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일으킨 2차 산업혁명…미국, 유럽 앞서다
전기가 일으킨 2차 산업혁명…미국, 유럽 앞서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1.0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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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의 전신기, 벨의 전화기, 에디슨의 전기장치…산업중심지, 신대륙 이동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증기기관, 제철법, 증기선, 철도 등에 혁신이 이뤄졌다. 19세기 중반에 들어가면서 세계적으로 발명에 한계를 드러내다가 미국에서 전기(Electricity)에 의한 기술혁명이 다시 불붙는다. 역사가들은 이를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산업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미국에서 전기는 독립지도자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5~1790)에 의해 인지되었다. 그는 과학자이며 기술자였고, 번개에서 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이해해 피뢰침을 개발했다.

 

왼쪽부터 새뮤얼 모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토머스 에디슨 /위키피디아
왼쪽부터 새뮤얼 모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토머스 에디슨 /위키피디아

 

전기는 초기에 통신용으로 사용된다.

새뮤얼 모스(Samuel Morse, 1791~1872)는 예일대에 다닐 때 미술을 공부했으며 과도한 음주로 빚에 쪼달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초상화를 그리고 조각상을 만드는데 비범한 재주를 보였다.

1825년 모스는 워싱턴 D.C.에서 프랑스 라파예트 후작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에 아내가 아프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즉시 매사추세츠 뉴헤이븐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장례식까지 마친 뒤였다. 아내의 임종을 보지 못한데 자책감을 느낀 모스는 어떻게 하면 소식을 빠르게, 멀리까지 전달할 수 있을까를 몰두하게 되었더 그러던 중에 1832년 이탈리아 유학을 하다 돌아오다가 배 위에서 전자기학(電磁氣學)을 알게 되어 1837년 모스 전신기를 만들었다.

그는 길거나 짧은 전류 신호를 보내는 송신기와 그 신호를 받는 수신기를 만들었고, 창의적 부호와 그 부호를 옮겨 적는 종이테이프를 개발했다. 1844524일은 워싱턴 D.C.와 볼티모어 사이에 세계 최초로 전신이 공식 개통되었다. 1845년 모스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고, 추가 선로를 부설했다.

그의 전신부호와 기술체계는 특허를 얻었으나,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 수많은 경쟁사들이 생겨났다. 모스는 특허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미국의 전신사업은 각 주로 확산되었다.

미국의 전신회사는 숱한 M&A를 거쳐 1860년 웨스턴 유니언으로 합쳐졌고, 포스털 전신회사와 경쟁했다. 웨스턴 유니언은 출범 초기에 22천개의 전신사무소에 1323,200km의 전신선로를 연결했다.

전신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미국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신문사들은 전신을 통해 뉴스 정보를 얻었고, 1847년 멕시코와의 전쟁 뉴스는 전신선로를 통해 빠르게 전달되었다. 뉴욕 금융시장에서 가격과 주문이 전신으로 이뤄졌고, 철도회사들은 열치시간과 지연에 관한 정보를 전신선로를 통해 신속하게 전달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전신에 의해 국제무역 거래를 진척시켰다. 이로써 전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여 지게 되었다.

 

모스 전신기 모형 /위키피디아
모스 전신기 모형 /위키피디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8~1922)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대학을 다닌후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주했다. 벨은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어렸을 때 눈으로 음악을 읽을수 있었고, 머릿속에 흐르는 음악의 선율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피아니스트로 경력을 쌓길 바랬다.

벨은 보스턴 대학의 음성 생리학 교수로 있으면서 전화기 만드는 실험을 구체적으로 진행했다. 그는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독립 100주년 만국박람회에 전화기를 출품해 최고 인기 품목으로 환영을 받았다. 이듬해인 187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벨 전화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880년 미국전화전신회사(American Telephone & Telegraph)로 재탄생했고, 오늘날 AT&T의 모체가 된다.

모스의 전신기와 벨의 전화기는 기술적으로 보면 비슷하다. 그러나 전달체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신기는 부호로 전달되고, 전화기는 음성 자체를 전달했다. 부호는 감정을 전달하지 못하지만 음성은 감정을 전달할수 있다. 이 차이는 전화가 전신을 누르고 대중통신수단으로 떠오르는 결정적 배경이 된다.

벨은 모스가 특허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업을 키우지 못한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벨은 처음부터 특허관리를 변호사와 특허전문가들에게 맡겼다. 그가 고용한 전문가들은 일을 잘 해 냈다. 전신사업이 후에 수많은 경쟁업체들이 합병을 하는 과정을 거친 것과 달리 전화사업은 벨 회사에 의해 단일 구조로 확장되었다. 벨 회사는 16년간 특허기간(1877~1893) 내에 지역전화사업자에게 사업허가를 내주고, 전화교환기등 장비를 임대해 줬다. 미국의 전화사업은 벨 회사가 정점에 있고, 지역사업자가 하청을 받는 구조로 발전했다. 따라서 전화 기술도 일찍부터 표준화되었다.

벨 회사는 설립 첫해에 3천대의 전화를 설치했다. 미국인 1만명당 한 대 꼴이었다. 그러던 것이 1880년대에 6만대로 늘어났고, 1893년에는 26만대의 전화가 설치되어 미국인 250명당 한 대의 전화를 갖게 되었다.

초기 전화는 기업들이 활용했다. 1891년 뉴욕-뉴저지 전화회사는 병원 937, 약국 401, 주점 363, 법률사무소 146, 인쇄소 100곳에 전화를 놓았다.

 

1892년 뉴욕에서 장거리 전화를 하고 있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위키피디아
1892년 뉴욕에서 장거리 전화를 하고 있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위키피디아

 

벨사의 전화특허가 만료된 후, 많은 독립 전화회사들이 생겨나 1902년에 9천개의 전화회사가 우후죽순처럼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벨 회사의 틈새를 노렸다.

벨사의 약점은 교환수가 대화를 엿들어 통화자들의 신경을 거슬렀다는 점이다. 경쟁사들은 교환수를 거치지 않고 통화자들이 직접 상대방을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또 벨사가 무시해온 농가를 파고들어 시장을 확대하기도 했다.

전화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금 인하가 동반되었다. 1880년대에 뉴욕에서 전화 1000통에 150 달러였던 것이 1915년에 51달러로 인하되었다. 전화요금 인하는 중산층으로 전화기를 보급시켰고, 1920년대엔 미국 전역에서 13백만대의 전화가 사용되었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전기가 빛을 낼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연구해 냈다.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1831년에 전류와 자기장, 에너지의 법칙을 이용해 도체의 주위에 코일을 감아 회전시켜 전류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발전기를 개발해 냈다.

곧이어 유럽에서는 도선 사이에 간극을 두고 전기를 공급해 스파크를 일으켜 빛을 내는 아크등(arc lamp)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아크등은 186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등대에서 가동되었고. 몇 년후 미국에서 가로등으로 쓰였다. 하지만 초기 아크등은 스파크가 생길 때 터져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진공상태에 필라멘트를 이용해 빛을 발생시키는 백열등이 나왔는데, 필라멘트가 빨리 산화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 /위키피디아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 /위키피디아

 

전기 분야의 선두주자는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었다. 에디슨은 1878년부터 전기조명 연구를 시작해 자신의 백열등을 발명했다. 그는 전기관련 제품들을 연달아 발명했는데, 전등 이외에 주식가격 전송기, 발전기, 축음기, 사진기, 초기 라디오등도 개발했다.

에디슨은 전기에 관한한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다. 1880년 에디슨은 뉴욕에디슨 전기조명회사를 설립해 발전에서 송전, 전기계측, 전등에 이르기까지 자사 제품 일체를 이용해 수요자에게 전기와 전기제품을 공급했다. 에디슨의 전기회사는 숱한 M&A를 거쳐 오늘의 제너럴일렉트릭(GE)의 모태가 되었다.

미국의 발전소는 18821개였지만, 19022,250, 1920년엔 4천개로 팽창했다. 1920년대엔 미국 가정의 3분의1 이상에 전기가 공급되었고, 곧이어 전기선풍기, 다리미, 청소기가 20세기 초반에 개발되어 보급되었다.

 

또 에디슨은 백열 전구를 개발하던 중 진공상태에서 금속을 가열하면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를 에디슨 효과(Edison effect)라고 하는데, 에디슨은 전구 발명에만 집중하느라, 에디슨 효과의 과학적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에디슨 효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영국의 물리학자 오언 리처드슨(Owen Willans Richardson)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리처드슨은 진공상태에서 금속 필라멘트를 가열하면 전자가 튀어나온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했다.

곧이어 영국의 엔지니어 존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1849~1945)에 의해 19041116일 진공관(vacuum tube)이 발견되었다. 플레밍이 만든 이극 진공관(diode)3, 4극으로 진화되었고, 20세기 들어 트랜지스터, 반도체로 이어져 오늘날 전자공학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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