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수서사건②…뒤바뀐 유권해석
되돌아본 수서사건②…뒤바뀐 유권해석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2.11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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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고건 시장 물러나고 박세직 시장 부임…건설부도 입장 변경

 

1990년도 며칠 남지 않은 12월말의 어느 날. 고건 서울시장은 김학재 도시계획국장을 조용히 불렀다.

김 국장, 아젠 나도 나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소. 남은 사람들은 당신 밖에 없소. 당신만 믿소.”

, 시장님이 말씀하신 뜻을 잘 알겠습니다.”

고 시장은 경질을 예감하고 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안도 있었겠지만,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문제를 둘러싸고 시시각각 좁혀오는 포위망을 오랜 관료 생활의 경험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그해 1227일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 내분을 수습하고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강영훈 총리를 경질,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노재봉씨를 총리에 임명하는 등 대폭 개각을 단행했다. 통일부 장관에 최호중, 체육청소년 장관에 박철언, 노동부 장관에 최병렬씨가 각각 임명됐고,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해창, 정치담당 특보엔 최영철씨가 임명되는등 여권 진용이 대폭 개편됐다. 이른바 공안파들이 대거 입각한 개각에서 서울시장 자리에는 고건씨가 물러나고 군 출신의 박세직씨가 임명됐다.

고 시장의 재임 말기엔 그 스스로가 경질을 예감한 만큼 수서 택지 특별분양을 놓고 각 방면에서 공격을 받았다. 청와대에서, 국회에서, 건설부에서, 그리고 한보그룹으로부터 서울시는 왜 안된다는 것이냐라는 압력을 받아야 했다. 이런 형국을 두고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했다.

고 시장이 물러난 후 김학재 국장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다. 정 회장이 김 국장을 다그쳤다.

내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만들어 주겠다는데 뭘 잘못한 거요. 모두 괜챦다는데 당신만 그러는 거요.”

김 국장은 정 회장에게 그래도 안된다는 말을 반복하며 정 회장을 되돌려 보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고립무원 속에 성주마저 잃었으니 함락은 불보듯 분명한 일이었다.

당시 고 시장의 경질을 둘러싸고 한보의 로비설이 떠돌았다. 물론 서울시가 수서택지 분양을 놓고 청와대, 국회와 마찰을 빚는 모습이 최고통치권자의 눈에 곱게 비쳐지지 않았을 것이고,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서울시 행정을 쇄신할 필요도 있었을 터였지만, 고 시장의 경질이 서울시, 특히 도시계획국을 뒤숭숭하게 했다.

 

그러면 수서지구 택지 특별분양 건에 대해 청와대·국회·건설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서울시에 압력을 행사했는가. 관계자들의 증언, 검찰의 수사자료, 당시의 기록들을 통해 이를 추적해 보자.

1989321일 건설부가 수서·일원동 지구에 대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고시하자, 이 지역에 땅을 대거 사들였던 한보주택은 그해 말 문제의 땅을 연합주택조합에 제소전 화해라는 형식으로 넘기고, 본격적인 로비활동에 들어갔다. 서울시가 공영개발한 땅을 특별공급 받아 조합주택을 짓기 위해서였다.

정태수 회장은 198910월 그동안 체육회 일로 친분이 있던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을 만나 민원해결을 청탁했다.

청와대가 서울시에 압력을 가했다. 장 비서관이 총대를 맸다. 서울시 실무자들은 고위층의 부탁인만큼 가급적 해주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법률책을 뒤져보았으나, 택지개발촉진법에는 그런 조항이 없었다.

서울시가 난색을 표명하자 한보는 집단 민원의 방법을 채택했다. 집단민원 방법은 한보가 토지를 주택조합에 명의이전할 때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검찰 발표)

1990년초 한보주택은 3,360명이라는 다수 조합원의 집단민원 진정서를 작성, 18일 청와대 민정비서실에 제출했다. 이 진정서는 다음날 행정수석 비서관실로 이첩돼 문화체육담당관인 장 비서관에게 넘어갔다.

2월초 수서 주택조합은 서울시에 택지 특별분양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분양 불가의 방침을 주택조합에 통보했다. 그러자 그동안 문건을 남기지 않고 압력을 행사해오던 청와대는 216일 서울시에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민원인들이 공공기관 등에 근무하는 무주택자들로서 서울시의 갑작스런 계획변경으로 조합주택 건축계획인데 차질이 있어 선의의 피해를 보게 됨에 따라 사회적 물의가 야기될 우려가 있으므로, 주택건설촉진법, 택지개발촉진법 등에 의거해 적법한 가격으로 우선공급하는 방안을 건설부와 협의해 검토,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 달라.”

이 대외비 문서(대비행0125-20)는 홍성철 비서실장의 명의로 돼 있었고, 거기에는 문화체육 비서관실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시 서울시 실무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장 비서관은 물론 이상배 행정수석과 그 이전의 행정수석인 이연택씨로부터 수서, 왜 안되느냐고 그랬어요. 관계자들은 될 수 있는 일을 서울시가 괜히 해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언젠가 한보 사람을 만났더니, 서울시가 이렇게 나오면 큰 일 날수 있다고 겁주더군요.”

청와대와 한보의 협공에 시달리던 서울시는 510일 건설부에 처리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건설부도 처음엔 서울시와 같은 의견이었다. 건설부는 안 된다는 간단한 회신을 서울시에 보냈다.

그러나 건설부에도 청와대의 압력과 로비가 미치기 시작했다. 장병조 비서관은 서울의 택지공급 승인권을 행사하는 건설부 주택국장에게 특별 공급을 긍정적으로 처리하도록 압력을 넣었으며, 531일 한보주택과 주택조합은 조합원 명의로 민원을 건설부에 제출했다. (검찰 발표)

이 과정에서 건설부 주택국장이 조덕규씨에서 이동성씨로 교체된다. 건설부의 유권해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건설부의 이동성 주택국장과 서울시의 김학재 도시계획국장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오갔다.

이 국장= 택지개발촉진법에는 주택조합에 특별공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질 않소.

김 국장= 그런 조항은 있지만 세부시행령이 뒷받침되질 않아 시행이 어렵습니다. 2,100개나 되는 주택조합 중에서 누구에겐 땅을 주고 누구에겐 땅을 주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국장= 택지개발 예정지구 고시 이전에 그 지역에 토지를 매입한 자에게 특별공급하면 되지 않습니까.

김 국장= 그렇다면 한보는 집을 지을 수 없는 녹지지역에 땅을 샀는데, 그 경우도 해당되는 겁니까.

서울시의 특별공급 불가 방침에도 불구, 건설부는 결국 특별공급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만다.

수서 사건과 관련된 한 인사의 설명이다.

건설부가 처음엔 서울시와 같은 입장이었는데, 주무국장이 바뀌면서 며칠만에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건설부가 법률적으로 특별분양을 할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리는 바람에 국회 건설위가 청원심사를 결정한 것입니다. 어느 법률이나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시 수서사건 보도 /세계일보 1991년 2월 3일자
당시 수서사건 보도 /세계일보 1991년 2월 3일자

 

1990년 하반기 들어 정태수 회장의 모습이 국회 근처에 자주 나타났다. 검찰 조사에 의하면 정 회장은 8월 하순 이원배·김태식의원(평민), 11월 중순 이태섭 의원(민자), 11월 하순에 오용운 건설위원장(민자)을 각각 만났다. 청원심사를 부탁하는 로비 활동이었다.

그 무렵인 1027일 연합주택조합은 이태섭 의원의 소개로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고, 1211일 국회 건설위는 청원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거론했다. 앞서 국회는 건설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건설부의 김대영 차관이 위원회에 참석, 특별공급 쪽으로 유권해석을 표명했다.

법령의 보완이나 별도의 규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조합이 개발지구 안에 토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연고를 감안하고, 택지공급을 하지 않을 경우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물의를 감안하면 특별분양을 인정할수 있습니다.”

서울시의 윤백영 부시장이 참석, “이번 건이 선례가 돼서 청원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고 이의를 달았으나 입법권자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날 윤 부시장은 결국 국회의 의결이 있으면 특별공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했다. 국회 건설위는 건설부와 서울시가 청원내용을 수용키로 했으므로, 본회의에 부치지 않기로 결의했고, 1213일 청원심사 결과를 건설부와 서울시에 통보했다.

이젠 서울시가 특별분양을 승인하기만 하면 된다. 고건 시장의 경질과 박세직 시장의 부임은 이같은 순서의 연속선 상에서 이뤄졌고, 마침내 수서 택지 특별분양의 파행적 결과가 발생화고 만다.

한 관계자의 해석이다.

법률을 원칙적으로 해석해도 수서택지 특별공급은 안 되는 것이었어요. 정치적 입김이 불면서 파문이 커진 것입니다. 청와대나 국회·건설부도 파장이 그렇게 커질줄 몰랐지요.”

6공화국 초 국정감사가 부활되면서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서울시가 수서사건에서 실추된 명예를 찾는 듯 했다. 그러나 서울시도 수서사건이 휘몰아치면서 태풍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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