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파워⑧…카지노 자본주의
미 금융파워⑧…카지노 자본주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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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뮤추얼펀드도 단기 거래로 전환 추세…자본의 투기성화 가속

 

라스베이거스는 밤의 도시다. 거리 곳곳에는 불야성을 이루며, 호텔마다 카지노가 개설되어 있다. 심지어 조그마한 주유소까지 도박기계를 설치해놓고 기름 넣으러 온 사람의 돈을 뜯고 있다.

도박의 세계는 비단 라스베이거스만 아니다. 뉴욕 월가도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의 세계와 다를 게 없다.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성이 강한 자본시장의 논리가 세계금융중심지라고 자부하는 월가의 논리다. 투자자는 도박의 심리로 주식과 채권을 산다. 펀드매니저와 브로커는 카지노 진행자로서 공전을 뜯고, 정부는 증시라는 카지노에서 세금을 걷는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아는 블루칩이라는 용어도 카지노의 파란색 칩에서 나온 말이다.

 

1999년 기준으로 뉴욕 증시에서 거래되는 주식 총량은 평균 15억 주에 달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전체 주식중 1년에 회전되는 비율이 95%에 이르렀다. 즉 거의 모든 주식이 한해에 한번쯤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 거래됐다는 얘기다.

뉴욕증시의 연간 회전율은 공황이 발생,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식을 팔아제꼈던 1929년에 119%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그후 증시안정기가 도래하면서 회전율은 급감했다. 1960년에는 회전율이 12%였는데, 이는 전체 주식이 한번씩 거래되는데 8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 회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 거래빈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960년대에 증시에서 장기투자자라 함은 주식을 5~6년간 보유하는 사람을 일컬었고, 1년 보유자는 단기투자자에 포함됐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미국 투자자들이 단기투자자로 전락해, 단기 차액을 노리는 카지노장의 도박꾼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최근엔 1년간 주식을 보유하는 사람을 장기투자자라고 하고, 1개월만에 주식을 회전시켜야 단기투자자라고 부를 정도로 용어상 변화마저 생겼다.

그러면 월가라는 카지노에서 누가 돈을 버는 것일까. 바로 투자기관과 정부다. 개인 투자자들은 돈만 갖다 바치고, 카지노 진행자(croupier)들이 번창한다. 펀드 매니저들은 호화 저택에 요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노후 복지만 보장하면 만사 OK. 이 거대한 도박장은 펀드매니저라는 전문 도박사들에 거대한 부()를 만들어 주고, 정부는 카지노를 설치한 대가로 엄청난 세금을 걷어간다.

뉴욕 월가의 카지노엔 엄청난 개평꾼들이 많다. 뮤추얼 펀드의 경우 매니저들은 운영 자산의 1.5% 정도를 먹는다. 또 펀드의 세일즈맨들이 0.5%, 직접 주식 거래에 참여하는 브로커들이 또 1%를 뗀다. 연방 정부는 1.5~3%의 세금을 걷는다. 주식 거래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정부는 많은 세금을 걷어 배를 불린다. 1998년 현재 연방 정부는 월가의 주식거래에서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100억 달러의 개평을 뜯어갔다.

월가의 뮤추얼 펀드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 존 보글(John Bogle)은 뉴욕타임스지에 기고한 월스트리트 카지노라는 글에서 재미있는 산수를 소개한 적이 있다. 1)

“25년간 증시가 연평균 10%의 이익을 낸다고 가정하자. 투자자가 처음에 1만 달러를 투자해놓고, 25년을 기다리면 108,300 달러로 불어난다. 그런데 (펀드에) 2.5%, (정부에) 1.5%를 각각 지급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투자자는 25년후에 42,900 달러를 되돌려 받는다. 나머지 65,000 달러는 펀드매니저와 정부에 돌아간다. 카지노 진행자인 기관투자자가 44%, 정부라는 개평꾼이 16%를 먹고난후 개인투자자들의 손엔 나머지 40%만이 돌아온다.”

증시의 회전속도가 빨라질수록 카지노 진행자들의 이익은 커지고, 투자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작아진다. 카지노는 번창하지만, 횡재를 노리고 카지노에 덤벼들었던 섣부른 손님들은 겨우 여비만 건져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야경 /위키피디아
미국 라스베이거스 야경 /위키피디아

 

월가 카지노의 진행자인 펀드들은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고객들을 모은다. 1년에 10%의 이익을 보장해주겠다느니, 다우존스 지수 상승 폭만큼 이익을 내주겠다느니 하며 유혹한다. 월가의 진행자들은 메릴린치, 골드만 삭스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 기관투자회사들이 있는가 하면 조그마한 사무실 하나를 얻어 몇억 달러의 자금을 운영하는 펀드들이 있다.

여기서 일단 펀드들을 살펴보자. 수천 개에 이르는 펀드는 뮤추얼 펀드와 헤지펀드등 크게 두 부류로 분류된다. 헤지펀드는 아시아 위기 이후 투기자본의 대명사로 몰린바 있지만, 전체 자본 규모가 큰 뮤추얼 펀드도 투기성에서 헤지펀드에 뒤지지 않았다.

헤지펀드 사무실에는 전화와 팩시밀리, 컴퓨터가 놓여져 있고, 벽은 각종 그래프가 도배돼 있다. 젊은 펀드 매니저들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하루종일 컴퓨터와 싸우며 많게는 수십억 달러, 적게는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운영한다.

이들은 투자은행이나 뮤추얼 펀드의 복잡한 체계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투자를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증권당국의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주식 뿐 아니라 파생금융상품, 외환거래, 채권등 이익이 날 것 같으면 어떤 금융상품에도 손을 대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동원한다. 이들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백만장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맡아서 그 대가를 받느냐 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카지노 딜러들이다.

헤지펀드들은 다른 투자기관에 비해 모험적인 투자, 특히 단기 투자에 손을 많이 댄다. 당국의 규제를 피해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니저들의 소득계산방법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1년에 운영자금의 1%를 수수료로 받고, 이익금의 10~30%를 자기 몫으로 챙긴다. 대개 이익금의 20%를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 월가 헤지펀드의 관례다.

예컨대 5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1년에 20%의 이익(1억 달러)을 남겼다고 가정하자. 매니저는 연말에 2,500만 달러의 거금을 쥐게 된다. 자본금의 1%500만 달러의 수수료와 이익금의 20%2,000만 달러를 합친 금액이다. 카지노 세계의 원리가 펀드매니저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은행이나, 뮤추얼 펀드에서 매니저들이 연말에 100만 달러 이상 보너스를 받으려면 회장이나 사장과 같은 상당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지위나 나이와 상관없이 운 좋게 머니 게임에서 이기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미국에선 얼굴 잘생긴 사람은 헐리웃의 영화사로 찾아 가고 머리 좋은 사람은 월가의 헤지펀드로 가라는 말이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대부분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프린스턴 등 미국 동부 명문대에서 경제학 석사(MBA)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헤지펀드를 세우기도 하고, JP 모건, 골드만 삭스, 메릴린치등 유력 투자회사에서 몇 년간 매니저를 거친 후 헤지펀드로 가기도 한다.

헤지펀드들은 바하마, 케이만 군도등 카리브해 섬들을 은신처로 삼고 있다.

헤지(hedge)’란 말은 안전한 자산관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헤지펀드는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스씨가 부유층의 안전한 자산관리를 위해 최초로 설립한 후 1990년대에 급성장했다. 증시가 불안할 때 백만장자들은 안전한 자금 운용을 위해 헤지펀드를 찾았고, 펀드 매니저들은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자들에게 이익을 붙여주었다.

 

헤지펀드가 백만장자들의 펀드라면 뮤추얼 펀드는 미국 중산층들의 재테크를 도와주는 펀드다. 뮤추얼 펀드는 투기자본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뮤추얼 펀드는 주로 샐러리맨들의 퇴직적립금을 모아 뉴욕 증시 및 채권시장에 투자하기 때문에 헤지펀드와 같이 무모한 도전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러나 리스크가 높은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늘어나고, 최근들어 그 수법에서 헤지 펀드에 못지 않게 투기화하고 있다. 또 뉴욕 증시가 곤두박질칠 때 뮤추얼 펀드의 매니저들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단기 투자에 과민하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뮤추얼 펀드는 대공황 직전인 1924년 개발돼 1980년대 이후 주식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급속도로 발달했다. 증시 호황이 지속되면서 중산층들은 고수익을 보장하는 저축수단으로 뮤추얼펀드에 적립했다. 미국 일반 가정은 재산의 30%를 뮤추얼 펀드를 통해 증시에 쌓아두고 있다. 직장인들은 서너 개의 뮤추얼 펀드에 가입, 다양하게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투자대상도 다양하다. 전체 뮤추얼 펀드 자금의 50%가 뉴욕 증시에 투자돼 있고, 나머지는 채권, 귀금속, 해외증시등에 잠겨 있다. 펀드 별로 자금의 10~20%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중 이머징 마켓 펀드는 리스크가 높고, 아시아 위기 이후 이들 펀드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뉴욕 월가를 떠도는 펀드 자금은 수조 달러에 달한다. 이들 자금이 수천 가지의 파생금융상품으로 전환될 때 몇 배의 승수효과를 갖기 때문에 그 규모는 수십조 달러로 불어난다.

투기성 자금은 컴퓨터 단말기에서 단 한번의 클릭으로 주식 거래에서 외환, 채권, 상품, 선물 거래에 이르기까지 수억 달러를 움직인다. 이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패러다임은 카지노 게임에서 진 나라에 경제 위기를 몰고 오고, 한발 더 나가 정치적 위기를 불러 일으킨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의 30년 독재가 무너진 배경에는 월가의 카지노 자본의 짓누름이 있었다. 카지노화되고 있는 뉴욕 금융자본은 21세기에도 기승을 부리며 전세계를 휘젓고 다니고 있다.

 


1) 1999823, NYT ‘The Wall Street Casino' by John B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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