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서석대·입석대의 주상절리에 감탄하다
무등산 서석대·입석대의 주상절리에 감탄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17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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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만년전 백악기에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수정병풍

 

무등산은 한번 꼭 올라보아야 할 산이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시간을 내어 등산 기회를 가졌다. 아침에 늦잠을 자 허겁지겁 용산역에 달려갔다. 꼭두 새벽부터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기차에 발을 올려 놓으니 열차가 서서히 미끄러졌다.

 

국립공원 입구 증심사 지구에는 단풍에 곱게 물들었다. 올해 마지막 단풍을 광주에서 본다.

무등산(無等山)은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로 광주·전남의 진산(鎭山)이다. 20133월에 우리나라의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면적은 75.425이다. 정상인 천왕봉은 해발 1,187m. 우리나라에 인구 100만 이상 도시 가운데 1m 이상 높은 산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광주광역시 하나뿐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코스를 대충 보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증심사(證心寺)를 지나니 중봉과 새인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져 있다.

새인봉으로 가는 길목에 약사사(藥師寺)라는 암자가 있다. 오늘도 편안한 등산이 되기를 부처님께 빌었다. 약수를 받아 병에 넣고 오르막을 올랐다. 오를 때엔 몰랐는데, 내려올 때 보니 가파르고 팍팍한 산길이었다.

 

무등산에서 내려다 본 광주광역시 /김현민
무등산에서 내려다 본 광주광역시 /김현민

 

중머리재가 나왔다. 고갯마루가 넓은 초원지로 마치 스님의 머리 닮아 '중머리‘(頭峯)이라 해다고 한다.

다시 오르막길을 가는데 길이 갈라진다. 우리는 장불재 구간을 선택했다. 이제부터 돌 구간이다. 큰 바위가 부서져 각진 돌이 길을 이루었다. 아침에 허겁지겁 나오느라 등산화를 찾지 못해 운동화를 신었더니 발이 아팠다.

겉보기에 무등산은 흙산 같지만 실제로 등산으르 해보니, 돌산이다.

역사 기록에 이 산은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다.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였던데서 파생된 이름인 것 같다. 즉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렸고, 산 정상부의 주상절리는 상서로운 돌로 인식되어 고려 시대부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한때 무덤산 혹은 무당산이라는 명칭도 있었다고 하는데,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될 무렵에 무당들을 정리했다.

 

무등산 정상부의 돌무지 /김현민
무등산 정상부의 돌무지 /김현민

 

산이 우리를 속였다. 아니, 우리가 무등산에 무지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저만치 가면 능선이 보일듯했는데, 그것에 가니 또다른 고갯길이다. 한참을 올라가니, 통신기지가 나왔다. 군부대의 통신시설, 방송국의 시설, 통신사의 시설이 한군데 모여 있다.

그곳에 휴식공간이 있다. 주변이 돌무지다. 멀리 입석대와 서석대 주상절리대가 보인다.

무등산의 주상절리대는 광주시 동구와 전남 화순군 이서면의 경계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곳이 분수령이다. 서쪽으로는 광주를 가로지르는 광주천의 수원지이고, 동쪽은 섬진강 유역이다.

무등산은 지금부터 백악기 시절에 화산활동을 생긴 산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사화산이 되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주상절리가 빽빽이 들어섰다. 지질학자들은 무등산 주상절리가 생긴 시기는 약 7천만년전이라고 한다. 수정으로 만든 병풍과 같다 해서 수정병풍이라 한다.

주상절리의 대표적인 입석대, 규봉, 서석대인데, 입석대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이루었다. 그래서 상서로운 돌(瑞石)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18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주상절리가 가득찬 무등산이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번째로 지정된 세계지질공원이다.

 

무등산의 입석대 /김현민
무등산의 입석대 /김현민

 

다시 입석대와 서석대로 향했다.

입석대(立石帶)는 말 그대로 선돌(立石)이 띠처럼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정상부 1,017m 지점에 있다. 장불재(長佛峙)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정상의 서쪽에 있다.

그야말로 절경이다. 다리가 아프도록 이 곳을 이유도 이 절경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높이 1015m의 돌기둥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다.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관이다. 돌기둥은 58면체의 각석(角石)이며, 하나의 암주(巖柱)3,4단의 석주(石柱)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축단은 이곳이 가뭄이나 질병의 전염이 심할 때 지방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祭天壇)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입석암(立石庵)을 비롯하여 주변에 많은 암자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등산의 입석대 (측면) /김현민
무등산의 입석대 (측면) /김현민

 

입석대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주변에는 무너진 주상절리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지질학적으로 너덜, 또는 너덜겅이라고 부르는데 하나의 덩어리였던 주상절리대와 기반암이 빙하기를 거치면서 풍화되어 거석들이 강처럼 흐른 흔적을 말한다. 이러한 대규모 너덜이 여럿 존재한다.

 

무등산 정상부 곳곳에 무너진 주상절리 /김현민
무등산 정상부 곳곳에 무너진 주상절리 /김현민

 

서석대 정상으로 가는 길에 승천암(升天岩 또는 昇天岩)이 나온다. 옛날 이 부근에 암자가 있었는데, 무언가에 쫓기는 산양이 나타나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을 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러도 잡아 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후 난데 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다.

 

승천암  /김현민
승천암 /김현민

 

우리는 서석대까지 가보지 못했다. 다만 해발 1100m 위치에 서석대(瑞石臺)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곳에서 서석대를 바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석대 표지석 /김현민
서석대 표지석 /김현민

 

서석대는 높이 약 30m, 너비 1~2m의 다각형 돌기둥 200여 개가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무등산의 대표적인 명소다.

건너편 서석대가 보이는 곳이 해발 1187m 무등산의 정상 천왕봉이다.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방공포대가 무등산 정상 천왕봉(天王峰)에 자리잡았다. 따라서 평상시엔 일반인의 무등산 정상 출입은 상시 통제되어 있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무등산 정상 개방행사를 여는데, 그때엔 수많은 인파의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무등산 정상 천왕봉과 서석대 /김현민
무등산 정상 천왕봉과 서석대 /김현민

 

정상을 밟지 못해 서운했지만, 이제 우리는 내려가기야 했다. 초겨울 해가 짧기 때문에 오래 머물 여유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 온 길의 역순을 선택했다.

무등산은 불교 용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무등(無等)은 평등이 크게 이루어져서 평등이란 말조차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처음부터 무등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기보다 광주의 옛 이름으로 추측되는 '무들'을 음차하면서 갖다붙이면서 불교의 용어를 선택해 미화했던 게 아닐까.

내려와서 포식을 했다. 반찬 20여가지가 나오는 호남 음식은 다리의 아픔을 잊게 했다.

 

무등산 등산 코스 /네이버지도
무등산 등산 코스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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