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출항지는 삼척 오분항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출항지는 삼척 오분항
  • 김태수 박사
  • 승인 2020.03.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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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지 논쟁…문헌 고고학 군사학 해양지리학 해양사 관점에서 삼척 출항설 우위

 

이글은 20191218일 강원도 삼척시에서 열린 이사부 선양 활성화 세미나에서 김태수(국학) 박사(환동해학회장)의 발표내용이다. /편집자주

 

우산국 정벌을 위한 출항지는 어디였을까

지증왕 6(505) 실직주의 군주(軍主)로 부임한 이사부는 512년 하슬라(강릉) 군주가 되었고 그 때 우산국 정벌이 이루어진다. <삼국사기>에는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 군주로 우산국을 정벌했다고 했으나, <삼국유사>에는 우산국을 정벌한 공로로 주백, 즉 하슬라주의 군주가 됐다고 하여 우산국 정벌 시기가 실직군주였을 때인지 아니면 하슬라군주 때인지에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그것은 또한 우산국 정벌을 위한 군선의 출항지가 어디인가 (강릉인가 삼척인가)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KBS역사스페셜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동해의 수호신, 신라장군 이사부>(201043)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여기서 강릉의 안목항과 삼척의 오분항을 출항지로 주목했으나 두 곳 모두 그 가능성만 확인했을 뿐이지 어느 한 곳으로 결론내지 않았다.

그런데 2009년 강릉시의 학술용역을 받은 강릉원주대 연구팀은 강릉의 안목항으로 추정했고, 2010년 한국이사부학회의 학술세미나에서는 분야별 전문가들의 공동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삼척의 오분항이 이사부군단의 출항지로 가장 유력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양측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강릉 안목바다. 강릉출항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지목하는 항구 /김태수
강릉 안목바다. 강릉출항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지목하는 항구 /김태수

 

강릉에 거주하고 있는 학자들은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을 위한 출항지를 강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고찰한 이성주교수는 당시 내만 혹은 석호가 넓게 펼쳐졌을 남대천 하구는 하슬라인들이 건조한 군사용 준구조선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을 설치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규대교수는 6세기 초반 신라의 동북방 진출정책과 하서정이라는 지방군단에 초점을 맞추고, 이 시기 하슬라 군주의 치소는 예국고성으로 비정되며, 지금의 안목항이 하슬라주 이사부 군주의 제일의 군사항으로 우산국 복속을 위한 출항기지라는 견해이다. 박도식교수는 이사부가 하슬라군주로 임명됨으로써 군사력의 무게 중심도 강릉으로 옮겨졌다고 보고 안목항을 우산국 정벌 당시의 출항지라고 했다.

강릉 쪽의 주장은 삼국시대부터 강릉은 동해안의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으므로 삼척보다 먼저 신라의 힘이 닿았고 그런 까닭에 출토유물이 풍부하다는 것, 그리고 이사부가 실직군주에서 하슬라 군주로 임명될 때 군사력까지 강릉으로 옮겼고, 우산국 정벌을 위한 출항지도 강릉의 안목항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논리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첫째, 강릉이 동해안의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지리적으로 원산에서 삼척을 거쳐 포항에 이르는 동해안은 해안평야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자리한 삼척은 산악지대이다. 따라서 북쪽에 있는 나라가 삼척을 장악하면 그 남쪽으로 포항에 이르는 동해안은 쉽게 장악할 수 있으며, 남쪽에 있는 나라가 삼척을 장악하면 그 북쪽으로 원산에 이르는 동해안을 쉽게 점령할 수 있다. 2)

그것은 고구려 장수왕 때 삼척을 거쳐 영덕까지 남하했고, 신라의 지증왕은 삼척을 거쳐 하슬라로 북진한 사례가 입증한다. 신라가 주군현 제도를 실시하며 동해안에는 유일하게 삼척에 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첫 군주로 파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삼척이 그만큼 중요한 군사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동해안 9개 수군을 총괄하는 영장의 치소가 삼척에 있었다. 당시 삼척부는 강릉대도호부 아래에 있었음에도 동해안 수군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삼척포진성은 현재의 삼척시 정라동사무소 인근에 자리했고, 오늘날 동해안 방어를 책임지는 군부대의 치소도 삼척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하슬라군주가 되었기에 군사력까지 강릉으로 옮겼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하슬라군주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군사력을 옮겼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삼척에 주력부대를 두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동해안지역의 신라의 정치세력 및 실직과 하슬라의 관계를 규명해 온 강봉룡교수는 ‘512년 이사부를 하슬라군주로 인사이동하면서 정()의 주력부대는 실직에 잔존시키고 하급자를 별도의 실직군주로 임명하였는데 이것은 신라가 하슬라를 동해안의 행정중심도시로, 실직을 군사중심도시로 특화시키면서 하나의 체제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3)

지방의 최고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는 삼척의 실직정(悉直停)이 태종5(658)에 하서정(何西停)이 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실직정은 150여 년간 삼척에 자리하면서 동해안 해상방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유재춘교수도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을 앞두고 하슬라군주로 임명되었다고 하여 이사부가 통제하던 신라군이 모두 하슬라로 옯겨가서 우산국 정벌에 임했다는 명확한 사료(史料)도 없고,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도 삼척에 7년 간 주둔하며 육성한 수군을 우산국에 대한 군사작전을 목전에 두고 군주의 이동과 함께 완전히 이동하여 간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4)

셋째, 우산국 정벌의 출항지가 안목항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관동대학교박물관 이상수학예연구실장은 고고학적 연구 검토 결과 안목항은 남대천 하구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암석해안으로 구성된 규모가 매우 작은 포구이기 때문에 대규모 병선(兵船)의 출입에는 부적합한 장소라고 했다. 또한 남대천 하류 일대는 주변이 모두 사구지대와 저습지로 형성된 관계로 당시 하천의 정확한 환경을 알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5)

 

삼척 오분항. 이사부장군이 우산국 복속을 위해 전선을 이끌고 출항한 항구 /김태수
삼척 오분항. 이사부장군이 우산국 복속을 위해 전선을 이끌고 출항한 항구 /김태수

 

그러면 이제 삼척에서 출항했다는 학설에 대해 살펴보자. 삼척시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출항지가 삼척의 오분항이라고 추정해 왔었다.

대구대학교 이명식 명예교수는 이사부가 하슬라군주로 부임하면서 곧바로 우산국을 정벌할 수 있었던 것은 7년간 실직군주로 재임하면서 우산국 정벌을 위한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고, 당시의 해류의 흐름과 거리를 종합했을 때 우산국 정벌을 위해 군선이 출항했던 곳은 삼척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강원대 사학과 유재춘교수, 차장섭교수 등도 성곽유적과 자연지형, 군사요충지로서의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볼 때 삼척의 오분항이 우산국 정벌의 출항지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를 보다 실증적으로 검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한국이사부학회와 강원도민일보에서는 각 분야별 전문가에 의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기로 했다. 문헌사학(손승철, 강봉룡), 고고학(이상수), 수군유적(유재춘), 해양지리(장동호), 해양사(윤명철)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여 객관적이며,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출항지를 구명하는 작업이었다.

이사부 사자상 /김태수
이사부 사자상 /김태수

 

그리고 2010년 학술세미나에서 그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했다. 그것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

강봉룡교수는 이사부의 동해안 진출과 우산국 정복이라는 발표를 통해 신라는 강릉의 하슬라주를 행정중심도시로, 삼척의 실직주를 군사중심도시로 특화시키면서 하나의 체제로 관리했다면서, 이렇게 볼 때 우산국 출항지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정()의 주력부대를 실직에 잔존시키고 별도의 실직군주로 임명 관리하게 한 점, 658년 하슬라의 북소경을 파하고 주를 복치하면서 실직정을 하슬라로 옮기는 조치를 통해 하슬라는 행정도시에서 군사도시로 그 성격이 바뀐 점 등에서 이사부 출항지의 삼척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7)

이상수실장은 <유적을 통해 본 출항지 검토>에서 강릉의 안목항 출항설을 비판하고 삼척의 오분항으로 결론을 내렸다. 강릉의 안목항은 남대천 하구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암석해안으로 구성된 규모가 매우 작은 포구이기 때문에 대규모 병선(兵船)의 출입에는 부적합한데 비해 삼척 오십천 하구에 위치한 오분항은 대규모 신라의 군선이 정박할 수 있는 넓은 자연항포구와 그에 수반되는 군사시설로서의 산성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출항지라는 주장이다. 8)

유재춘교수는 삼척지역에 소재하는 성곽유적의 현황과 수군 관련 유적, 그리고 이러한 유적 가운데 신라의 군사활동과 관련될 수 있는 유적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 삼척의 오십천 하구와 오분항은 신라의 군사거점과 연계하여 가장 중요한 기항지였다며 이사부 군단의 출항지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러면서 강릉 쪽의 주장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사부가 하슬라군주로 임명되었다고 해서 군사력까지 옮겨갔다는 근거도 없고 지방주둔 신라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군단인 실직정을 그대로 존치해 두었던, 삼척에서 7년간 육성한 수군을 더구나 우산국으로 항해하기 좋은 조건을 가진 삼척지역을 완전히 배제하고 강릉으로 옮겨서 출전했다는 주장은 여러 가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합리적인 해석이 아니라고 말했다. 9)

윤명철교수는 삼척은 김이사부 선단의 발진기지로서의 조건을 비교적 잘 갖추었으며, 동해중부지역에서는 실제 출항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결론짓고, 다만 당시 전쟁의 중요도와 규모 등을 고려하고 동해중부지역의 자연환경 및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삼척을 주력발진기지로 삼으면서 북쪽의 강릉지역 및 남쪽의 울진 등과 유기적인 연합체제를 갖추면서 역할분담을 했을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10)

장동호교수는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 울진군에 속한 항구 및 진, 포구, 어촌에 대해 현장조사와 함께 문헌조사를 병행하고, GIS기법을 이용하여 출항지가 어디인지 분석했다. 종합분석 결과, 울릉도의 육안관측이 가능하고, 경사가 완만한 넓은 배후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울릉도와의 거리가 가까운 곳은 거의 대부분 삼척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대규모 군진이나 행정관청이 위치한 지역적 요인과 피항 및 방어에 유리한 지형적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여건까지 모두 감안할 때 정라오분진 지역이 6세기 울릉도 복속을 위해 이사부장군이 출항했을 가능성이 높은 출항지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11)

 

울릉도 도형. 19세기에 수토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 삼척시립박물관 소장
울릉도 도형. 19세기에 수토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 삼척시립박물관 소장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동해안과 동해, 울릉도에 대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출항지를 규명한 손승철교수는 삼척이 울릉도 출항의 최적지였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으며, 이사부의 삼척출항도 강릉보다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했다. 12) 그리고 손교수는 한국이사부학회장으로서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는 결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볼 때, 삼척이 이사부군단의 출항지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문헌사학, 고고학, 군사학, 해양지리학, 해양사 분야에서 논리적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특히 512년 이사부장군의 우산국 편입 당시, 신라의 동해안 진출에 강릉이 행정중심지였다면, 삼척이 군사중심지였다는 결론은 그동안의 출항지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선언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사부 출항지에 관한 더 이상의 소모논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현재까지의 조사연구 결과 이사부가 우산국으로 향할 때의 출항지는 삼척의 오분항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다. 삼척시에서는 학계의 이러한 연구성과를 토대로 오분항에 우산국복속출항기념비를 세워 전국민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삼척 오분항에 있는 이사부 우산국 복속 기념비 /김태수
삼척 오분항에 있는 이사부 우산국 복속 기념비 /김태수

 


1) 이성주.이규대.박도식.표영관,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 하슬라 군주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 해람기획, 2009. 이 책은 강릉시로부터 이사부 장군의 고증이라는 주제로 발주된 학술용역의 결과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2) 차장섭, 고요한 아침의 땅, 삼척, 역사공간, 2006.17~22. 삼척이 군사요충지라는 것을 지방의 군단인 실직정, 조선시대의 삼척포진 등의 사례로 입증하고 있다.

3) 강봉룡, 이사부의 동해안 진출과 우산국 정복,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4) 유재춘, 삼척지역 일대 성곽 및 수군유적 연구,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5) 이상수, 유적을 통해 본 출항지 검토,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6) 손승철, 이사부 출항지 규명 의의,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7) 강봉룡, 앞의 논문.

8) 이상수, 유적을 통해 본 출항지 검토,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9) 유재춘, 삼척지역 일대 성곽 및 수군유적 연구,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10) 윤명철, 삼척지역의 해항도시적 성격과 김이사부 선단의 출항지 검토,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11) 장동호, 항포구 자연환경 및 GIS 입지분석으로 본 우산국 정복의 출항지,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12) 손승철, 이사부 삼척출항과 지역민의 역할, 이사부 삼척 출항과 동해 비전, 한국이사부학회강원도민일보삼척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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