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5·8조치②…노태우 대통령의 격노
6공 5·8조치②…노태우 대통령의 격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1.02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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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파열음 재벌총수와의 만찬서 노 대통령 격노 청와대 강경 급선회

 

5·8 조치가 발동한지 반년이 지난 1990년말의 어느날 저녁. 노태우 대통령은 10대 재벌 총수들을 불러 청와대에서 만찬을 열었다. 매년 연말이면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한 해를 보내면서 덕담을 나누는 의례적 행사였다. 이날은 특히 청와대에 대통령 관저가 새롭게 축조된데 대한 집들이를 겸한 자리였다. 노재봉 비서실장, 김종인 경제수석도 배석했다.

만찬이 시작될 무렵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듣기 좋은 얘기가 오갔다. 간간히 웃음이 오가면서 문배주가 돌았다. 이날 따라 문배주는 독했던 모양이다. 재벌 총수들이 어느덧 취기가 오르면서 노 대통령의 귀에 거슬리는 발언이 나왔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말을 꺼내면서 분위기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기업을 적극 도와서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조중훈 회장의 말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맞장구쳤다.

전두환 대통령도 기업인을 잘 이해했습니다. 전 대통령은 한 번 한다면 꼭 했지요.”

현직 대통령 앞에서 전직 대통령을 칭찬하니, 노태우 대통령의 심가가 편안했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이 뼈있는 말 한마디를 했다.

여신관리를 이렇게 빡빡하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현 정부는 공장 지을 땅도 못 사게 하고, 투자도 못하게 하니. 정부가 이래서는 안 됩니다. ‘독재국가도 아니고.”

갑자기 자리가 어색해지고 노태우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그러면 내가 독재자라는 말이오.”

노 대통령은 화를 벌컥 내면서 자리를 떴다. 그날 노 대통령과 재벌 총수와의 만찬은 이것으로 파했다.

구자경 회장은 종종 직설적인 표현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구 회장이 독재정권운운하자, 이날 모임은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긴채 파장이 되고 만 것이다. 다소 취기 어린 가운데 내던진 발언이었으나, 구자경 회장은 이내 실수임을 깨닫고 이내 얼굴이 벌개졌다.

 

이날 모임이 깨진후 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른 세 회장은 각각 다른 방식의 돌파구를 찾았다.

조중훈 회장은 노 대통령에게 정중히 사과한 뒤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다. 조 회장은 그후 공식적 행사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그후 대선기간 내내 노골적으로 YS지지 발언을 했다. 현 정권에서 그룹을 회생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구자경 회장도 다음날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그후 일절 정치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주영씨는 끝내 사과를 하지 않고 결국 국민당을 창당해 정치에 뛰어들고 만다.

그러면 1990년 말 최고통수권자와 재벌 총수 사이에 깊은 골이 패게 한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5·8 조치였다. 5·8 조치는 1990510, 10대 재벌 총수들이 비업무용 부동산의 자진 매각을 선언함으로써 일단락될 듯 싶었지만, 한달후 강제 매각으로 전환된다. 자진 매각에서 강제 매각으로 전환되는 배경을 살펴보자.

 

19906월초 청와대에서 노재봉 비서실장 주재로 비서관 회의가 열렸다. 이 무렵 재벌들이 팔겠다고 내놓은 땅 가운데 매각실적은 1.8%에 불과했다.

노 실장이 말문을 열었다. “재벌들의 땅 사재기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이것저것 예외를 인정하다가는 아무 것도 할수 없습니다.”

김종인 경제수석을 필두로 한 경제팀에서는 무리하게 비업무용 판정을 내린 땅의 일부를 매각대상에서 제외하자고 했지만, 정무·사정·민정등 정치팀의 반발이 거셌다.

박운서 당시 비서관의 설명이다. “당초 재벌들에게 스스로 땅을 내놓으면 국민여론이 수그러들 것이고, 정부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설득했습니다. 더 이상 재산을 뺏는 일이 없다고도 했지요. 그런데 5·8 조치 한달후 매각률이 저조하자 청와대의 분위기가 돌변했습니다.”

이날 회의는 강제매각으로 결론지었다. 당초 6개월 이내(199011월까지)로 잡았던 매각시한을 7월말로 앞당기고 매각실적이 저조한 기업은 특별조치한다는 강경 방침이었다.

이어 경제 비서실의 이환균 비서관은 10대 그룹 기조실장을 한 사람씩 불러 땅 매각을 재촉했다. 대통령이 내린 통치권 차원의 최후통첩임을 강조했다. “도대체 왜 땅을 빨리 팔지 않는 거요. 체제가 전복되고 나라가 망해도 재산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현대의 이현태 실장은 619일 이환균 비서관을 만나 정부 방침을 전해듣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이 실장은 盧心의 실체를 간파해 이날 이 비서관과의 만남과 다음날(620) 서영택 국세청장과의 만남에서 나온 내용을 꼼꼼히 메모해 계열사에 내려보냈다. 이 일 또한 현대에 화를 불러 일으켰다.

한 경제신문이 1990628일자에 청와대 강경지침 시달내용을 보도했다. 이환균 비서관은 즉시 현대측 소행으로 짐작하고 이현태 실장을 추궁했다. 이 사건은 이 비서관과 이 실장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세영 회장이 김종인 수석을 찾아가 사과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정주영 명예회장마저 김 수석을 찾아가야 했다. 결국 현대는 현대강관의 모 사장을 인사조치하는 것으로 이 사안을 일단락지었다.

서영택 당시 국세청장은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에 강경론자였다. 서 청장은 62011대 그룹 기조실장을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 마디의 질문도 받지 않고 지시 사항만 전달했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에게 당부한 이후에도 부동산 투기를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기업들의 부동산 투기, 재테크등을 심층 분석한 자료를 갖고 있으나,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발표를 유보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가족 경영 형태를 탈피하십시오.”

서 청장의 가족경영 탈피발언은 재벌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줬다. 재벌그룹들은 서둘러 땅 매각에 나섰고, 산림청, 토지개발공사에 매각을 의뢰했다.

청와대의 강경 방침 이후 2% 미만에 머물던 49대 그룹의 땅 매각률이 한 달만에 6.8%로 뛰어올랐고, 8월말에는 10대 그룹에서 81.7%의 매각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진매각하겠다고 내놓은 땅보다 강제매각으로 내놓은 비업무용 부동산의 규모가 갑절 이상 불어났다. 그해 816일 국세청은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모두 7,282만평으로 전체 보유부동산의 35.3%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자진매각으로 내놓은 10그룹의 1,570만평, 11~49대 그룹의 1,565만평등 모두 3,135만평보다 2.3배 많은 물량이다.

이 무렵 정황을 김영대 당시 은행감독원 여신관리국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의 분위기는 어느 땅은 빼주고 말고 할수 없을 정도로 강경했습니다. 58일 이전에 매입한 재벌 보유 부동산에 대해서는 자로 잰 듯 법인세법 시행령의 비업무용 부동산 범주를 적용했습니다. 자진매각하겠다고 했을때보다 처분대상 토지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처분 시행과정에서 무리가 따랐지요.”

물론 정부가 재벌에 대해 강하게 밀고 나갈수 있었던 것은 여론의 힘을 업었기 때문이었다. 5·8 조치 발표 당시 은행감독원은 520개 기업을 상대로 조사, 공개한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이 1.2%라고 밝혔으나, 515일 구속된 이문옥 감사관은 23개 재벌기업의 토지 3,123만평 가운데 43.3%가 비업무용이라고 폭로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세청이 판정한 부동산 비율 35.3%는 이문옥 감사관의 폭로 후 들끓는 여론을 대폭 수용한 결과가 됐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위협, 은행감독원의 여신관리 중단이라는 협공을 받으면서 재벌그룹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땅을 팔았다. 재벌에겐 애써 키워온 자식을 뺏긴 기분이었다. 재벌기업의 반발에 부딛쳐 은행감독원은 일부 땅을 배주고 비업무용 부동산을 5,750만평으로 최종확정했어도 재벌들은 여전히 억울해 했다.

예컨대 한진그룹의 제주도 제동목장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 축산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목장경영을 권유해 매입한 땅이고, 1976년 당시 최각규 농림수산부 장관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 럭키의 서울 구의동 축구장은 체육부가, 대성탄좌의 경북 문경조림지는 산림청이, 롯데의 서울 롯데월드 부지는 서울시가 각각 매입을 요청했던 토지였는데 비업무용 판정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5·8 조치 1년 이후 문제 있는 땅을 선별해 구제해 주기로 했지만, 19912월에 입각한 최각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일부 비업무용 토지의 해제를 들어줄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이 마저 무산됐다. 이로써 재벌 기업들은 정부에 더 이상 속을수 없다며 법정 소송을 내기 시작했고, 정부에 대한 입장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게 된다.

 

한진그룹의 제동목장 /한국공항 사이트
한진그룹의 제동목장 /한국공항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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