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파워⑮…미국식 자본주의 이식
美 금융파워⑮…미국식 자본주의 이식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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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금융가, 수익 줄어든 기업과 산업 처벌…‘병주고 약주는 존재

 

뉴욕 월가의 자금이 홍수처럼 밀려왔다가 빠져나갔던 자리는 폐허로 전락했다. 아시아 위기가 이를 입증했다.

1996년초 선진국 자본들은 아시아 국가에 저금리로 빌려줄테니 돈을 무한정 빌려가라고 유혹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아시아의 호랑이, ‘다음 세기엔 아시아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미국 언론들의 미사여구에 자만심이 생겼고, 미국과 유럽, 일본 자금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썼다. 그러나 아시아에 밀려왔던 자금은 불안한 기미가 나타나자 금새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아시아 지역 전체에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자, 이를 구제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워싱턴의 미 재무부는 IMF를 앞세워 뉴욕 월가의 자금이 빠져나간 곳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며, 이들 국가에 시장 경제원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미국 정부는 아시아 국가의 경제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에 국제자금이 빠져나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식시켜 나갔다. 아시아인들에게 미국은 병주고 약주는 존재로 새겨질 수밖에 없다.

 

19975월초 태국 바트화 전투에 나선 전사들은 조지 소로스 군단의 총사령관 격인 스탠리 드러켄밀러, 타이거 펀드의 줄리안 로버트슨, 오메가 펀드의 리온 쿠퍼만등 헤지펀드 매니저들과 JP 모건, 시티뱅크, 골드만 삭스의 외환 딜러 조직이었다. 공격자들은 미국 달러화에 대해 고정환율제로 움직이는 바트화가 평가 절하될 것이라고 믿고, 달러를 태국 시장에서 대거 빼냈다. 태국 중앙은행은 바트화를 방어하기 위해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에 원군을 청했다. 태국은 인근 국가들로부터 120억 달러를 지원받아 잠시나마 바트화 방어에 성공, 월가의 공격자들에게 3억 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전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뉴욕 월가의 달러 군단은 이자율이 낮은 엔화 자금을 빌려와 바트화를 무차별 공격했다. 태국 정부는 바트화 방어를 위해 주식시장이 연초대비 30%나 폭락하는 아픔을 감수하며 국내 이자율을 1000~1500%로 수직 인상했다. 태국은 해외 자본을 관리하기 위해 국내 환율과 국외 환율을 달리하는 이중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바트화 환율 방어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고, 월가 군단에 의한 방콕의 함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두달후인 7월초 태국 중앙은행은 바트화 절하 조치를 취함으로써 마침내 뉴욕 월가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방콕의 통화전쟁은 태국을 지원했던 국가들로 도미노처럼 번져나갔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통화가 연쇄적으로 하락했고, 드디어 10월말 홍콩 주가 폭락으로 전세계 주가가 동시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태국에서 확대된 금융위기 태풍은 마침내 한국에 상륙해, 199711월 원화 절하와 주가 폭락을 야기하고, 한국정부는 급기야 IMF의 긴급자금을 지원받는 곡절을 겪었다.

 

태국 방콕의 상업중심가 /위키피디아
태국 방콕의 상업중심가 /위키피디아

 

6개월만에 방콕에서 서울까지 확대된 아시아 금융 위기의 원인을 둘러싸고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카지노식 자본 근성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제기됐다.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유태인의 음모라고 비판했고, 중국에선 그해 7월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에 넘어간데 대한 앵글로-색슨족의 공격이라는 시각이 나왔다. 한국에서도 IMF 구제금융 협상 때 미국의 배후조정설등으로 한때 국민감정이 나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세계 금융자본의 심장인 뉴욕 월가의 논리는 달랐다. 월가는 아시아 위기는 각국이 거시경제 운영을 잘못해 과잉 생산, 과잉투자, 지배층의 부패 등에서 나온 결과라며 아시아인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논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결과적으로 19977월 이후 확대된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뉴욕 월가의 국제금융시장 장악이 확실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뉴욕 금융가는 미국의 장기호황으로 생긴 막대한 여유자금과 클린턴 정부의 강한 달러(Strong Dollar)’ 정책에 힘입어 지구촌 국경을 넘나들며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했다.

미국의 경제평론가 윌리엄 그레이더씨는 자신의 저서 하나의 세계에서 지구촌 단일 경제에서 국제금융 자본의 횡포를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 자본가들은 수익이 줄어든 기업과 산업을 처벌하고, 자본 활동에 장애를 주거나 기분 나쁜 조치를 취하는 나라와 경제 권역도 징벌한다. 국제자본가들은 독재자라고 비난받을 땐 인류평등주의라는 기치를 내세운다.”

그레이더씨의 분석을 토대로 할 때 아시아 시장은 투자 장벽이 많고,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고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을 보지 않으면 투자 위험도가 높은 곳이었다. 그들에겐 투자이익 회수라는 자본의 논리만 있을 뿐 투자 대상국가의 이해에는 관심이 없다.

태국을 공격한 핫머니 성격의 투기성 자금은 100억 달러를 갓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뉴욕 월가의 저수지에 잠긴 전체 유동성으로 볼 때 양동이로 뜬 물의 양에 지나지 않았다. 월가를 떠도는 국제 핫머니가 조금만 움직여도 이머징 마켓에는 대혼란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월가 자본의 세계 제패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19975월 독일 2위 철강업체인 크루프사가 1위 철강업체인 티센사를 인수하는 과정에 월가의 간판 투자회사인 골드만 삭스사가 기획에서 전략, 자금지원까지 일괄 간여했다. 독일 내 비판론자들은 두 철강회사의 합병이 월가의 간섭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헐리웃 영화에서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와 같고, 미국 서부의 라스베이거스식 도박성이 강했다고 공격했다.

한국도 외환위기가 터지자 골드만 삭스와 살로만 스미스바니사로부터 2명의 프로를 정부 자문위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뉴욕 월가의 가르침에 따라가겠음을 밝힌바 있다.

미국 자본의 독주는 한국을 둘러싼 4대 강국, 즉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의 힘의 균형마저도 변화시켰다. 경제적으로 미국의 강력한 라이벌인 일본은 장기 불황에 허우적거렸다. 21세기에 미국의 잠재적 경쟁상대로 지목되고 있는 중화(中華) 경제권은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 화교(華僑)가 상권을 잡고 있는 태국, 싱가포르, 홍콩,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심각한 금융위기로 고전했다. 중국은 위안화 절하 압력을 받고 있는데다 성장률이 둔화됐다.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1998년 여름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이 모두 미국과의 경제전쟁에서 패자로 전락, 침체해 있을 때 뉴욕 월가의 선교사들은 보무 당당하게 아시아에 진입,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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