파워’ 지양하고, 문화·이념 등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이끌어야

 

20024월초, 보스턴에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조셉 나이(Joseph Nye)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로마 제국이 망한 이유로 외부(야만족)의 공격과 내부의 부패등 두 가지를 들었다. 미국은 9·11 테러를 겪었고, 에너지 그룹 엔론을 비롯해 연이은 회계부정사건이 터졌으니, 미국은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부패를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쇠퇴기에 접어든 것일까.

나이 교수는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 파워(hard power)’의 사용을 지양하고, 문화와 이념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많은 나라를 설득함으로써 세계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이지만,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패러독스를 설명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 지식인들 사이에 제기된 논쟁은 아무도 대적할수 없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그 대표적인 논쟁이 미국이 절대 우위의 힘을 일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일방주의(Unilateralism)’와 우방의 협조를 얻어 세계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대결이다.

이 논란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한반도와 중동문제등 세계 문제를 중요한 변수로 되었다. 나홀로 주의와 다자주의의 논란은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제기됐으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국정연설에서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후 본격화되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등 강경 보수파들이 일방주의를 고집하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다자주의를 주창했다.

미국에서 일방주의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전쟁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차있고 테러에 대한 미국인들의 증오심이 높은데다 전쟁 수행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미온적으로 협조한 것등을 꼽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지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월스트리트 저널의 로버트 폴락 등 컬럼니스트들은 요즘 일제히 악의 축에 대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방주의자들은 반미 국가에 대한 방임적 태도가 테러를 초래했으며, 유럽등 우방국가의 협조가 미온적이기 때문에 테러 온상지가 되고 있는 지역에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 개입을 역설했다.

 

이에 비해 다자주의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을 비롯, 민주당과 공화당 온건파에서 제기됐다. 다음 대선에서 유력한 경쟁자로 지목되고 있는 고어 전 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한 부시 대통령을 전폭 지지하지만, 우방국가와의 협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나홀로주의를 경계했다. 하버드대의 나이 교수는 저서 미국 힘의 패러독스에서 미국은 로마제국 이후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 우위를 차지했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각국과 협력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독자주의는 유럽과 우방국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독일 외무장관은 우리는 미국의 위성국가가 아니다며 비난했고, 유럽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전쟁 악화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수상도 미국 우월주의에 견제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부시 정부는 전임이었던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보다 미국의 힘을 강조했다. 공화당 보수파들이 대거 행정부에 진출한 탓도 있지만, 테러 이후 공화당 정부는 미국만의 힘으로라도 테러리스트의 온상을 제거하고, 악의 국가를 처벌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은 대외정책에서 처음에는 완강한 일방주의에서 출발했다가 나중에 다자주의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부시 행정부도 미국의 대외정책이 우방국의 협조를 얻어낼 때 더욱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2년초 팔레스타인 강경파들이 이스라엘 시민 주거지역과 상가에 들어가 자살 폭탄 공격을 하고, 이스라엘이 무차별 보복 공격을 단행할 때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미국의 태도에 대한 국제 여론이 나빠질 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군 철수를 요구했고, 부시 행정부는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했다.

20021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미국을 방문해, 체니 부통령을 비롯, 보수파 지도부의 환영을 받았다. 그후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구름에 가려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20022월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에 많은 것을 양보, 햇볕정책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라크와의 전쟁 여부를 놓고 미국 국방부 강경파들은 우방국의 지원이 없더라도 미국만의 공격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다자기구인 유엔을 통해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결국 유엔 안보리의 만장일치를 얻어 이라크 무기사찰단을 파견했다.

9·11 직후에 미국 보수세력들은 당장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자고 했지만, 다자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과거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파키스탄을 끌어들임으로써 승리했다.

 

조셉 나이 교수 /위키피디아
조셉 나이 교수 /위키피디아

 

조셉 나이(Joseph Nye) 인터뷰 (200241)

 

조셉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 학장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입안한 브레인답게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역할을 명쾌하게 풀어갔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 중심의 일방주의(unilateralism)로 국제문제를 리드하는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팍스 아메리카나가 200년 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고, 21세기는 20세기보다 더 완벽한 미국의 세기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의 주장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 노선을 완화하는데 설득력을 갖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은 어쩔수 없이 제국주의적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미국은 제국주의로 가고 있다고 봅니까.

나는 그런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는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다만 가장 크고, 강력한 나라일 뿐이며, 그런 점들이 미국의 우위를 제국주의로 오인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제국주의는 대영제국처럼 하나의 중심국에서 아주 강력한 통제력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대영제국은 제국 영역에서 현지 법률과 학교제도 등 여러가지를 통제했습니다. 미국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질 않습니다. 미국의 우위를 제국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 대영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팍스 브리태니카는 200년을 지속했습니다. 미국이 세계 우위를 유지하는 팍스 아메리카는 얼마나 지속할 것으로 봅니까.

참으로 예측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영국은 18세기말부터 세계 주도권을 잡았고, 19세기에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영국이 미국에 주도권을 넘겨주기까지 두 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들은 영국이 200년동안 주도했으니, 미국도 두 세기 동안 세계를 주도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나도 어느 정도 수긍합니다. 20세기는 중반 이후부터 미국이 주도했으므로 미국의 세기라고들 합니다. 21세기는 두번째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며, 19세기가 영국의 세기였듯이 21세기는 더욱 강력한 미국의 세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제가 미국 힘의 역설이라는 책에서 강조했듯이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협조하면서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로마 제국은 야만인에 의해 공격받아 붕괴됐습니다. 미국은 야만적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표현했는데, 미국이 로마 멸망에서 무엇을 배울수 있습니까.

로마제국 붕괴의 요인은 두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부의 부패였고, 두번째는 야만족의 공격이었습니다. 로마는 다른 제국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 로마제국 멸망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미국) 내부 사회와 경제를 조화하고, 야만적인 테러리스트를 제어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협력하는 것을 유의 깊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 내부에 부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로마보다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야만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협력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번 지적했듯이 로마제국은 쇠태하기 시작한 후 몇세기가 지나서 멸망했습니다.

- 1989년에 쓴 책에서 일본 경제가 궁극적으로 미국을 따라갈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엔 일본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자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관점이었습니까.

(80년대말에) 일본이 세계 제일의 경제력을 보유할 것이라고 본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의 허약함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제조업의 특정 분야에서는 대단히 강했지만, 경제 환경이나, 농업 부문에서는 아주 취약한 구조를 노출했습니다. 게다가 제조업에서도 가전과 자동차 부문과 같이 특정 분야에서는 아주 경쟁력 있고, 강했지만 다른 분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정 산업에서의 성공이 다른 분야의 성공으로 이해됐고,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본은 전반적으로 서비스 분야에서 취약합니다. 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보면 일본은 일부분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을뿐 다른 분야에서는 한국에 비해 경쟁력에 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 분야는 일본이 아주 취약합니다.

나는 일본 경제는 정보 혁명의 시대에 적응하려면 더 많은 구조 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구조변화는 정치 시스템에 의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금융시스템, 특히 은행 시스템의 개혁도 역시 정치 시스템에 의해 지연되고 있습니다.

- 911 테러 직후에 미국 경제는 강한 힘으로 회복했습니다. 미국 경제가 회복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미국 경제 저류에 깔려 있는 노동생산성이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생산성은 1995년 이후 연평균 2.0~2.5%의 비율로 증가했는데, 이는 90년대 초반의 연평균 증가율에 비해 두배나 빠른 기록적인 수치입니다. 이 생산성 증가가 미국 경제를 쉽게 회복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테러 직후에 미국 경제에 우려됐던 위험은 소비자 신뢰가 무너질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런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업) 투자가 무너졌지만 소비가 유지됐던 것이 미국 경제를 살렸습니다.

- 중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봅니까.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대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괄목한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 경제가 빠른 속도의 성장을 지속하고, 미국이 단지 연간 2% 성장을 한다고 가정하도 중국은 2060~65년까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고,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머나먼 길을 가야 합니다.

군사적인 분야도 경제적 기초에 달려 있습니다. 첨단 군사 기술 분야도 미국이 혁신적인 정보 기술을 군사 부문에 적용함으로써 중국을 앞서 나갈 것입니다.

- 중국은 미국보다 인구가 몇배나 많지 않습니까.

인구는 많습니다. 그렇지만 인구가 반드시 국력을 재는 기준이 될수 없습니다. 교육을 받고, 기술을 가진 인구를 가지고 있을 때 인적 자원으로 계산되는 것입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인구가 많은 것은 사회적 혜택을 거꾸로 되돌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 베를린 장벽 붕괴후 세계 단일 시장이 형성되고, 국가라는 존재는 종속적 개념으로 변했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로 될 것입니까.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도 국가는 지배적인 기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국민을 묶고,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는 등의 역할은 국가가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글로벌 시대에 정부 이외에도 비정부 기구(NGO)와 다국적 기업, 테러리스트 네트워크와 같은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이들 조직을 다루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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