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은 우연한 사건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미국이 유럽열강처럼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적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이 전쟁은 필연적 결과라고 진단한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일제히 독립하던 1823년에 제임스 몬로(James Monroe) 대통령은 유럽 열강이 미주 대륙에 옛식민지를 다시 지배하려고 군사력을 동원하거나 독립국에 개입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몬로 선언을 발표했다. 남북 아메리카에 걸쳐 광대한 식민지를 가졌던 스페인은 1820년대에 대부분이 독립하는 바람에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정도만 식민지로 확보하고 있었다.

쿠바에서도 1868~1878년 10년에 걸쳐 독립전쟁이 벌어졌고, 미국은 몬로주의 원칙에 따라 쿠바의 독립을 지지했다. 이 10년 전쟁은 쿠바인들이 5만~10만명이 죽고, 스페인인들도 8만~9만명이 사망할 정도로 치열했다.

간신히 반란을 진압한 스페인은 쿠바인들에게 자치권 등의 요구를 무시하고 독립운동세력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쿠바인들은 이웃 미국이 개입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1895년에 또다시 소규모 무장봉기가 일어나 진압되었고, 1898년 1월에 아바나에서 쿠바인들의 소요가 발생해 지역 신문사들을 공격했다. 소요가 일어나자 미국은 자국인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함 메인호(USS Maine)를 파견했다.

 

 

메인호는 1월 25일 아바나항에 입항해, 독립군과 스페인군 간의 전투가 지속된다는 이유로 계속 정박해 있었다. 그런데 2월 15일 오후 9시 40분에 항구에 정박해 있던 메인호에 원인 불명의 대규모 폭발사고가 났다. 배는 침몰했고, 승조원 355명중 250명이 사망했다.

미국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은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사고원인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스페인측은 석탄저장고에서 자연발화로 탄약고가 폭발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페인은 미국과 공동조사를 하자고 했지만,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미 해군조사단은 3월 28일 외부의 폭발에 의해 탄약고에 불이 붙어 선체 하부가 폭발했다는 조사결과를 냈다.

이제 전쟁은 불가피했다. 선정적인 언론들이 스페인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했다. 조셉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허스트의 뉴욕 저널 등 미국의 옐로 페이퍼들은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 스페인의 폭격을 기정사실로 보도하고,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사전에 준비했다. 진상조사가 나오기 이전에 매킨리 대통령은 5천만 달러의 국방비 증액을 의회에 제출했고, 상하양원은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마침내 4월 11일 매킨리 대통령은 쿠바에 파병을 하기로 결정하고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전투는 쿠바에서보다 태평양 서쪽 필리핀에서 먼저 벌어졌다. 미국의 욕심이 카리브해보다는 태평양에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1898년 5월 1일 미 해군 아시아 함대(Asiatic Squadron)가 마닐라 항에 정박중인 스페인 함대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전투는 오래 가지 않았다. 몇시간의 포격으로 스페인 전함 8척이 침몰하고 150명의 스페인 병사가 사망했다. 미군의 피해는 부상자 6명에 불과했다. 이 잠시의 포격으로 미국은 마닐라 항에 성조기를 게양했다.

필리핀을 333년간 지배했던 스페인이 물러날 조짐을 보이자, 독일 해군이 마닐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독일은 1871년 통일한 후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고, 1897년 중국에 칭따오(靑島)의 지배권을 확보한 이후 아시아 지역에 유럽열강이 차지 하지 않은 땅을 찾아 나서던 중이었다.

독일 함정 8척은 마닐라 항에 입항하면서 성조기에 경례도 하지 않고 미 해군의 진로를 방해히기도 했다. 해군 함정이 다른 나라 영내로 들어갈 때 상대국 국기에 경례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미국은 이 거만한 독일 함정을 그냥 두지 않았다.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무력사용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독일 함대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미 해군이 마닐라를 접수할 당시에 필리핀에는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스페인은 독립운동 지도자 호세 리잘(José Rizal)를 처형했지만, 필리핀 지식인들은 스페인 식민당국에 저항해 혁명운동을 벌였다. 1896년 8월에 시작된 혁명은 미군이 스페인군을 몰아낸 1898년 8월까지 전개되었다.

미 해군 사령관 조지 듀이(George Dewey)는 홍콩에 망명해 독립운동을 지시하던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를 불렀다. 아기날도는 미국이 필리핀을 독립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미국의 도움으로 필리핀에 귀국해 여러 지역의 혁명세력을 규합해 그해 6월 12일 필리핀 독립을 선포했다.

스페인은 마닐라 항구만 미국에 빼앗겼을 뿐 내지에는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8월 13일 1만명의 미 해병은 마닐라 시내를 향해 공격했고, 아기날도도 4만명의 독립군을 투입해 미군의 마닐라 입성을 지원했다.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스페인군도 1만3천명의 병력으로 만만치 않았지만, 거의 저항을 하지 않았다. 약간의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스페인군은 곧바로 백기 투항했다.

미군은 마닐라에 입성한 이후에 필리핀 독립세력에 등을 돌렸다. 미국은 독립군의 마닐라 진입을 금지했다. 아기날도는 미국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1898년 12월 10일 미국은 스페인에게 2천만 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필리핀의 지배권을 양도받는 내용의 파리 조약(Treaty of Paris)을 체결했다.

필리핀 독립세력은 이제 미국을 적으로 삼았다. 독립세력들은 이듬해 1899년 1월 21일 필리핀 공화국을 수립하고 아기날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들은 곧바로 미국과 전쟁을 개시했다. 전쟁은 3년 4개월이나 지속되었다. 필리핀인들은 20만명 가까이 사망했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기아와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미군도 4천~6천명이 죽었는데, 스페인과의 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이다. 필리핀 독립전쟁은 아기날도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1902년 7월에 공식적으로 끝나지만, 여러 섬들에서 게릴라전은 계속되었다.

 

 

카리브해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필리핀 마닐라항을 장악한지 한달쯤 후에 시작되었다. 6월 6일, 미 해군은 쿠바 관타나모 만에 진입해 요새를 함락시켰다. 이어 같은 달 22일, 미 육군은 쿠바에 아무런 저항없이 상륙해 7월 1일 엘 카네이 전투(El Caney order of battle)와 산 후안 언덕 전투(San Juan Hill order of battle)에서 스페인 육군을 격퇴했다. 미군은 쿠바 독립군과 합류해 7월 17일 요충지 산티아고를 함락시키고 스페인 육군 1만1,5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스페인 군사력은 무기력했다. 스페인 본국은 쿠바에 함대를 파견했지만, 미 해군에 의해 궤멸되었다.

쿠바 섬을 점령한후 미군은 카리브 해의 동쪽 끝에 있는 스페인령 푸에르토리코로 눈을 돌렸다. 7월 25일 미국은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푸에르토리코의 과니카에 지상군을 상륙시켰다. 여기서도 스페인에 저항하는 게릴라 세력의 도움을 얻어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미국은 스페인이 가지고 있던 작은 섬들도 빼앗았다. 필리핀 공격에 나섰던 아시아 함대를 빼돌려 1898년 6월 20일 괌 아프라(Apra) 항구에 도착했다. 순양함 1척과 3척의 수송선이 고작이었다. 괌에서는 전투가 없었다. 괌의 스페인 현지 관리들은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터진줄도 모르고 있었다. 미 해군이 함포사격을 하자, 스페인인들은 해군의 예포로 알았다. 스페인인들은 미국 함정으로 찾아와 화약이 떨어져 대응할 예포를 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제서야 미국 함장은 스페인과 전쟁 중이고, 괌을 접수하러 왔다고 알려주었다. 스페인 관리들과 54명의 스페인군은 순순히 항복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은 신생 강대국과 늙은 제국과의 전쟁이었고,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카리브해를 내해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해 하와이를 합병한데 이어 본격적인 태평양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