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브룩, 보르네오 섬에 백인 왕조 형성하다
제임스 브룩, 보르네오 섬에 백인 왕조 형성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1.2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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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퇴치 명분으로 주권 이양 받아…3대 이어간 사라와크의 영국인 왕조

 

영국은 16세기부터 18세기초까지 자국인 해적을 키운 적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민간인에게 사략선(privateer) 허가를 내주어 적대국인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지나 상선을 습격해 마음껏 노략질하도록 허용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웅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도 해적 출신이었다. 그러던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제패한 이후 1717년 해적 금지령을 내리고 자국인 해적들을 소탕하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도 영국은 이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영국인이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가 영토를 얻어 오면 자국령으로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현재 말레이시아 영토인 보르네오섬 사라와크(Sarawak) 주다.

 

제임스 브룩 /위키피디아
제임스 브룩 /위키피디아

 

제임스 브룩(James Brooke, 1803~1868)1803년 영국령 인도 캘커타에서 가까운 반델 Bandel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12살에 영국으로 돌아가 몇 년간 학교에 다녔지만 중퇴하고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16살이던 1819년 인도로 돌아가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벵골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의 군 생활은 불행했다. 영국-미얀마 전쟁에 종군해 아샘 지방에서 공을 세웠지만, 1825년에 버마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해 요양을 위해 영국에 돌아갔다. 1930년 치료를 마치고 인도 마드라스로 갔지만, 동인도 군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전역을 하게 된다. 전역 후 제임스는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무역업을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탐험을 하고 싶었다. 183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상속받았다. 그는 그 돈으로 범선 로얄리스트(Royalist)호를 구입했다.

 

이 범선은 142톤으로, 30년전 영국 해군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을 물리칠 때 투입한 전함과 동등한 급수였다. 왕립요트협회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이 배는 영국 해군기(White Ensign)를 게양하고 영국 해군으로서의 권리도 부여받고 있었다. 로얄리스트호는 대포를 비롯해 중화기를 장착한 개인 전함이나 다름없었다. 해적 시대의 사략선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이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섬들을 탐험한 후에 지중해를 두루 여행할 생각이었다.

18388, 제임스는 이 배에 올라타 보르네오섬의 쿠충(Kuching)이란 곳으로 갔다. 쿠충은 사라와크주 서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나중에 사라와크의 수도가 된다.

보르네오섬은 토착 브루나이 왕조(Sultan of Brunei)14세기 후반부터 다스리고 있었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이 왕조는 왕을 술탄(sultan)이라 불렀다. 제임스가 쿠충에 도착할 무렵엔 23대 오마 알리 사이푸딘 2(Omar Ali Saifuddin II)가 제위에 올라 있었다.

마침 사라와크에선 브루나이 왕가에 저항하는 해적 반란이 일어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제임스가 쿠충에 입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브루나이 술탄의 삼촌이자, 섭정이었던 무다 하심( Muda Hashim)이 만나자고 제의를 해왔다. 무다는 제임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제임스는 적극 돕겠다고 약속하고 로얄리스트호를 반군 토벌에 투입했다.

 

제임스 브룩의 함대와 해적들과의 전투 /위키피디아
제임스 브룩의 함대와 해적들과의 전투 /위키피디아

 

말레이 해협에서 해적질을 하던 무리들은 로얄리스트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제임스의 도움으로 해적들이 소탕되자, 브루나이 술탄은 기뻐했다. 하지만 브루나이 귀족 중에는 제임스의 승리를 질투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무다 하심과 그의 세력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반란을 일으켰다. 제임스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제압하지 못하고 중국에 주둔하던 영국 해군에 지원을 요청했다. 덕분에 술탄은 다시 왕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1841년 브루나이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2세는 고마움의 표시로 사라와크의 통치권을 제임스에게 이양했다. 1842818일 제임스는 사라와크의 라자”(Rajah of Sarawak)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이로부터 사라와크에 백인왕조(White Rajahs)가 시작된다. 제임스 브룩을 시조로 하는 브룩 왕조는 동남아시아 역사에 유일한 백인 왕조였다. 1842년부터 1946년까지 3대에 걸쳐 사라와크를 통치하다가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제임스는 형식적으로는 브루나이 술탄의 속국을 자처하며 왕의 칭호로 술탄(sultan)보다 한 등급 낮은 라자(Rajah)를 사용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루나이 왕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라와크를 지배했다.

 

보르네오섬 사라와크 /위키피디아
보르네오섬 사라와크 /위키피디아

 

제임스는 개인적으로 확보한 무력으로 대영제국의 팽창에 기여하고, 동시에 현지민을 해적과 노예제도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상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사라와크 영지를 넓혀 갔다. 그의 영토 확장은 브루나이 왕국의 영토를 잠식하는 것이었고, 사라와크의 원주민 전사들의 격렬한 저항을 맞게 된다. 그는 현지 저항을 진압하고, 1846년에는 북()보르네오의 라부안(Labuan) 섬을 점령해 영국에 상납했다.

영국 의회에서는 제임스의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어났다. 그가 정부의 허락도 얻지 않고 해적 퇴치에 나선 것이 옳았느냐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영국령 싱가포르에서 조사가 실시되었고, 조사결과 그의 행위가 옳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영국 정부는 1846년에 제임스에게 라부안 섬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다음해에 기사(Knighthood) 작위를 내렸다. 이로써 제임스는 영국정부가 인정하는 사라와크 왕(Rajah)이자 라부안 총독이 되었다. 영국으로선 자국의 무력을 쓰지 않고 한 시민의 개인적 역량으로 영토를 확보해 사라와크를 보호령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브룩 왕조…좌로부터 1대 제임스, 2대 찰스, 3대 바이너 /위키피디아
브룩 왕조…좌로부터 1대 제임스, 2대 찰스, 3대 바이너 /위키피디아

 

제임스는 어려서부터 탐험을 좋아 했다. 1852년에 생물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를 만나 8년에 걸쳐 동남이 알대 섬들을 탐험하며 식생 조사를 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사생아를 하나 두었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왕위를 조카 찰스 브룩(Charles A. J. Brooke)에게 위임하고 영국에 돌아가 1868년 사망했다.

제임스가 백인 왕조를 창시하고 영토를 확장했다면, 그를 이은 찰스는 사라와크를 질적으로 발전시켰다. 찰스는 병원을 지어 원주민의 복지를 확대하는 한편 요새를 지어 국경 수비를 강화했다.

1917년 찰스가 죽고 그의 아들 바이너 브룩(Charles Vyner Brooke)3대 왕(라자)에 즉위했다. 바이너는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고 이슬람등 현지인들의 종교를 육성했다. 백인 왕조의 현지화인 셈이다.

하지만 브룩 왕조는 3대에서 종언을 고한다. 19411225일 일본군이 사라와크에 진입하면서 3대 왕 바이너는 호주 시드니로 피신했다. 바이너는 2차 대전이 끝날때까지 시드니에 머물렀다.

일본군은 사라와크를 점령한 후 브룩 왕조의 행정 조직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면서 중요한 자리는 일본인을 배치했다. 이 괴뢰 정부는 1945년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한 호주군이 진주하면서 붕괴된다.

곧이어 영국군이 진주해 사라와크에 군정을 실시한다. 호주로 피신 갔던 브룩 왕조의 마지막 왕 바이너가 귀국하지만 더 이상 사라와크를 통치할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주권을 영국에 이양하기로 하고, 사라와크 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1946년 법안이 의회에서 근소한 차이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사라와크 주권을 영국에 넘겨주는 법안에 항의해 수백명의 공무원들이 집단사표를 냈고, 드디어 영국 정부가 파견한 사라와크 총독 던컨 스튜어트(Duncan Stewart) 경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9467월 사라와크를 직할령으로 만들었다. 브룩 왕가의 왕세자 격인 앤서니 브룩은 주권 이양에 강력하게 반대하다가 추방되었다.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현지인들에 의해 독립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독립운동가들은 사라와크를 연방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1961527일 말레이시아 연방은 사라와크를 하나의 주로 편입시켰다. 브루나이와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 독립했다.

 

사라와크 백인왕조 문장 /위키피디아
사라와크 백인왕조 문장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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