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파워⑨…국제 자본의 메카
미 금융파워⑨…국제 자본의 메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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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주식합중국…기업의 자본조달, 기업 민주주의, 미국식 자본주의 형성

 

뉴욕 월가는 컴퓨터 온라인망을 통해 전국의 펀드는 물론 가정까지 연결돼 있다. 월가는 미국 기업과 금융산업의 중심지일 뿐아니라 미국인들 생활의 중심에 서있다.

미국의 봉급쟁이들은 노후 생활을 위해 주식시장에 적금을 붓는다. 장난감을 사겠다는 아이에게 스스로 대학 학비를 준비하려면 유망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미국 부모들이다. 초등학교 선생들은 1만 달러가 있다면 어느 회사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해 오라고 숙제를 낸다. 학생들은 어려운 월스트리트 저널지를 보며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투자회사를 선정한다. 학생들은 며칠후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를 차트로 만들어 제출하는 커리큘럼이 미국 학교에서 유행하고 있다. 고사리 손으로 한푼두푼 모아 저금통장에 넣던 시절의 얘기는 전설로 전해 올뿐이다.

평론가 제이콤 와이스버그씨는 아메리카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아메리카 주주연합(The United Shareholders of America)'이라고 표현했다. 주식시장의 장기호황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주식이 장기투자로 많은 이익을 남기는 상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그러면 뉴욕 월가가 미국경제와 미국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부조 /위키피디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부조 /위키피디아

 

월가는 주식대중화를 선도했다.

뉴욕 월가는 미국인들에게 주식투자 대중화를 만들어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주식투자 경진대회도 성행하고 있다.

1998년도 경제뉴스 전문 케이블 채널인 CNBC와 전화회사 MCI가 주최한 모의 경쟁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의 예를 들어보자. 뉴욕주 태리타운의 해클리 고등학생 5명은 1만 달러를 가지고, 개장 일수 61일만에 212,109 달러를 불려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의 투자 방법은 짧은 시간에 치고 빠지는 단기 매매방식이었다. 소년들은 월가의 프로들도 낭패하기 쉬운 투기성 거래에 과감히 도전, 두달만에 모두 198회의 거래를 시도했다. 비록 모의 투자였지만, 학생들은 두달만에 21배의 돈을 불렸다는 소식은 월가에선 충격적이었고, 일반 미국인들에게도 화젯거리였다.

정치인들도 주식투자자들을 겨냥해 지지를 호소한다. 유권자의 대부분이 주식투자자이기 때문이다. 1997년 가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무역자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신속처리권(패스트트랙)을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그때 클린턴은 주식투자자들을 향해 이 법안이 통과되면 주식시장에 매우 긍정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며 호소했다. 대통령이 의회와 마찰을 빚으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호소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관행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무역법안을 밀어붙이면서 유권자가 아닌 주식투자자에게 호소했던 것이다. 유권자 중에서 주식투자자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무역법안이 통과되면 북미와 남미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형성, 미국 경제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뛸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대다수 유권자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법안은 공화당의 완강한 반대로 유산됐지만, 워싱턴의 정가가 뉴욕 증시에 투자한 막강한 개미군단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일깨워준 일화다.

 

월가는 직접금융에 의한 거대한 산업자금을 제공한다.

뉴욕증시에 몰려든 자금은 산업자금이 되어 미국 기업에게 돌아간다. 미국 기업들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보다 주식 및 채권을 통한 직접 금융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높다. 간접금융 비율이 높은 일본 경제와 이를 모방한 아시아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월가를 통한 금융시스템의 우위 때문이다.

미국 기업에선 은행 차입금에 의한 자금 조달 비율이 20%에 불과하고, 직접금융 비율은 80%에 이른다. 그만큼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식시장의 투기성 자본을 산업자본화하는 기술을 미국은 익히고 있다.

 

월가는 벤처 자금을 제공한다.

월가는 기업의 유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직접 금융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유아기의 벤처 사업가들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벤처 캐피털을 이용,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월가의 자금시장은 유망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자금줄이다. 하버드 대를 중퇴한 건달(빌 게이츠)이 무일푼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월가의 풍부한 자금 덕분이었다.

소년기로 성장하면 장외시장인 나스닥에 등록하고 장년에 이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함으로써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다가 성숙단계에 이르면 월가의 투자은행의 지도를 받아 인수 합병(M&A) 과정을 거쳐 새로운 기업으로 태어난다.

뉴욕 증시의 가격 메커니즘은 성장성 있는 사업 부문에는 쉽게 필요한 자금이 유입되고, 사양 산업에는 자동적으로 자금이 빠져 나오는 금융구조를 형성한다.

 

월가는 기업 민주주의를 창출한다.

일본을 비롯, 아시아 국가에서 소액주주들이 기업총수를 쫓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단 한 주를 가지고 있는 주주라도 활발히 권한을 행사한다. 대주주 경영인이라도 기업 경영을 잘못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액주주 군단에게 배당 또는 주가 차익을 돌려주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3개월마다 돌아오는 분기별 경영실적 평가 때는 유능한 경영자라도 월가의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월가는 자본가에 의한 기업 경영의 독재를 제거하고, ‘주주에 의한, 주주를 위한, 주주의기업 민주화를 달성하고 있다.

 

월가는 개미군단에 의해 움직인다.

뉴욕 증시의 거대한 자금원은 샐러리맨, 자영업자 또는 농부 등 평범한 미국인들이 은퇴에 대비해 적립하는 연금 기금이다.

32세의 직장인 돈 프로델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봉급의 6%를 떼어 퇴직 연금 프로그램인 ‘401(k)’에 부어 71,200억 달러를 적립해놓고 있다. 그는 정년인 65세를 굳이 채우지 않고, 60세에 은퇴해서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보다 많은 돈을 붓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60세가 되는 해에 170만 달러의 연금을 타 백만장자로서의 여유있는 삶을 살수 있게 된다. 그가 적립한 돈이 뮤추얼 펀드를 통해 증시에 투자돼 고수익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 월가에 활력을 주는 자금은 바로 이 연금 기금에 있다. 미국의 샐러리맨들은 한국처럼 퇴직금 제도가 없고, 자식에 기대어 사는 풍습도 없기 때문에 은퇴 연금을 적립하고 있다. 적립금을 가장 크게 불릴 수 있는 상품이 주식시장이다.

봉급쟁이가 복잡한 원가 동향에 전문적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이 증권 브로커나 뮤추얼 펀드등 전문 기관에 의뢰한다. 이들은 직장인의 은퇴 적립금을 굴려 목돈을 만들어 주고 있다. 연봉 3만 달러의 직장인이 25세부터 봉급의 6%를 부으면 연간 5%의 급여 상승과 10%의 수익성을 전제로 65세엔 130만 달러의 목돈을 건질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증시 활황이 만들어 주고 있다.

미국의 직장에서는 401(k)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금융상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401(k)은 미 국세청(IRS)의 징세 코드 번호를 지칭하는 것으로, 미국 내국세법에 따른 정년 자금 마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봉급의 일정 비율이 정년 때까지 적립된다.

 

월가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를 가져왔다.

미국 상무부 차관을 지냈던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장은 아시아 금융위기에도 불구, 미국 경제가 건겅한데 대해 월가의 승리라고 말했다. 국가 자본주의 형태를 취했던 아시아식 경제는 더 이상 장점이 될 수 없고, 방대한 투자그룹, 즉 주주가 움직이는 월가의 활발한 시스템이 미국의 장기호황을 지켜주고 있다는 뜻이다. 월가는 미국 전체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만들어, 미국의 장기호황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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