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사라진 전통무예가 한국에 보전된 사연
중국에서 사라진 전통무예가 한국에 보전된 사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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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 때 明軍에서 6기 전수받아 전통무술과 여진·일본 무술 합쳐 십팔기로 계승

 

중국의 인민일보 시장보(人民日報 市場報) 2015131일자 인터넷판에 辛成大让戚继光武艺文化异彩半岛的使者특집기사가 실렸다. 해석하자면 신성대, 척계광의 무예문화에 새로움을 더한 한반도의 전수자라는 뜻이다.

이 기사는 중국 전통무예 6(六技)가 중국에서는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신성대(辛成大) 십팔기보존회장이 중국의 무예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는 내용을 실었다. 기사를 쓴 팡웬리(方雲偉) 기자는 20141월 한국에 출장을 왔다가 조선의 국기 십팔기의 유래와 전승 내역을 전해듣고 관심을 가지게 되어 취재했다.

조선의 국기 십팔기(十八技)에는 450여 년 전 명()나라 국기였던 무예6(, 鏜鈀, 狼筅, 藤牌, 拳法, ) 포함되어 있다. 명나라 장군 척계광(戚繼光)의 병서 <기효신서>(紀效新書)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6가지 기예가 중국에서 실전(失傳)되었지만, 한국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 기자는 놀랐다고 한다.

 

신성대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과 보존회원들 /중국 인민일보 시장보 캡쳐
신성대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과 보존회원들 /중국 인민일보 시장보 캡쳐

 

척계광(戚繼光, 1528~1588)은 명나라 말기에 지금의 절강성(浙江省)과 복건성(福建省) 일대에서 왜구를 물리치는 일에 큰 공을 세운 장수로, 조선의 이순신만큼이나 중국인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무장이다. <기효신서>(紀效新書) 등의 병서를 남겼다.

신성대 회장
신성대 회장

 

척계광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시진핑은 어렸을 때부터 남송(南宋) 때의 무장 악비(岳飛) 명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 19세기 프랑스와 전쟁 때 프랑스군을 대파한 풍자재(馮子材) 등 세 장군을 흠모해왔다고 한다.

시진핑은 2014428일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카스(喀什)지구의 한 파출소를 시찰하면서 척계광의 6기를 언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진핑은 경찰봉을 보고 왜구(倭寇) 격퇴에 업적을 세운 명()의 장수 척계광이 떠올랐다면서 “5명이나 7명씩 대나무 창을 이용해 왜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 뒤에, 방패를 든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가 격살했다고 말했다.

 

척계광은 산둥성(山東省) 지닝(済寧) 출신으로, 154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등주위(登州衛)의 장수가 됐으며, 저장성(浙江省)에서 왜구(倭寇)의 침입에 맞서 항왜(抗倭)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는 4,000명의 의용군을 모아 주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수군을 조직해 중국 남동부의 해안 지역에서 밀무역을 하며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의 토벌에 성공했다. 그는 지뢰에 점화장치를 사용해 오늘날 지뢰의 발명가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에 명나라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연전연패했다. 효과적인 전법이 없었다. 명나라 군대는 대개 농사를 짓다가 나온 농민병으로 구성돼 있었고, 왜구는 거의 직업적인 무사로 이뤄졌다. 명군은 병력 우위를 앞세워 방패와 창을 들고 적을 압박하는 밀집대형 위주로 전술을 운용했지만, 이러한 집단 전술은 왜구에게 통하지 않았다.

왜구의 무기는 긴 일본도였다. 왜구의 일류무사가 명나라 군대의 밀집대형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창과 방패와 몸통을 한 번에 갈랐고, 병사 여럿을 한 번에 쓰러뜨릴 수도 있었다. 일대일 전투, 전술 운영 능력, 전투 경험 등 모든 부분에서 왜구는 명나라 군대를 압도했다.

이런 약점을 극복한 것이 척계광이었다. 척계광은 왜구를 섬멸하기 위해 원앙(鴛鴦)’진법이라는 전술을 창안했다. 원앙진법에서 한 팀은 12명으로 구성한다. 척계광은 접전상황과 왜구의 검법을 연구해 각자의 임무와 기능을 아주 세밀하게 재구성했다. 큰 방패를 든 병사가 앞에 두명 나서고, 2명은 사슴뿔 형태의 죽창을 맡았다. 뒤의 4명은 창을 들고, 뒤의 2명은 삼지창을 들었다.

척계광의 원앙진법은 왜구를 물리치는데 주효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척계광의 원앙진법이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중국에서 사라진 무술이 한국에선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척계광의 원앙진.  /신성대 제공
척계광의 원앙진. /신성대 제공

 

척계광의 무술이 한국에 전해진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했다. 임진왜란이다. 조선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임금인 선조가 수도를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갔다. 그때 명나라에서 구원군을 보냈다.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제독은 평양에서 왜군을 대파했다. 선조는 이여송의 군진가지 찾아가 공을 치하했다.

그 자리에서 선조는 지난번 전투는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이겼으니 어찌된 일인가하고 물었다. 이여송이 대답하길 앞서 전투에서는 여진족을 방어하는 전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불리했지만, 지금 사용한 병법은 곧 왜적을 방어했던 척계광 장군의 <기효신서>를 따랐기에 승리할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북방의 여진족은 기마병인데 비해 남방 왜구들은 보병이었기 때문에 전술이 달랐다. 이여송은 척계광의 무예와 전술로 훈련된 남방의 절강군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왜군을 효과적으로 격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선조가 <기효신서>를 좀 보자고 했지만, 이여송이 군사비밀이라며 거절했다. 그러자 선조는 역관에게 몰래 영을 내려 이여송 휘하를 매수하여 그 비밀을 구했다. 그리고 유성룡에게 해독하게 했지만, 병법을 모르는 그도 알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여송 휘하의 낙상지(駱尙志)라는 장수가 의리가 있어 유성룡에게 우리 명군이 돌아가면 조선이 홀로 어찌 지키겠소. 그러니 명군이 돌아가기 전에 기회를 봐서 군사 조련법을 배우는 것이 어떻겠소하고 권했다. 이에 유성룡이 서둘러 장교와 70명의 군사를 모집해 낙상지 휘하 병사 10명을 교관으로 삼아 밤낮으로 창(), (), 낭선(狼筅)을 익혔다.

이렇게 해서 척계광의 무예가 임진왜란 중에 조선군에 전해지게 됐다. <기효신서>에는 사법(射法)을 비롯해 창(), 당파(鏜鈀), 낭선(狼筅), 등패(籐牌), (), 권법(拳法)이 실려 있는데 중국 병장무예서로는 유일하게 남아 지금까지 전해져온다.

 

한국의 십팔기 시연모습 /중국 인민일보 시장보 캡쳐
한국의 십팔기 시연모습 /중국 인민일보 시장보 캡쳐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思悼世子)는 어릴 적부터 무예를 좋아하여 대궐에서 기예를 익혔다. 사도세자가 섭정할 때 그동안 정립된 무예 18가지와 기예 4가지를 완성하여 <무예신보>(武藝新譜)를 펴낸다. 조선의 국기 <십팔기(十八技)>란 이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십팔기는 중국에서 건너온 척계광의 무술에다 왜와 여진의 무술을 보태고, 합치고, 조선에 전해오는 무술을 포함해 만든 18가지 기예의 종합이다. 십팔기의 기예는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鏜鈀), 낭선(狼筅),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월도(月刀), 협도(挾刀), 등패(籐牌), 권법(拳法), 곤봉(棍棒), 편곤(鞭棍) 등이다.

우리민족은 한··일의 무예를 종합하고 체계화했다

 

중국은 지난날 공자묘에 제사 지내는 법을 잃어버렸던 한국에 남아있는 제례법을 가져간 적이 있다. 최근 한중간에 인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에 척계광의 무예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면 무척 놀라고 반가워 하고 있다.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산성대 대표는 현재 동양 3국은 물론 지구상에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로 그 기록과 실기가 전해지는 군사무예, 즉 마샬아트(marshal art)는 이 십팔기가 유일하다, “한중간의 교류 확대를 위해서도 십팔기의 계승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십팔기를 중국무술로 오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 역사에는 십팔기란 단어가 없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 한중일의 동양무술을 종합해 체계화시킨 것이 무예 십팔기다. 그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으로 남긴 서책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한국만이 가진 위대한 기록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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