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연장…미국 요청 의식한 전략적 결정
지소미아 연장…미국 요청 의식한 전략적 결정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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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제소 절차도 정지…다각적인 미국의 압박에 한미일 동맹 유지 고려한 듯

 

얼마전에 금융계의 한 인사가 지소미아는 종료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동맹으로 하고 있는 이상, 두 나라의 갈등을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소미아 종료 6시간을 앞둔 22일 오후 6,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했다.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협정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조건이 달려 있다.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 비밀정보보호 협정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들은 조건부 연기라는 표현을 썼지만, 조건부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리측이 언제든 종료시킬수 있다고 했지만, 미국의 강한 압박에 밀려난 입장에서 또다시 한일 관계가 악화될 경우 조건을 사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상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며칠전 MBC 라디오에 출현해 "한일관계에 아무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작정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한다면, 이는 당시의 결정이 신중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고 실토한 바 있다.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 방침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미국 상원은 21일 지소미아 연장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공화당 소속 제임스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에서 지소미아에 계속 참여할 것을 한국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엘리엇 엥겔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워싱턴DC를 방문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면담하면서 우리끼리 싸울 여유가 없다며 지소미아 연장을 설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도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전화하면서 지소미아 유지를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같은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며 지소미아 파기를 밀고 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청와대 앞에서 사흘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정부여당에 요구한 3개항중 하나로 지소미아 연장을 주장했다. 지소미아 연장 발표가 있은 직후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이 단식 농성중인 황 대표를 찾아 "지소미아 문제가 잘 정리됐다면서 단식 농성을 중단해 달라는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이 황교안 대표의 요구를 의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단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기로 하면서 한미일 삼각안보 동맹은 유지되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기자들에게 "북한에 대한 대응을 위해 한일, 한미일의 연대와 협력이 극히 중요하다""이번에 한국도 그런 전략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측이 지소미아를 내줬더라도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는 또다른 차원에서 해결해야 문제다. 일본 정부가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별개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은 "지소미아와 수출 규제 문제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다만 지소미아 연장으로 냉랭했던 한일 관계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양국간 수출규제 협상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협상이 열리더라도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1960년대에 체결된 한일 협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징용자에 대한 개인 배상을 해야 하느냐의 어려운 문제는 남아 있다.

지소미아 연장 결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결정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충남 천안 MEMC코리아에서 열린 실리콘 웨이퍼 2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우리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더해 소재·부품·장비의 공급이 안정적으로 뒷받침된다면, 반도체 제조 강국 대한민국을 아무도 흔들 수 없을 것이라며 극일을 강조했다. 하지만 연설 내용 가운데 일본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다. 오후에 내릴 결정을 의식한 행보였던 것 같다.

 

11월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환담하는 모습. /청와대
11월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환담하는 모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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