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파워⑭…달러의 맹위
美 금융파워⑭…달러의 맹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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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외환보유 비중의 60% 넘어

 

1999년초 아르헨티나에서는 인접 경쟁국인 브라질이 헤알화를 평가절하하자 페소화를 포기하고 달러를 통용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브라질이 흔들리자 남미 대륙 전체를 불안하게 본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아예 이중통화제의 골격인 달러 태환(兌換) 정책에서 한걸음 더 나가 달러 통용제(dollarization)’의 채택을 검토할 것을 내각에 지시했다.

달러리제이션은 멕시코에서도 논의된 바 있고, 캐나다에서도 일부 학자, 은행가들에 의해 제기되었다.미국의 학자들은 한술 더 떠 유럽 11개국의 단일통화(유로)에 경쟁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칠레까지 남북미 대륙을 달러 사용권으로 묶는 통화동맹조약을 체결할 것을 주장했다.

로버트 바로 하버드대 경제학교수는 미국의 동의 없이 아르헨티나의 달러 통용은 불가능하다달러 권역의 국가에 미국이 구체적인 신용 대출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가 달러를 자국 통화로 쓰려 한 이유는 외국 투기꾼들로부터 달러를 방어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달러에 자국 통화를 고정시켰던 멕시코와 브라질이 통화 방어에 실패, 극심한 경제불안을 겪었던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목적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미겔 키겔 경제부 재무담당 차관보는 달러화 정책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아르헨티나가 이 정책을 받아들이면 인접국들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달러통용 정책은 경제 안정을 도모할 수 있지만, 자국의 경제를 미국 경제에 종속시켜 경제주권이 침식당하는 결정적 문제를 노출한다. 달러를 그대로 통용하면 미국 연준(Fed)의 금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 금리와 차이가 나면 사실상 두 국가의 달러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지 중앙은행이 있을 필요가 없고, 미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에 따라 그 나라 거시경제가 좌지우지된다. 또 정치적으로 미국이 제재를 가해 달러 공급을 중단시키면 물가 폭등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통화 및 금리 정책에 달러 사용국들의 경제가 좌지우지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달러를 자국 통화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달러=1페소를 유지해왔다. 1998년말 현재 아르헨티나에 유통되는 페소화는 모두 160억 페소이므로 만일 달러리제이션을 채택한다면 미국에서 160억 달러의 지폐뭉치를 수입해오면 된다. 미국 재무부 조폐창은 1999년의 경우 2,600여억 달러를 찍어냈다. 따라서 미국은 아르헨티나에 지폐를 수출해도 국내 달러 수급에 큰 지장이 없다.

아르헨티나가 달러를 사용하면 미국 중앙은행은 매년 160억 달러에 대한 이자(8억 달러 상당)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은 160억 달러의 지폐를 주는 대신에 아르헨티나로부터 같은 액수의 석유, 커피, 제품을 미국에 들여올 수 있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1995년 멕시코 페소화 폭락의 여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4억 달러의 미국 달러를 긴급 수입한 전례가 있다.

홍콩에서도 1998년 몇차례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아 미국 달러에 고정시킨 홍콩 달러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자, 차제에 미국 달러를 쓰자는 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홍콩의 달러리제이션은 중국이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처럼 정부 차원의 공공연하게 논의되지 못했고, 학계의 이론 제기 수준에 그쳤다.

 

미국 달러 지폐 종류 /위키피디아
미국 달러 지폐 종류 /위키피디아

 

미국 이외에 달러를 단일 공용화폐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파나마와 아프리카를 들수 있다. 이외에도 캐리비안 네덜란드, 동티모르, 에쿠아도르, 엘살바도르, 마이크로네시아, 마샬군도, 팔라우, 짐바브웨에서 미국 달러가 공식화폐로 사용되고 있다.

파나마는 1904년부터 달러를 공식 화폐로 사용했다. 파나마는 달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가 적용됐고, 이에 따라 파나마는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보다 낮은 금리를 유지하는 이점을 누려 왔다.

그러나 1988년 미국이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 정권을 무력화시킬 때 달러 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다. 때문에 파나마에 달러가 부족해 낡고 더러운 지폐가 유통됐으며, 이에 따라 극심한 불황을 겪기도 했다. 남의 나라 통화를 사용할 경우 겪어야 할 문제점의 하나다.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미국 달러는 2019131일 현재 17천억 달러에 이른다. 이중 3분의2가 미국 밖에서 흘러 다닌다.

무역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미국의 최대 수출품은 달러 지폐다. 달러 지폐는 미국 재무부가 무이자로 찍어낸 유가증권의 일종이다. 미국 정부는 달러 보유자로부터 무이자로 대출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미국은 달러를 해외에 유통시킴으로써 수백~수천억 달러의 자본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 이익은 미국 정부가 소득세를 5% 인상해서 얻는 세수 증가액과 비슷한 규모이다. 따라서 미국 재무부 조폐창이 인쇄한 달러 지폐가 미국의 주요수출품이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이외에도 남미 국가, 러시아 등지에도 미국 달러를 자발적으로 유통되는 나라들이 많다. 미국 내에서 달러가 법적 구속력(legal tender)이 있지만, 해외에서는 거의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가 인플레이션이다. 방만한 통화관리 등으로 고율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이 세계 최강대국의 통화를 보유함으로써 국내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 가치하락을 헤지(hedge)하려는 심리가 생긴다.

둘째로, 금융시장제도의 미비를 들 수 있다. 구 소련 연방국가들의 가장 큰 수입품중 하나는 미 달러화인데, 특히 러시아는 1998년 루블화 절하 이전에 매일 약 1억 달러를 수입했다. 러시아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큰 것은 효율적인 수표청산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적 불안을 거론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국가들에서는 달러를 이용한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시 거의 쿠웨이트 자산이 미 달러화로 전환되는 등 달러 지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바 있다.

달러화의 국제 통용은 미국에 대한 높은 인지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국제거래에서 달러화 이외에도 유로화 사용이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달러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데는 국제 정치의 역학적 관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걸쳐 미국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달러가 지명도를 지니고 있을 뿐아니라, 고도의 산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높은 구매력을 지나고 있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19991월에 등장한 유럽 11개국 단일통화는 미국 달러의 독주에 제동을 걸 유일한 통화로 관심을 모았다. 미국의 프레드 프레드 버그스텐(Fred Bergsten)유로화 창설은 국제 통화질서에 가장 중대한 발전이라며 달러는 1차 대전이후 영국 파운드화로부터 세계 주도권을 뺏은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경쟁자를 만났다고 평가했다. 버그스텐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 중에서 달러를 유로로 대체하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1,000~3,000억 달러가 각국 중앙은행 금고에서 나와 유로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이 현실화되면 달러는 20세기를 관통하며 유지해온 세계 경제 지배권을 상실하게 된다. IMF 통계에 따르면 1996년말 현재 전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총액이 7,620억 달러인데, 이중 59%4,230억 달러가 미국 돈이다. 이중 독일 마르크화로 저장된 외환보유액은 14%1,070억 달러 정도다. 여기서 2,000억 달러가 움직인다면 미국 달러의 주도권은 불안해 진다.

버그스텐의 예언은 유로 출범 첫해인 1999년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로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였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의 비상금에서 달러 유출은 거의 없었다. 그러면 21세기 언젠가에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지만, 버그스텐 소장의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린백(Greenback)이라고 불리는 미국 달러의 전성기는 2차대전 직후였다. 1980년초까지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80%가 미국 달러로 채워졌다. 그러다가 1980년대 미국 경제 침체와 달러 약세로 많은 나라들이 달러에서 돈을 빼 독일 마르크나 일본 엔화로 전환했다. 1991년엔 그린백은 세계 외환보유액의 40%로 떨어졌다. 미국 달러화는 인기가 없었다.

1990년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은 다시 달러를 찾았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강한 달러 정책을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1996년에는 달러 비중이 58.9%로 늘어났다. 이에 비해 마르크화는 90년대초 18%에서 14%, 엔화는 9%에서 6%로 낮아졌다.

IMF에 따르면, 20171231일 현재 전세계 보유외환중 미국 달러 비중은 63.3%, 유로 20.0%, 일본 엔화와 영국 파운드화가 각각 4.5%였다. 중국 위안화는 1.8%에 머물렀다. 달러의 위상이 여전하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보유할 때 주로 미국 국채(TB)를 사두는 방식을 취한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이자를 지급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에 달러가 가득차 있으면 미국으로선 이익이다. 외국 자본이 미국 채권 시장에 유입되므로 국내 금리를 낮출 수 있고, 자본시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의 위력은 뉴욕 월가라는 세계최대 금융시장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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