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연구 불신한 1850년대 런던의 콜레라 방역
의학 연구 불신한 1850년대 런던의 콜레라 방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3.07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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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로 전염된다는 그릇된 신념…존 스노가 수도원 오염 문제 지적

 

전염병 방역은 과학을 근거로 해야 한다. 과학적 판단을 하지 않고 우왕좌왕한 케이스가 1850년대 영국 런던의 콜레라 파동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와 유명인사들은 콜레라는 공기에서 전염된다고 믿었다. 소수의 의학자가 연구 끝에 콜레라는 물에 의한 전염되는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밝혀 냈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믿지 않았다. 그 결과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했다.

 

1854년 영국 런던에 콜레라 돌림병이 번졌다. 런던 도심에서 창궐한 콜레라는 영국인들에게 공포심을 자극했다. 콜레라에 걸리면 건강한 사람에게도 몇시간 내에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왔다. 어디서 누가 걸릴지도 몰랐다. 부유층이 살던 주택가에도 콜레라가 엄습했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에 런던 외곽 판자촌에 콩나물시루처럼 모여 살던 빈민들은 떼로 죽어 나갔다. 100명의 유아 중에 15명이 생후 1년 이내에 죽어 나갔다. 장례 비용을 감당 못해 시체를 집에 숨겨둔 빈민들도 많았다고 한다. 200년전에 유럽에 퍼졌던 흑사병 이후에 다시 괴질이 당시 250만 인구의 런던을 강타한 것이다.

 

1850년대 런던 콜레라 창궐을 스케치한 삽화 /위키피디아
1850년대 런던 콜레라 창궐을 스케치한 삽화 /위키피디아

 

하지만 콜레라의 경로를 모르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콜레라가 공기를 타고 전염된다고 믿었다. 템스강은 구역질 날 정도로 냄새가 났다. 당시 런던에는 하수처리 시설이 있긴 했지만, 빗물 배수구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농촌 인구가 대거 런던으로 몰려가면서 하수시설이 넘쳐나는 오물을 처리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거지에 오물을 쌓아 두었고, 지하에 감춰진 오물들이 까맣게 썩어 마룻바닥이나 틈 새로 새어 나와 길거리에 제멋대로 흘러 넘였다. 그 모든 하수구가 그대로 템스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빈약한 하수처리시설이 런던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그 공기를 통해 콜레라가 전염된다고 믿었다

.

저명인사들이 독가스이론(miasma theory)을 지지했다. 질병이 독가스처럼 공기를 통해 퍼지며, 런던 하수구에서 배출된 죽음의 냄새를 제거하면 콜레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개혁가였던 에드윈 채드윅은 물론 크림전쟁에 뛰어든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도 이 이론의 지지자였다.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이었지만, 수도 런던은 흘러넘치는 오물과 무계획적인 하수시스템으로 몸살을 앓았다. 때마침 수세식 화장실이 상업적으로 개발되어 부유층에 보급되면서 오수 배출량이 늘어났다. 수세식 변기가 확산되면서 런던이 물 사용량이 1850년에서 1860년 사이에 두배나 많아졌고, 그만큼 더 많은 오수가 템스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존 스노 /위키피디아
존 스노 /위키피디아

 

단 한사람만이 공기가 아닌 물이 콜레라 전염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존 스노(John Snow)라는 의사는 콜레라 발생지역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끝에 콜레라의 경로가 물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콜레라 전염의 원인은 상수도에 있지, 하수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더러운 오수를 처리하는 하수처리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영국은 조밀한 런던의 하수처리 시설을 만들 예산이 넉넉하지 못했다.

1858년 영국 런던의 여름은 유난히 덥고 건조했다. 6월 중순이 되자 템스강에서 나는 끔찍한 악취가 웨스트민스터 의회까지 침투했다. 의원들은 구역질 나는 공기를 견디지 못해 의회를 뛰쳐 나갔다. 대영제국의 신사인체 하는 의원들도 더 이상 체면을 차리지 않았다. 냄새도 고약했지만, 공기를 통해 콜레라가 전염된다는 공포심에서 의정이고 뭐고 우선 사는 게 급했다. 영국에서는 이를 대악취’(Great Stink)라며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하고 있다.

의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영국의 제국주의자로 잘 알려진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가 주도했다. 의회는 돈이 아무리 들더라도 런던 하수도를 정비하기로 하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사는 1875년에 마무리되었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은 보기에 달라질 정도로 좋아졌다. 악취도 사라졌다. 런던의 하수로 대공사가 준공되면서 사람들은 콜레라는 더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콜레라가 다시 번졌다. 하수도의 악취가 콜레라 발병과 전파의 원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죽은 존 스노 의사의 말에 귀를 귀울이기 시작했다. 런던 상수도 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런던시도 끓이지 않은 물은 마시지 말라는 광고를 냈다.

그후 과학자들에 의해 콜레라의 통로가 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백신이 개발되면서 무시무시했던 콜레라는 무력화되었다.

런던 하수도 공사는 악취를 제거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하수도 개선공사로 우물과 펌프에서 나오는 물의 질도 좋아졌다. 위생이란 관념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850년대 죽음의 템스강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1850년대 죽음의 템스강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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