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일본 배신자들과 전쟁 예고하다
카를로스 곤, 일본 배신자들과 전쟁 예고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12.31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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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택연금 상태에서 일본 탈출, 레바논 도착…내주부터 일본과 닛산 공격 예고

 

일본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65) 전 르노-닛산 회장이 31일 돌연히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해 대리인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홍보회사를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카를로스 곤은 나는 지금 레바논에 있다. 더 이상 일본의 왜곡된 사법시스템의 인질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일본 사법질서는 차별이 횡행하며, 국제법과 조약에 따라 준수해야 할 명백한 의무를 무시하는 가운데 기본적 인권마저 명백하게 부정되었다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카를로스 곤은 나는 이제 마침내 미디어와 자유롭게 대화할수 있게 되었다. 내주에 시작할 것이다.”면서 일본 사법체계와 닛산 임원진과 본격적인 싸움을 예고했다.

 

곤 전회장과 그의 부인 캐롤 곤(Carole Ghosn)은 부인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 지도자들에게 남편에 대한 일본 당국의 부당한 처사를 호소했으며, 심지어 구금된 남편과 대화하는 것조차 일본 당국이 금지했다고 말했다. 부인은 남편의 보석 상태마저도 비참하고 정상 수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곤은 유가증권보고서에 5년간 연봉 50억엔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다가 올해 4월 보석금 5억엔을 내고 풀려났다. 그는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으며, 출국이 금지되어 있었다.

일본은 물론 해외 언론들은 그가 어떻게 출국했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나섰으나, 아직도 구체적인 경로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3개국 여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 여권 모두 법률대리인이 가지고 있었다. 곤은 프랑스와 레바논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레바논 언론들은 곤은 사제 항공기를 타고 터키를 경유해 베이루트에 입국했다고 보도했지만, 어떻게 일본을 출국했는지에 대해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카를로스 곤 닛산 전회장 /위키피디아
카를로스 곤 닛산 전회장 /위키피디아

 

카를로스 곤의 치명적 실수는 20174월 일본 닛산자동차에서 CEO 자리를 내놓고 회장직만 맡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는 곧이어 열린 닛산 이사회에서 심복이었던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를 사장겸 CEO로 밀었다.

하지만 측근이라고 믿었던 사이카와는 사장이 되자 카를로스 곤을 배신했다. 곤은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에 의해 2018년말 닛산 이사회에서 쫓겨났다.

당시 닛산에 흘러다닌 루머는 곤이 르노와 닛산을 합병하려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루머가 닛산의 일본인 이사들을 격분케 했다. 그나마 별도 회사로 존재하면 일본 기업 나름의 자율성을 갖는데, 합병을 하면 그것마저 빼앗기므로, 일본인 임원들의 상실감이 컸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곤은 사이카와가 배신했다는 것을 알고 축출하려 했지만, 사이카와가 선수를 쳐 일본인 이사들을 동원해 곤을 쫓아 냈다.

프랑스 르노 본사에선 닛산 임원진에 대해 배신자라며 강한 불만이 터트렸다. 14만명 직원을 보유하고, 일본 경제의 주춧돌인 닛산을 살려 놓았더니, 이제 와서 받지도 못한 연금을 놓고 횡령이라고 주장하며 CEO를 구속했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곤은 퇴직후 받는 연금 조건이 보고하지 않아도 될 사항(non-binding)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닛산의 일본인 이사들과 한통속인 일본 검찰은 국내법을 이유로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20181119일 카를로스 곤은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곧이어 1122일 닛산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회장직을 해촉했다. 이어 1126일 미쓰비시 자동차도 그의 회장직을 해임했다.

그에게 적용된 퇴직연금은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에서 보면 그다지 크지 않다. 곤은 2011~2015년 유가증권보고서에 5년간의 연봉 50억엔(500억원)을 축소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정도 금액은 웬만한 글로벌 대기업의 CEO들이 받는 금액이다. 하지만 일본 검찰과 법원은 그를 구치소로 보냈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들은 이상한 나라의 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자국법을 적용해 외국인 경영자를 가둬 놓았다.

 

1999년 프랑스의 르노 자동차는 파산 직전의 일본 닛산 자동차에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르노는 닛산의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재무책임자(COO) 이상의 경영진을 선임할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일본의 2위 자동차회사가 프랑스의 자회사가 된 것이다. 르노는 동양과 서양의 거대 자동차 회사를 연합해 독일의 폭스바겐(Volkswagen)을 넘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꿈을 드러냈다.

 

카를로스 곤은 르노가 닛산을 인수한 직후 재무를 총괄하는 COO 겸 부사장으로 닛산을 맡게 된다. 이때부터 카를로스 곤의 실력이 나왔다. 그는 거칠고 솔직했다. 그는 닛산의 일본적 풍토에 프랑스식 비즈니스 컬쳐를 도입했다. 일본 기업의 종신고용제, 연공서열제가 불필요하다며 철폐하고, 부품공급업체를 우대하는 전통적인 일본 기업의 방식을 깨뜨렸다. 그는 자신의 계획 연도 다음 해에 이익을 내지 못할 경우 COO 자리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 르노에 인수된지 4년후인 2003, 닛산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내는 자동차회사로 부상했다. 덕분에 르노는 2010년에 세계 자동차업계 3위로 부상하고, 전세계 자동차 생산의 10%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5년 그는 르노 자동차의 회장겸 CEO가 되었고, 2008년 닛산 자동차에서도 회장겸 CEO가 되었다. 2002년 미국의 포춘지는 그를 올해의 아시아 비즈니스맨으로 선정했고, 2003년 미국 외에 10대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 뽑았다. 그는 일본에서도 영웅이 되었고, 미디어의 각광을 받았다. 일본 만화책에서도 그는 스타가 되었다. 그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처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인물이었고, 산업계에 기적의 인간으로 떠올랐다.

 

그는 칼을 휘둘러 코스트 절감에 주력했다. 자신이 세운 목표에 일본인 간부들이 힘들어 했지만, 그는 목표를 우선시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임원들은 회사를 떠내야 했다. 그는 코스트 킬러’(Le Cost Killer), 모든 것을 고칠수 있는 미스터 픽스’(Mr. Fix It)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휘두른 칼에 많은 일본인들이 다쳤다. 닛산 소속 많은 임원과 직원들이 그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 갔다. 곤은 백전백승이 아니었다. “나를 믿고 따르라는 그의 명령에 부하들의 실망이 커갔다.

그런 와중에 201610월 닛산은 파산 위험에 놓인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 34%를 인수했다. 르노는 닛산을 통해 미쓰비시를 지배하게 되었고, 곤은 이 미쓰비시에서도 CEO 회장이 되었다.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3개사 자동차 회장겸 CEO를 겸하게 된 것이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대표이사 사장 /위키피디아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대표이사 사장 /위키피디아

 

그의 마지막 실수는 믿었던 일본인에게 경영권을 내준 것이었다. 곤이 일본인에게 CEO 자리를 내준 것은 닛산 내부로부터 나오는 불만을 완충시키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이사들의 배신으로 콘은 닛산에서 쫓겨 났고, 구치소에 들어가야 했다.

일본 법원은 올해 4월에 카를로스 곤을 풀어주었다. 무려 5개월이나 구치소에 가둬 두었다가 보석금 5억엔을 내는 조건으로 주거 제한 조건으로 석방했다. 출국은 물론 부인과의 접촉도 금지되었다.

프랑스 르노 본사에서는 닛산의 일본인 경영진들을 쿠데타 세력으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이카와 사장이 작년 초부터 비밀리에 팀을 만들어 곤 전 회장의 비위를 조사하고, 검찰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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