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논리 비약이 심하다. 영어 제목 ‘Forbidden Dream’에서 드러나듯, 세종 임금이 중국 명나라가 금지하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장영실에게 천문기기를 만들게 했다는 내용이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임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성군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는 숭명 사대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 임금이다. 세종은 하늘에 대한 대한 제사(天祭)를 폐지했는데, 천제는 중국의 천자만이 지내는 것이며 제후가 거행할수 없다는 명분에서였다. 세종 임금은 선왕에 대한 상례(喪禮)에서도 제후에 맞게 가례화했다.
세종의 그런 면면이 가려진 상태에서 영화는 세종임금을 중국 천하에 대적하는 군왕으로 올려 놓았다. 또한 세종을 신분 차별을 뛰어 넘어 천인 출신의 장영실과 허울 없는 사이로 지내는 성격으로 바꾸었다.
영화는 이런 설정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팩트와 팩트 사이에 있을수 없는 비약을 창조해 냈다. 역사 기록의 빈틈이 많다는 사실을 이용해 과도한 허구를 삽입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하는 바람에 영화 곳곳에 억지가 상당히 드러난다.
장영실(蔣英實)은 <세종실록>에 여러차례 언급될 정도로 당대에 유명한 과학자요 기술자임은 분명하다.
실록에 따르면,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 원(元)나라의 소주(蘇州)·항주(杭州)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조선 사회는 부모 중 한사람이 천한 신분이면 자식도 그 신분을 이어받기 때문에 장영실은 천민 출신이었다.
그는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 아끼며 천거했고, 세종도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나도 역시 그를 아낀다”고 했다. 세종과 장영실은 돈독한 사이였던 것 같다.
장영실은 비록 태생적으로 천민이었지만 솜씨가 뛰어나 일찍부터 중국을 유학하며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세종임금은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어 그를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로 천거한다.
영실은 임금의 지시를 받아 물시계 자격루(自擊宮)를 완성한다. 세종은 자격루가 완성되자 “이 사람이 아니더라면 암만해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順帝)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기뻐했다고 실록은 전한다.
여기까지는 영화 <천문>이 그대로 따라간다. 임금 침전에서 창을 검게 칠하고 구멍을 내어 별자리를 그린다거나 마당에 둘이 같이 누워 하늘을 쳐다보는 것 정도는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치자.
하지만 어디서 사실과 픽션이 뒤틀어졌을까. 영화는 세종을 중국 천하에 대드는 독립운동 군주로 변모시키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장영실이 천문기구를 만드는 순간부터 임금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종은 명나라 사신의 요구에 따라 천문기구를 부수라고 명령하고 중국에 내통한 것으로 간주되는 신하에게 상스러운 욕을 한다. 천문기구는 별의 위치를 파악해 절기를 정확하게 정해 농사일에 도움을 주기 위한 도구다. 군주가 농사일을 이롭게 하는 것은 맹자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는 이 천문기구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 대목부터 세종은 강대국의 간섭에 휘둘리는 속국 군주가 아니라, 자주국가의 군왕으로 변신한다. 독자적인 천문기구를 만든다고 주권국가가 되나.
한글 창제는 작가의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권국가로서의 목표로 뒤바뀌었다. 성군, 애민, 주권국가라는 세 가지 관념을 전제로 팩트를 연결하다보니, 영화는 뒤죽박죽 되었다.
장영실이 벼슬에서 쫓겨난 것은 안여(安與) 사건이다. 임금이 타는 가마 제작을 제대로 감독히지 못한 죄로 그는 곤장 80대형에 처하게 되고, 그 이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진다. 조선시대 군왕의 상여가 부서지게 했다면 대역죄인이다. 왕비가 임금 얼굴에 생채기를 내어도 폐비가 되는 나라였다.
영화 제작자들은 이 대목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역모 사건이 생기고, 장영실은 의인이 되고, 어쩌구 저쩌구……. 최민식과 한석규라는 스타급 배우를 등장시킨 것 이외에 스토리에서 주는 메시지가 없는 영화였다.
영화적 허구를 논리비약이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