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5·8조치④…이어지는 소송전
6공 5·8조치④…이어지는 소송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1.04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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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속, 첫 소송제기…정부가 매입을 종용한 땅도 비업무용 판정

 

소송을 빨리 취하하시오.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른단 말이오.”

1991320일 박정구 금호그룹 부회장은 회장 부속실 간부와 광주고속 임원들에게 호통쳤다. 박성용 그룹회장이 출장 중이어서 계열사인 광주고속이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몰랐고, 이에 박 회장의 동생인 박정구 부회장이 소송 취하를 긴급히 지시했다. 이날 광주고속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채무부존재 확인청구 소송을 취하했다.

광주고속은 80%의 공사를 끝낸 용인골프장(나중에 아시아나컨트리클럽으로 개명)19909월 국세청에 의해 비업무용 판정이 나자, 매각시한인 199134일 외환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청와대와 금호그룹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은행감독원은 신규 대출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했고, 국세청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금호그룹의 박씨 일가는 취항 2년째 밖에 되지 않는 아시아나항공의 적자 보전과 항공기 구입을 위해 한푼의 은행대출이 아쉬운 터였다.

비록 해프닝을 끝났지만 광주고속의 법정소송은 현대·롯데·한진등 10대 재벌그룹이 5·8 조치에 대한 법적 대응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유신정부 때의 긴급조치에 버금가는 5··8 부동산 대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점이 드러났고, 정권 말기의 누수현상을 틈 타 제벌들이 정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199095일 국세청이 서울 제2롯데월드 부지에 대해 비업무용부동산으로 판정내릴 무렵의 어느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김웅세 롯데월드사장, 하태준 기조실장 등 그룹의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롯데월드 부지를 되찾으라고 지시했다. “이 땅을 비업무용 토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시오. 이 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나의 마지막 평생을 장식하는 일인 만큼 백방으로 뛰어보시오.”

신 회장으로선 억울했다. 서울시가 안 팔리던 체비지를 사달라고 부탁해 매입했는데,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이 이 땅에 대해 업무용이라는 내용의 문건을 은행감독원에 제출했는데도 청와대의 지시로 비업무용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신격호 회장은 이 땅을 애써서 키운 아들자식만큼이나 애지중지했다. 신 회장은 서울시청·영등포·잠실의 삼각축을 연결해 수도 서울의 상권을 잡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롯데그룹 간부들은 신 회장의 지시도 지시였지만, 그룹의 사활을 걸고 이 땅에 매달렸다. 재무부·은행감독원·서울시·토지개발공사등 정부기관을 찾아다니며 호소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마지막 기대를 사법부에 걸었다. 롯데그룹은 199197일 서울고법에 취득세중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 5·8 조치에 대한 정부와의 정면대결에 들어갔다.

강광언 당시 호텔롯데 상무의 설명이다. “당시 이용만 은행감독원장이 롯데월드 부지가 업무용 토지임을 주장했으나, 김종인 경제수석은 재벌기업마다 큰 땅 하나씩 끼어 넣어라고 지시, 이 땅이 비업무용으로 판정된 것입니다.”

롯데그룹 간부들이 만난 정부 당국자들은 대부분 이 당이 업무용임을 인식했으나, 역부족임을 설득했다.

당시 당국자들의 발언을 보자.

북한의 유경호텔이 105층인데 롯데그룹은 그곳에 유경호텔보다 높은 건물을 지으시오.” (박세직 서울시장)

롯데월드 부지는 비업무용 토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실무자회의에서 분위기가 워낙 강경해 빠질수가 없었습니다.” (김영대 은행감독원 여신관리국장)

롯데그룹은 땅을 살리기 위해 쓸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했다.

이 곳에 108층짜리 초현대식 종합레저시설을 건립할 계획으로 서울시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으나, 공군기지법상 고도제한에 묶여 반려됐으며(19907), 토지개발공사가 개발한 분당쇼핑센터 부지와 맞바꾸기로 했으나 5·8 조치의 신규 부동산 매입 금지조항으로 또 좌절됐다. (19917)

롯데는 그러나 5·8 조치 발표 1년이 되는 199157일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여신동결 통보를 받고 531일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에 토지매각을 위임하고 말았다. 그리고 97일에 서울고법에 소송을 냈다.

 

5·8 조치는 재벌에겐 엄청난 고통이었다. “은행 돈을 빌려 땅투기나 한다며 여론의 표적이 됐고, 정부가 사라고 한 땅마저 팔지 않는다고 윽박당하고, 그러나 재벌들은 땅을 팔지 않을수 없었다.

정부의 매각 종용에 시달리던 재벌기업들은 19905월 정부의 강제 매각 방침이 확실시되고, 국세청이 움직이자 매각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삼성·선경·한국화약·동아그룹등이 앞장섰고, 5·8 조치 3개월후인 19908월말에는 10대그룹 매각실적이 81.7%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조속한 매각 종용을 받던 선경그룹은 땅이 팔리지 않아 고심 끝에 조림지 305만 평을 충남대에 기증했고 동아그룹도 72만평을 부산대에 기증했다.

그 사이에 국세청은 현대와 한진그룹이 198010월 임직원 명의로 대규모 부동산을 위장 매입해 거액을 탈세한 사실을 적발하고 실직적인 제재를 가했다. 그러자 효과는 바로 나타나 현대가 9,000평을 경남 울산시에, 한진이 34,000평을 경기도 여주군에 기증하는등 1990년말에는 10대 그룹이 1,421만평을 처분했고, 81만평을 성업공사와 토지개발공사에 매각 의뢰했다.

그러나 처분시한인 199134일까지 47대 재벌그룹의 처분실적은 총대상면적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고, 노른자위 땅은 거의 팔지 않았다. 롯데의 제2롯데월드 부지)26,600), 한진의 제주도 제동목장(390만평), 대성탄좌의 문경조림지(2,366만평) 등이었다. 또 현대는 역삼동 사옥부지 3,980, 구의동땅 27,500평을 팔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들 땅은 정부기관이 사라고 권장했거나 인허가 과정이 지연돼 비업무용으로 묶인 땅이었다.

19917월 한진의 조중훈 회장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조 회장은 경영조정실장인 이태원 전무와 연일 숙의를 거듭한 끝에 제동목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현대·롯데그룹처럼 법원에서 판가름내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한해 전 청와대 만찬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눈에 비껴난 점도 있었고, 정부의 후속조치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내린 단안은 제주목장 390만평 가운데 국립대인 서울대와 제주대에 130만평, 장학재단인 21세기한국연구재단에 168만평등 298만평을 기증한다는 것.

조중훈 회장은 제동목장을 내놓으면서 그 아픈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한 걸음 한 발자국씩 닦아놓은 이 땅의 개간 과정도, 그 엄청났던 돌무더기도 이제는 한갓 추억으로 남게 됐다. 이제 미련도 애착도 없다. 다만 이 땅아 마구 분할되어 가치 없는 토지로 변하지 않길 기대할 뿐이다.”

조 회장은 5·8 조치 이전까지는 매주 제주도에 내려가 땅을 둘러보고 사업구상을 했으나, 제동목장 처분후 제주도엔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5·8 조치에 대한 현대그룹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타났다. 일단 정부의 부당한 조처에 법적 대응을 하는 한편, 정주영 명예회장은 결국 정치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의 주행시험장 부지 100만평은 은행감독원이 비업무용으로 판정했으나, 국세청에 재심을 신청, 업무용으로 판정받았다. 서울 구의동 땅은 성업공사에 매각 위임하던중 세운상가 상인들이 주축이 된 프라임산업에 팔았으나, 아파트를 판 것과 진배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 역삼동 사옥부지였다.

이 땅은 현대산업개발이 토지개발공사로부터 매입한 땅인데, 토개공은 매입후 3(8949)까지 사용치 않았다는 이유로 되돌려 줄 것을 요구, 914월 서울지법에 소송을 냈다.

김원갑 당시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이사의 설명이다.

역삼동 땅은 88올림픽 당시 올림픽 기간 중 공사를 하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허가가 연기된 것인데, 비업무용으로 판정됐습니다. 공기업인 포항제철의 대치동 사옥은 건설허가를 내주고 현대는 안 된다는 것은 모순이지요.”

현대는 19921224일 토지개발공사가 신청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소송에서 승소해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문제는 이들 땅에 대한 법적 시비에 그치지 않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18월부터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정치에 뛰어들 채비를 차렸다. “정부는 대기업이 무순 부동산 투기나 일삼는 원흉으로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40여년간 건설업을 하다 보면 공사장마다 토취장, 석산 등이 필요한데 정부는 덮어놓고 재벌이 투기했다고 비난해 체면을 손상시켰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직설적인 성토는 땅 문제에서 정치 문제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마침내 민자당이 총체적 경제난국을 초래했고, 나를 정치에 끌어들였다며 정치활동을 선언, 정부와 재벌의 갈등은 정치의 장에서 새로운 막을 열게 된다.

 

아시아나컨트리클럽 홈페이지 캡쳐
아시아나컨트리클럽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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