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씨의 비밀①…흉노의 후예
신라 김씨의 비밀①…흉노의 후예
  • 아틀라스
  • 승인 2019.04.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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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무제에 끌려온 흉노왕 김일제 후손이라는 설…문무왕 비문에서 해독

 

신라 17대 내물 이사금 이후 신라의 권력을 장악한 김씨 세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신라와 가야의 김씨들은 모두 몽골 고원에서 기원해 한반도 남쪽 끝으로 이동한 흉노족의 후예라고 한다. 두 김씨의 기원에 대한 몇가지 가설을 정리해 보자.

 

(가설) 신라와 가야 김씨는 김일제의 후손

신라 김씨 왕족과 금관국 김씨 왕족은 모두 한()나라 무제(武帝)때 벼슬을 한 흉노족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김일제(金日磾)의 후손이다.

김일제 초상화 /바이두 백과
김일제 초상화 /바이두 백과

 

한무제는 흉노족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곽거병 장군 지휘 아래 대군을 북방에 보내 흉노를 공격하고, 흉노 왕족인 김일제 일파를 잡는다. 한나라에 끌려온 김일제는 한무제의 말을 관리하며 신임을 얻다가 한 무제의 암살사건을 막은 공으로 산동성 지역의 제후인 투후(秺侯)로 책봉됐다. 아울러 한무제는 흉노가 금인(金人)을 만들어 천신에게 제사지내는 풍습을 보고, 김일제에게 ()이라는 성씨를 내렸다.

산동성 제후가 된 김일제는 흉노 3만명을 산동성으로 이주시켰고, 그의 후예들이나중에 한나라 조정의 실권을 잡는다. 김일제의 증손인 김당은 서기 8년 이모부인 왕망(王莽)을 도와 한나라(전한)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한() 왕조의 유()씨 세력들이 전국에서 힘을 결집해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유씨 왕조(후한)를 세우자, 김일제 후손들이 대거 한반도로 내려와 신라와 가야의 왕족이 됐다. 따라서 신라의 김알지, 미추왕, 내물왕, 금관국의 김수로왕이 모두 흉노 휴저왕의 태자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의 증거로 두 비문이 제시되고 있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의 비문에는 侯 祭天之胤傳七葉(후 제천지윤 전칠엽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서 글자가 해독하기 어려운 ’()로 읽어 투후(秺侯) 김일제의 7대손이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가 됐다는 해석이다.

또 최근 시안(西安)에서 발견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서 먼 조상 이름은 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 담고 계시다가 한에 투항해 무제(武帝) 아래에서 벼슬을 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무제가 그를 발탁해 투정후(秺亭侯:투후)에 봉하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함이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김씨부인은 당나라 조정에서 벼슬을 한 신라의 김충의(金忠義)의 손녀이자, 김공량(金公亮)의 딸이다. 이 비문은 문무왕비의 내용을 확실하게 뒷받침했다.

 

중국 산시(陝西)성 흥평(興平)시 소재 김일제 무덤과 비 /중국 搜狗백과
중국 산시(陝西)성 흥평(興平)시 소재 김일제 무덤과 비 /중국 搜狗백과
김일제 /위키피디아
김일제 /위키피디아

 

(가설) 신라 김씨는 선비족 모용씨

1세기 말엽에 중국 내몽골에 있던 선비족(鮮卑族)이 북흉노를 쳐 패퇴시키고, 흉노인 10만 가구를 선비족으로 귀속시켰다. 선비족 가운데 모용(慕容)씨가 이끌던 모용선비가 국가의 모습을 갖추면서 516국 시대인 4세기초 중국 동북지역을 점령해 국호를 연()이라 칭했고, 고구려 고국원왕 12(342)엔 연왕 모용황(慕容皝)55천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모용황 군대는 남과 북 두 갈래로 고구려를 공격했고, 남로(南路)로 온 4만의 부대는 크게 승리해 고구려 수도 환도성에 불을 지르고 왕비와 왕대비를 볼모로 잡아가고 왕의 부친인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까지 꺼내갔다. 하지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북로(北路)로 온 모용선비의 15천의 군대는 고구려군에 모두 전사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 사서를 참고한 것으로, 15천의 군대가 모두 죽었다는 표현은 한사람도 본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것. 북로의 선비군은 상당한 병력을 잃었지만, 패잔병들이 패전의 책임을 지고 극형에 쳐해지기 싫어서 남하해 신라 땅에 이르렀다. 이들은 석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김씨 왕조를 열었으니, 그가 내물왕(재위 356~402)이다.

이 가설의 근거는 삼국사기에 내물왕의 후손인 법흥왕의 성씨가 ()’씨라는 놀라운 사실을 적고 있다는 점. 삼국사기』 「신라본기법흥왕조엔, “법흥왕의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책부원귀(冊府元龜)라는 서책에는 성은 모()이고 이름은 진()이라 했다고 나와 있다. 당연히 김씨이어야 하는데, 야사도 아닌 정사에서 모씨라 했으니, 이상한 일이다. 중국 사서에도 법흥왕이 모씨이며, 이름이 진() 또는 태()라고 했다. 발음은 다르지만, 글자 획이 비슷해 생긴 현상인 것 같다.

1988년에 발견된 울진봉평신라비에도 법흥왕을 모즉지(牟卽智)’라고 적었다. 당대의 비석에서도 왕의 이름이 모씨임을 밝혀, 내물왕 이후 김씨들이 선비족 중에서 흉노 계열인 모용씨의 후예라는 것.

 

(가설) 이외에도 가락국 시조 김수로의 이름은 김시(金諟)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도 김수로의 조상은 흉노족 왕자인 김일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첫 번째 가설은 상당한 신빙성을 얻고 있다. 문무왕비와 김씨부인의 비에서 흉노인 신라김씨가 김일제의 후손임을 입증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김일제의 후손이 김()씨 성을 유지하며 현지에서 살고 있다는 답사기행문도 있다. 하지만 중국 동북부에 있던 흉노 김씨가 어떻게 한반도로 들어왔는지, 그 경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두 번째 가설은 아주 흥미롭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글귀와 울진봉평비의 석문(石文)만으로 신라 김씨 왕조가 선비족 모용씨라는 논리를 지탱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논리 전개의 일부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제 후손설이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다른 가설들도 신라와 가야를 지배한 김씨 왕조가 모두 흉노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느 설이든 신라와 가야 김씨의 근원은 흉노족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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