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부동산 정책④…토지공개념 논쟁
노태우 부동산 정책④…토지공개념 논쟁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2.04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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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경실련 등 가세, 여론전 비화…민정당, 대통령에 수정안 보고

 

정부가 입법예고한 토지공개념 관련법안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질서에 위배됩니다.”

개발이익환수법과 토지초과이득세는 중산층의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수지가 있습니다. 중산층의 재산권이 보호되도록 법안을 대폭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19899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민정당 당직자회의. 비공개로 열린 이날 회의는 노태우 대통령이 주재했고, 당측에서는 박준규 대표위원, 이춘구 사무총장, 이승윤 정책위 의장, 이한동 원내총무, 서상목 정책조정실 부실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측에서는 박철언 정무장관과 문희갑 경제수석이 배석했다.

회의 초입부터 격론이 벌어졌다. 먼저 당의 토지공개념 제도 심사소위 간사직을 맡고 있는 서상목 부실장이 당론으로 채택한 토지공개념법안 수정안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어 당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개념법의 수정, 보완을 결의했다. 문 수석이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6대 도시에서 200평 이상 택지를 소유한 사람이 어떻게 중산층입니까. 부동산 투기로 인해 집값이 폭등, 결과적으로 근로자들과 서민을 자극하는 일을 막자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지금 공개념을 실시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납니다.”

문 수석이 외롭게 공개념 법안을 방어하자 당직자들이 문 수석을 또다시 공박했다.

문 수석, 혁명이란 용어를 아무 데나 쓰지 마시오.”

문 수석은 토지공개념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데, 당의 얘기는 부작용을 막자는 게 아니오.”

박철언 정무장관도 당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토지공개념 같은 것을 만들어 자꾸 평지풍파를 일으키면 오히려 혁명의 불씨를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 수석은 이날 회의에서 한 걸음 후퇴하면 토지공개념은 중도에 흐지부지 된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당의 거물을 상대했고, 양측의 공방전은 시간을 끌었다.

묵묵히 양측 얘기를 듣던 노 대통령은 논쟁을 중단시키고 공개념에 대한 결심을 내렸다.

소수의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은 어떤 형태로든 환수돼야 하지만, 중산층에 대한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민정당은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정당이라는 인식을 주고 국민적 지지를 얻도록 힘쓰시오. 당정은 이같은 바탕 위에 법안을 합리적으로 수정, 보완토록 협의하시오.”

이날 당직자회의에서는 백담사에 은거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 등 굵직한 정치적 문제가 결론지어졌으나, 관심의 초점은 공개념 법안을 둘러싼 당정의 갈등에 모아졌다. 공개념에 대한 노 대통령의 결심은 문 수석과 당직자들의 주장을 절충한 것이었고, 입장에 따라 서로 유리하게 해석할 소지를 안고 있었다. 문 수석은 대통령이 자신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논평을 통해 민정당이 요구하는 대로 수정하라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완곡한 표현으로 문 수석에게 무게를 실어줬다.

 

이날 논쟁의 사단은 전날인 94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민정당 당직자 만찬회에서 비롯됐다. 당직 개편 후 처음 열린 만찬회에서 당간부들은 문 수석을 따돌리고 당에서 만든 공개념법 수정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통치권자의 결심을 얻어내려고 했다. 3역이 번갈아가며 공개념법이 걱정된다는 말을 하자 노 대통령은 세금만 내면 땅은 얼마든지 가질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대수립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승윤 정책위 의장이 설명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새로 택지를 살 사람은 아무리 세금을 내도 200평 이상 살수 없게 돼 있습니다. 사유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날(94) 만찬회에서 일어난 일은 문 수석은 다음날 아침에야 전해 들었다. 문 수석은 민정당이 경제수석인 자신도 모르게 당의 수정안을 예정일보다 하루 전에 보고했고, 대통령도 별 이의를 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당직자회의가 열리기 전에 노 대통령을 만나 정부 원안대로 공개념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고 회의가 열리기를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가 공개념을 추진하면서 격돌한 최대의 적은 정치권, 특히 여당인 민정당이었다. 19896월 공개념 3법이 모양새를 갖춰 나가면서 법안은 당정협의에 상정됐고, 정부와 여당 사이에 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당정간 견해차가 조금씩 표출되면서 공개념을 둘러싸고 사회전체의 여론전쟁이 가속화했다.

 

과밀한 서울의 모습. /위키피디아
과밀한 서울의 모습. /위키피디아

 

공식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전경련과 상의는 반대론에 줄을 댔고, 민법학자들도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법 논리상 반대견해를 피력했다. 반면 그해 발족한 경실련은 공개념을 전폭 지지하면서 경제개혁 과제에 대한 공방에 불을 댕겼고, 중소기업중앙회·노총·공법학자들도 지지 견해를 밝혔다.

이같은 외곽지원 세력의 논쟁에 힘입어 당정 간의 견해 폭은 커지기만 했으며, 수차례 당정회의를 가졌으나 이견의 폭이 좁혀지질 않았다.

당측의 주장인즉, 택지소유상한제는 자본주의 기본원칙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므로 초과소유금지초과소유 집중과세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또 개발이익환수와 토지초과이득세 부과는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므로 양도소득세 또는 종합토지세 강화, 과표 현실화로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당의 주장대로 초과소유 택지에 대해 중과세할 경우 엄청난 조세저항이 우려되므로 양도소득세·종합토지세 중과로는 토지투기를 근절할수 없을 뿐아니라 토지소유자가 토지를 팔려고 하지 않고 세금을 땅값에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다.

712일 박준규 당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택지상한법은 원초적으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공개념 입법의 시기상조론을 폈다. 민정당 당직자들은 조순 부총리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사람”, “문 수석은 여러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 가지 목표만 보고 돌격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공개념 입법이 공개될 무렵 점호식 투표라는 초강경 수단으로 법안통과를 공언했던 이종찬 사무총장도 분위기가 이쯤되자 박 대표의 발언에 동조하고 나섰다.

정부 측에서 조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총대를 멨다. 823일 조 부총리는 관계장관을 긴급 소집, ‘토지공개념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조 부총리가 직접 위원장을 맡고 내무·재무·농수산·상공·건설 장관과 문 수석(719일부로 장관급으로 승진) 6명의 장관으로 위원이 구성됐다. 이 위원회는 공개념법안을 일괄 통과하는 게 주목적이었는데 조 부총리로선 입법부에 도전장을 낸 것이요, 공개념에 대한 마지막 승부수나 다름 없었다.

조 부총리와 문 수석은 부실기업정리·경기대책·인사문제 등에서 이견과 불협화음을 노출했지만, 공개념입법에서는 공조체제를 유지했다. 조 부총리의 권위와 문 수석의 파워가 결합, 정부측의 쌍두마차를 형성했고 기획원의 한이헌, 재무부의 이근영, 건설부의 이규황 국장등이 실무 테크노크랫으로 눈을 부릅뜨고 공개념을 밀어붙였다. 이들 실무국장들은 기업인 간담회·공청회에 참석해 공개념입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국회건설위 소속의원 가운데 땅부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성토했다.

조 부총리의 또다른 원군은 40년 지기인 서울대의 변형윤 교수였다. 한 사람은 부총리로 재조’(在朝)의 인물이었고, 다른 한사람은 경실련 공동의장으로 재야’(在野)의 리더였다. 공개념과 경제개혁에 관해 두 사람의 의견은 일치했다. 경실련은 정치권이 공개념을 반대할 때 법국민연대투쟁을 벌이겠다며 조 부총리를 엄호했고, 조 부총리는 경실련 관계자들이 면담을 요청하면 쾌히 응락하는등 호의를 보였다.

경실련의 초대 정책위원장을 맡은 이근식 교수(서울시립대)의 설명이다.

공개념 3법은 효과면에서 제한적이고 편법이었습니다. 종합토지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게 정답이지요. 그런데 공개념입법에 반대하는 세력이 결집하고, 시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정부를 지지하기로 내부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공개념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민정당은 831일 토지공개념제도 심사소위를 구성 1가구 1주택에 택지소유상한 비적용 개발이익환수율을 70%에서 30~50%로 인하 토지초과이득세 법위 축소등을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 확정했다. 조 부총리는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하지 않을 경우 용퇴하겠다는 의사를 비쳤고, 권영각 건설장관도 자리를 걸고 국화통과를 다짐했다. 문 수석은 야당과 재야·여론의 지지를 받아가며 민정당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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