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입국 강조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타계
기술입국 강조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타계
  • 이인호 기자
  • 승인 2019.12.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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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출신으로 교육에 애착…25년간 LG 회장 역임하며 국내외 연구소 설립

 

14일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인재양성에 관해 많은 어록을 남겼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이 되고 기술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교수의 경쟁력이 대학의 경쟁력이고, 대학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산업과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인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스스로 성장하며 변신하고 육성되는 것이다.”

그는 1950년 회사일에 참여하기 이전에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5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교사 출신 기업인으로 그는 교육에 대한 애착이 컸다. 구 명예회장은 교사 시절에 황무지였던 우리나라 산업기반을 생각하며 제자들에게 기술입국(技術立國)을 위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그가 LG그룹 회장에 재직할 때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 확보에 주력해 회장 재임 기간에 70여개의 국내외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4년 5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설립한 천안연암대학과 연암공업대학 개교 40주년과 30주년을 맞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 LG
2014년 5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설립한 천안연암대학과 연암공업대학 개교 40주년과 30주년을 맞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 LG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간 그룹을 경영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LG그룹 창업자인 구인회(具仁會) 회장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에 이사로 회사일에 합류했다. 1969년 창업자인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1970년부터 럭키금성그룹 회장으로 재직했다. 그가 처음 그룹을 경영했을 때 그회사는 럭키와 금성사, 호남정유등 8개사에 매출 260억원에 불과했다. 그는 범한해상화재보험, 국제증권, 부산투자금융, 한국중공업 군포공장, 한국광업제련 등을 인수하고, 1978년 럭키석유화학, 1979년 금성반도체, 1989년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해 그룹의 외형을 크게 늘렸다. 1995년 회장에서 물러날 때 계열사는 30개에 그룹 매출은 38조원으로 성장했다. 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2년간 활동했다.

 

19951월 럭키금성 그룹의 명칭을 LG그룹으로 바꾸면서 첫째 아들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후 2015년까지 LG복지재단 이사장직은 유지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해왔다. 그는 LG그룹 명예 회장으로 있으면서 천안에 있는 한 농장에서 배우자와 함께 여생을 보내다 14일 오전 10시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다.

그를 이어 LG그룹 경영을 승계한 장남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아버지보다 먼저 타계했다.

슬하에 고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1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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