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융파워⑯…미 재무부는 세계금융 총사령부
美 금융파워⑯…미 재무부는 세계금융 총사령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1.29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욕 월가 통해 국제금융시장 컨트롤…아시아 위기 이후 기능 강화

 

아시아 위기가 확산되자, 해결사로 나선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FRB)은 구제금융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자유 시장과 개방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 등장한 주인공은 많다. IMF, 세계은행(IBRD), 선진 7개국 회의, 선진국 채권은행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해결사를 총괄하고 지휘한 것은 미국 재무부였다. 미 재무부는 때론 IMF의 배후에서, 때론 IMF를 제껴놓고 전면에서 위기 해결에 나섰고, 뉴욕 월가 은행들의 협조를 얻어 세계금융시장의 주도권을 강화했다.

2차 대전후 아시아에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펜타곤(국방부)이 움직였던 자리를 미국 재무부가 대신했다. 유엔이라는 국제 외교단체를 통해 다국적 지원군을 동원하던 방식이 IMF라는 국제 금융단체를 통해 다국적 지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아시아 공산주의의 도미노 현상은 펜타곤의 힘을 강화했지만, 아시아 금융위기 도미노는 미 재무부에 무게를 실어줬다.

아시아 위기 진화의 중심엔 언제나 미국 재무부가 있었다. 미국은 IMF 지분이 18%에 불과하지만, 세계 최대 경제력을 보유하고 뉴욕 월가라는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IMF의 요구가 미국의 요구였다.

1998년초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 관리들은 국제 금융시장이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의 손짓 하나에 의해 움직인다고 불평했다. 루빈이 엄지손가락을 들면 엔화가 상승했고, 그가 엄지를 아래로 내리면 엔화는 바닥을 모른 채 떨어졌다.

그해 617일 미국이 일본과 엔화 공동방어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후 미국이 국제 시장에 20억 달러를 풀었다. 그러자 하루 사이에 엔화가 1달러당 143엔에서 136엔으로 7엔이나 폭등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50엔을 넘어 160엔을 칠 것이라는 분석이 국제 시장을 지배했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엔화는 140엔에서 진정됐다. 두달전에 일본은 200억 달러를 풀었지만 엔화 방어에 실패했지만, 미국은 푼돈으로 외환시장을 통제했던 것이다.

일본 관리들이 의아해 한 것이 바로 이점이다. 미국이 일본이 부은 돈의 10분의1의 돈으 시장 개입에 성공한 것은 루빈 장관의 엄지손가락이 위로 치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이 많은 돈을 풀어도 실패했던 것은 그의 엄지 방향이 아래로 있었다. 국제 외환 시장에서는 하루에도 2조 달러 가량이 거래된다. 세계 주요도시 은행과 투자기관의 딜링룸에서는 미국 재무부만 쳐다보고 투자를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재무부 빌딩 /위키피디아
미국 재무부 빌딩 /위키피디아

 

한국 사태 해결에서도 미국 재무부의 영향을 결정적이었다. 199712월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차관이 IMF와 사전협의도 없이 한국을 찾아가 김대중 당선자를 만났다. 립튼 차관은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후 IMF 협정을 준수할 것인지, 경제 운용 철학이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떠났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의 차기대통령을 믿게 됐고, 며칠후인 24일 루빈 장관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국에 대한 지원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을 통해 월가 은행들에게 압력을 넣어 한국에 빌려준 단기 자금의 만기를 연장해주도록 권고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던 월가의 쟁쟁한 은행 회장들이 워싱턴의 재무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부랴부랴 휴가지에서 돌아왔다. 해를 넘겨 1월에 뉴욕에서 열린 한국 외채 협상이 그 결과다. 관치 금융이니 하는 불만이 나왔을 법도 한데, 미국 금융가에서 그런 불만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의 정경유착과 관제 금융을 그토록 비판하던 미국 언론도 침묵을 지켰다. 미국 재무부가 국내 은행에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 경제 위기는 IMF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미국 재무부가 수습하는 과정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미셸 캉드시 IMF 총재가 팔짱을 낀채 서있고, 수하르토 대통령을 앉혀 놓고 협약에 서명하는 사진에 분노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이 쭈구리고 앉아 IMF와의 약속을 몇 차례 어긴 것도 이런 굴욕감에서 나왔다는 점을 미국 언론들도 인정했다.

19981월 수하르토 대통령이 IMF와의 약속과 달리 팽창예산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IMF를 제껴놓고 재무부 관리를 자카르타에 보내 수습했다. IMF를 앞세우기보다 직접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의 최대 적성국가였던 러시아도 미 재무부 관리를 엉성하게 대접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월스트리트 저널 지는 러시아 총리가 미 재무부 고위 관리를 만나 주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촉발됐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사연인즉 19985월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35세 젊은 나이의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총리를 접견, 아시아 위기 재발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런데 러시아 총리 비서가 딱지를 놓았다. 총리와 부장관은 서로 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때마침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IMF 팀이 98년도 재정 축소문제에 대해 러시아 정부를 설득치 못한 채 떠났다.

서머스 부장관이 러시아 총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뉴욕 월가를 비롯, 세계 금융시장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국제 투자자들은 러시아가 대외부채를 갚지 못할 것이며, 러시아와 서방 국가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한꺼번에 대량의 루블화를 달러로 바꿔 탈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가는 폭락하고, 국채 금리가 70%로 폭등했다. 크레믈린 당국은 단기 금리를 종전의 3배인 150%로 인상했지만, 러시아는 국가 파산을 피할 수 없었다.

아시아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 재무부는 일본이 주도권을 쥐는 것을 노골적으로 경계했다. 간단한 예로, 일본이 금융위기에 처한 아시아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 펀드를 창설할 것을 제안했다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일을 들 수 있다. 아시아 국가의 대외채무중 일본에서 빌린 엔화 차관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아시아 위기 해결의 최대 당사자는 일본이었다. 당시 일본의 제안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미국 재무부의 티모시 가이스너 차관보(국제담당)이었다. 그는 인디아, 타일랜드, 중국에서 근무를 했고, 워싱턴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일본에 주재한 이력을 소유한 아시아 통이다. 그는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제안을 싫어할 것이라며, 미국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IMF를 통해 자금 지원할 것을 주장, 재무부의 공식 입장으로 만들었고, 일본이 스스로 제안을 포기하도록 요구했다.

미 재무부는 오히려 일본이 아시아 사태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몰아붙여 강도 높은 경제 개혁을 요구했다. 미 재무부는 세계 경제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내정간섭에 가까운 요구를 일본에게 했고, 일본은 미국의 압력을 못 이겨 1998년말 금융개혁안을 만들어야 했다.

미 재무부가 아시아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루빈 장관이 총지휘를 했고, 그 휘하에 서머스 부장관, 립튼 차관, 가이스너 차관보등 트리오가 특수 기동대 역할을 했다. 루빈 장관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졌다시피 뉴욕 월가의 골드만 삭스에서 26년간 일해온 실물 경제 경력을 갖고 있고, 서머스 부장관과 립튼 차관은 하버드 대학 출신의 학자이다. 실물 경제와 학문적 이론의 조화를 통해 이들은 국제 금융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나이도 젊다. 1998년 이들이 한팀으로 일했을 때 장관이 59세이지만, 부장관 43, 차관 44, 차관보는 36세의 젊은이였다. 이들은 문제 국가를 수차례 방문, 그들에게 자유시장 경제 원리와 국제 시장 논리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1980년대말 공산권 붕괴가 서구 자본주의의 승리였다면, 1990년대말 아시아 경제 위기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아시아 위기를 통해 국제 금융시장의 논리가 미국의 논리이며, 미국 재무부의 논리라는 등식이 굳어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