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스페인 독감에 전세계 5천만명 사망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에 전세계 5천만명 사망했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3.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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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도 인구 절반이 감염, 14만 사망, 김구도 걸려…세 번이나 확산

 

100여년 전인 1918년 전 세계에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 번졌다. 당시 전세계 인구는 18~19억명. 이중 27%에 해당하는 5억명이 이 독감에 감염되었다. 전세계 사망자는 4천만~5천만명에 이르렀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유럽대륙은 물론 미국, 일본, 인도, 중국을 거쳐 남태평양 군도, 북극에도 번졌다. 20세기 최초이자 최대의 팬데믹(pandemic)이었다.

스페인 독감이 워낙 강력하게 번져 미국에서만 기대수명을 12년 단축시켰고,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의 사망률이 높았다. 특이하게 이 독감은 다른 돌림병과 달리 20~30대에서도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서로 죽고 죽이던 전쟁의 지도자들은 전염병이 확산되자 서둘러 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했다.

 

스페인독감 연령대별 사망률 /위키피디아
스페인독감 연령대별 사망률 /위키피디아

 

1918년은 1차 세계대전 막바지 단계였다. 미국이 19171차대전에 참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동맹국이 패주하던 시기였다.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는 아직도 병리학자들이 연구중에 있다. 1999년 영국 옥스퍼드 연구진의 분석에 의하면 1917년말 프랑스 북부의 한 야전병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군대는 어느 시골마을에 주둔했는데, 수많은 군인들이 들락거리고, 군대에 식용으로 공급되는 가축들이 도살되면서 바이러스 서식의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미국 캔사스 주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병리학자들의 역학 조사 결과, 이미 1917년말에 프랑스에 주둔한 미군 캠프에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미국은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사기를 꺾지 않으려고 전염병 감염 보도를 통제했다. 그러는 사이에 부상자와 퇴역 군인들이 전선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병원균은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1차 대전에 중립을 취한 스페인에선 감염사실을 자유롭게 보도했는데, 그래서 이 돌림병의 이름이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되었다.

 

스페인 독감 환자로 북적이는 미국 캔사스주 야전 병원 /위키피디아
스페인 독감 환자로 북적이는 미국 캔사스주 야전 병원 /위키피디아

 

스페인 독감은 19186~7월에 확산되었다가 잠시 멈추는 듯 했다가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1월초까지 대유행으로 번졌다. 미국에서는 19181월 캔사스주 해스켈 카운티에서 첫감염자가 나왔다. 곧이어 그해 3월에 뉴욕 퀸즈에서도 환자가 생기고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당시 스페인 독감의 사망률이 2~3%였으며, 사망자는 3천만명이었고, 세계인구의 1.7%가 그 돌림병으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곳은 영국령 인도였다. 인도의 사망률 5%, 17백만명이 사망했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이란에서도 사망률 8~22%, 90~240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미국은 인구 1억명을 막 돌파했는데, 전체인구의 28%가 전염되었고, 사망자는 50~67만명(사망률은 0.48~0.64%)에 달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마저 이 독감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도 5만명, 브라질에서 30만명이 죽었고, 영국 25, 프랑스에서 4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낮은 남태평양 군도와 알래스카등지에서 사망률이 극히 높았다. 앨래스카 이누이트족의 한 마을 주민이 전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당시 인구 3천만명중 150만명이 죽었고, 타히티에서 한달새에 사망률 13%, 사모아에서 22%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유럽인 64백명, 마오리족 25백명이 죽었다. 마오리족은 유럽인들에 비해 8배의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당시 중국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감염률과 사망률이 낮았다. 그것은 앞서 다른 전염병이 돌아 다른 나라에 비해 면역성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에서는 23백만명이 감염되었고, 이중 39만명이 사망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스페인 독감이 번졌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2,113(44%)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139,128(감염자의 1.87%, 인구의 0.83%)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선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렸고, 충청남도에서 특히 기승을 부려 서산시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인 8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예산군과 홍성군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다. 경성부에서는 268명이 죽었고, 그중 조선인은 119명이었다. 당시 중국에 있던 김구도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20일간 앓았다고 백범일지에까지 기록해 두었다.

 

영국에서의 스페인 대확산 주기 /위키피디아
영국에서의 스페인 대확산 주기 /위키피디아

 

스페인 독감은 한번 유행했다가 그친 것이 아니라 1919년에 다시 번졌다. 그래프를 보면 3번에 걸쳐 대확산과 진정기를 거쳤다.

독감이 만연하면서 감염이 덜 한 지역에서도 일상의 활동이 정지되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고, 고객들의 주문이 끊겼다. 당시 미국 도시의 전철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탑승이 거부되었다.

 

스페인 독감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당시나 지금이나 수수께끼다. 의료진들이 철저하게 방역을 하고 예방책을 썼기 때문이라는 일부 분석이 있기는 하지만 의학계의 공치사에 불과하다. 19193월에 감염자가 급감하면서 4월 어느날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멸종했다.

 

스페인 독감 영향으로 시애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아예 전차 탑승이 거부되었다. /위키피디아
스페인 독감 영향으로 시애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아예 전차 탑승이 거부되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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