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국 팽창주의 겁먹고 알래스카 매각
러시아, 미국 팽창주의 겁먹고 알래스카 매각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1.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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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입후 ‘황금의 땅’…황금과 석유 매장, 풍부한 어장

 

미국 알래스카는 1648년 러시아 탐험가 세묜 데즈네프(Semyon Dezhnev)가 시베리아 동쪽 끝에서 해협을 건너 북미 대륙에 도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증거는 없다. 1741년 러시아 피오트르 대제가 덴마크의 탐험가 비투스 베링(Vitus Bering)을 단장으로 하는 원정대를 보내 알래스카 일대를 탐험했으며, 그후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1784년에 러시아정교 교회를 세우고, 모피 사냥꾼이 코디액섬에 스리세이니츠베이에 건설했다.

알래스카는 원주민 알류트(Aleut)족 언어로 위대한 땅이란 뜻으로, 러시아인들은 알리예스카(Alyeska)라고 불렀다. 1860년대에 러시아는 알래스카 영유권을 지탱하기 위해 소수의 러시아인은 강제로 정착시켰으며, 그들은 모피를 찾아 나서거나 해달을 잡으며 살았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의 세 대륙에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지만,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에는 사실상 통치력이 미치지 않았다. 바로 이웃에는 적대국인 영국령 캐나다가 버티고 있었고, 그 남쪽에는 멕시코와 전쟁(1846~848)을 일으켜 남의 나라 땅 절반을 빼앗은 신흥강대국 미국이 팽창 일로에 있었다.

 

크림전쟁(1854~56) 직후에 러시아는 패전에 따른 재정 위기에 빠져 있었고, 안으로는 농민반란에 직면해 있었다. 차르 알렉산드르 2(Aleksandr II)는 당장에 돈이 급했다. 통치하기 어려운 북아메리카의 얼음 땅을 경쟁입찰에 붙여 팔기로 생각했다. 러시아는 알래스카 매각 협상 대상으로 영국과 미국을 선택했다.

영국은 알래스카 이웃인 캐나다를 식민지로 두고 있었다. 1857~1858년 무렵에 러시아는 영국에 알래스카를 사라고 제의했다. 당시 영국 총리 팔머스턴경(Lord Palmerston)은 거절했다. 영국도 크림 전쟁 후유증으로 재정이 악화된데다 캐나다 통치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도 소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난후 자치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데다 미개척지가 많았기 때문에 영국으로선 알래스카도 소유할 여력이 없었다.

러시아는 방향을 바꿔 미국에 제의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남북 전쟁(1853~56)을 치른 직후였기 때문에 전쟁 복구 사업에 나라의 전 재원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어서 알래스카 구매에는 관심이 없었다.

두 나라에서 퇴짜를 맞은 러시아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공작에게도 제의를 했다가 거절당했다. 2018년 스위스의 한 TV는 이 사실을 보도했는데, 리히텐슈타인 대공이 이 사실을 시인했다.

알래스카 매각이 실패하자 러시아 내에서는 그 땅을 보유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때 차르의 동생 콘스탄틴(Konstantin) 대공이 외무대신에게 편지를 썼다. “미국이란 나라의 미래를 거짓없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끊임없는 영토욕을 보이고 있고, 북미 대륙을 통째로 지배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뺏는다면, 되돌려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2세는 동생의 말에 동조했다. 러시아는 알래스카에서 철수할 준비를 했다. 해군장관도 동의했다. 주미 대사 에두아르트 스테클(Eduard de Stoeckl)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그냥 철수하기보다는 미국에게서 몇푼이라도 받고 팔자고 했다. 차르는 주미대사의 의견을 지지하고, 스테클에게 매각 협상을 지시했다.

 

스테클은 1859년말에 미국 고위층과 접촉에 나섰다. 그는 존 애플턴(John Appleton) 국무부 차관보, 윌리엄 그윈(William M. Gwin) 캘리포니아 상원의원과 접촉해 알래스카를 사라고 제의했고, 이들은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협상에 응해보라고 했다. 러시아 대사 스테클이 얼마를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상원의원 그윈은 5백만 달러를 넘으면 안 된다고 했다. 턱없이 싼 가격이었다. 한마디로 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실 뷰캐넌 대통령은 국민적 신망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알래스카 문제로 시끄러워지길 꺼려했다.

1865년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이 대통령이 되고, 윌리엄 슈어드(William Seward)가 국무장관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대표로 슈어드 국무장관이, 러시아 대표로 스테클 대사가 나서 1867330일 알래스카 매각협상이 타결된다.

매입가격은 720만 달러였다. 현재 달러 시세로 쳐도 19백만 달러에 불과하다. 1당 매각 가격은 5달러에 불과했다.

협상안은 미국 의회를 통과해 알래스카는 러시아령에서 미국령으로 바뀌었다. 18671018일 알래스카 남부 시트카(Sitka)에서 알래스카 주권 이양식이 열렸다. 미국군과 러시아군이 청사 앞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예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러시아기가 내려가고 미국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 국토의 17배에 해당하고, 미국의 5분의1이 되는 1718,000면적의 알래스카가 미국 땅이 되었다. 알래스카에선 이날을 알래스카의 날’(Alaska Day)로 지정하고 있다.

 

1967년 3월 30일 알래스카 매매 계약. 지구본 옆에 앉아 있는 이가 윌리엄 슈어드 미국 국무장관. /위키피디아
1967년 3월 30일 알래스카 매매 계약. 지구본 옆에 앉아 있는 이가 윌리엄 슈어드 미국 국무장관. /위키피디아

 

미국은 알래스카를 헐값에 광대한 영토를 매입했지만, 당시 미국 내에서는 비싼 가격에 샀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 언론들은 협상을 진행한 국무장관의 이름을 붙여 슈어드의 냉장고’, ‘슈어드의 어리석음또는 북극곰의 정원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당시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하려는 의도는 아시아 무역을 위해 선박 연료보급기지를 위한 것이었다. 선박이 주요 운송수단이던 시절에 대양제국은 세계 해양 곳곳에 석탄창고를 만들어 두고 선박들이 중간에 연료를 보급하고 쉬어가던 시설(저탄기지)을 만들었다.

 

알래스카 매입에 사용한 720만 달러 수표. /위키피디아
알래스카 매입에 사용한 720만 달러 수표. /위키피디아

 

슈어드 국무장관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알래스카는 단지 얼음덩어리만이 아니었다. 곧이어 이 동토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가 미국 땅이 된지 30년이 채 되지 않은 1896년에 캐나다 유콘 준주(Yukon territory)의 클론다이크(Klondike)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금에 눈이 먼 10만명의 채굴자들이 이 얼음과 눈 덩어리 땅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세 가지 루트로 금광에 도착했다. 그 첫째가 알래스카의 꼬리부분 해로를 이용하는 벙법이고, 둘째는 뱃길로 알래스카로 가서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 셋째는 캐나다의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중 가장 많은 사람이 알래스카 꼬리부분으로 가서 클론다이크 강을 따라가는 길을 선택했다.

 

1896년 금광 발견지와 루트 /위키피디아
1896년 금광 발견지와 루트 /위키피디아

 

금을 노린 거대한 군중이 몰려 오자 미국과 캐나다는 알래스카 꼬리부분의 국경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생겼다. 알래스카 매입 초기에 꼬리부분에 대한 국경이 명확치 않았다.

미국은 해안선에서 30마일(49km)를 미국 영토로 하자고 했다. 이에 대해 캐나다는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서 30마일까지를 국경선으로 하자고 했다. 국경의 기점을 해안선으로 할 것인지, 섬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영토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 지역에는 섬들이 많았다. 캐나다 주장대로 하면, 캐나다는 금광에서 곧장 바다로 나갈수 있고, 주노(Juneau), 스캐그웨이(Skagway), 린운하(Lynn Canal), 글레이셔만(Glacier Bay)을 소유하게 된다. 미국 주장대로 하면 캐나다는 태평양 연안의 절반이 알래스카에 막혀버리게 된다.

캐나다는 당시 영국령이었다. 이번에는 미국과 영국이 영토분쟁을 벌이게 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외문제에 강경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Jr)였다. 루스벨트는 캐나다 주장을 말이 안되는 소리라며 영국 대사를 불러 캐나다 또는 영국이 방해한다면 험악한 꼴을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캐나다(영국) 사이에 벌어진 국경분쟁 /위키피디아
미국과 캐나다(영국) 사이에 벌어진 국경분쟁 /위키피디아

 

하지만 전쟁으로 가지는 않았다. 국방장관 루트(Elihu Root)는 전쟁을 하지 말고 국제재판소로 가져가자고 했다. 루스벨트도 이에 동의했다.

190310월에 열린 국제재판소에서 미국은 42로 이겼다. 이 판결로, 미국은 64,800의 해안과 섬, 국립공원인 통가스(Tongass) 원시림을 얻게 되었다. 캐나다는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발발한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참전하고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에는 석유도 매장되어 있다. 그곳의 석유매장량이 중동,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3위라는 조사보고도 있다. 주변 바다는 황금어장이다. 나중에 미·소간 냉전 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소련을 공격할 미사일 기지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1912511일에 알래스카를 준주(territory)로 변경하고, 19591349번째 주로 편입했다. 지금 인구는 73만명 정도다.

 

알래스카 /위키피디아
알래스카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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