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 기획 방안②…역사와 인물 소재 발굴
문화콘텐츠 기획 방안②…역사와 인물 소재 발굴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3.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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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홍수 시대에 소재의 자기경쟁력 획득해야…성공사례 검토

 

역사와 인물을 소재로 문화콘텐츠 기획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지만 성공한 사례에 대한 연구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결과가 대변하듯 문화콘텐츠의 홍수 시대에 역사와 인물 소재의 콘텐츠가 자기경쟁력을 획득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역사문화콘텐츠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사례에 대한 연구 및 기획에 대한 연구 자료를 검토하고자 한다.

 

최근 다양한 지역에서 다크투어리즘(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도 모두가 함구하고 있던 4.3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며 다양한 공연과 전시 및 투어프로그램이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다크투어리즘의 교과서라고 불리우는 프랑스 방데지역에 건립된 퓌뒤푸는 지역공동체에 전승되어 오는 기억문화유산을 모태로 제작된 공연콘텐츠를 핵심 테마로 내세운 역사테마파크이다. 1978년에 설립된 퓌뒤푸는 역사 자원을 활용한 창의적인 테마파크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관광자원이 없는 평범한 작은 농촌마을에서 연중 방문객 174만명, 매출액 6,380만 유로(2013)라는 놀라운 경영 성과를 가능케 한 요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퓌뒤푸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에는 문화산업적 성과 이면에 차별성을 지향하는 지역문화의 속성을 드러내주는 지역 문화콘텐츠 상품으로서의 이면이 발견된다. 방데 지역은 1793년 농민군과 혁명군이 충돌한 방데전쟁이 발발한 곳이다. 혁명군에 의해 자행된 집단학살은 이후 트라우마로 남았고, 학살에 대한 당위성 여부 논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20세기 중반 방데 사람들은 아픈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영감으로 공연콘텐츠 시네세니를 기획한다.

시네세니의 인기에 힘을 얻어 1989년 역사테마파크가 설립되었고 방데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네세니는 프랑스 혁명에 대항한 방데 지역의 반혁명성과 집단학살을 소재로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로 오늘날 방데의 지역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테마파크 파뒤푸의 성공요인으로는 두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공동체의 노력과 의지가 일종의 문화유산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둘째로 테마파크의 설립이 우선이 아니라 공연예술콘텐츠의 집중 개발을 진행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테마파크라는 하드웨어를 만들어 갔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1)

 

퓌디푸 테마파크 /위키피디아
퓌디푸 테마파크 /위키피디아

 

다음은 한국의 신화가 웹툰으로 다시 영화콘텐츠로 성장한 모델인 신과 함께에 대해 분석한 논문의 일부이다.

 

한국의 건국신화인 아닌 무속신화를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웹 툰 <신과 함께>가 있으며, <신과 함께>의 구성은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순으로 되어 있다. <신과 함께>의 시놉시스로 저승편은 죽은 인간이 저승세계에 오게 되면 왕에게 재판받는 과정과 지옥의 소개, 저승사자가 이승세계에서 활약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승편은 가택신이 자신들의 집주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승사자와 철거업체에게 저항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신화편은 저승이 탄생하는 과정과 저승편이승편에서 활약하는 무속신의 탄생을 보여준다. 본래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난 무속신은 자신의 업적을 대별왕 과 염라대왕에게 인정받아 무속신으로 승격된다.

<신과 함께> “신화편에서 등장하는 한국의 신화는 이승세계와 저승세계가 나누어지는 대별소별전’, 저승사자 일직차사와 월직차사의 본풀이를 다룬 차사전’, 서천꽃밭의 꽃감관의 본풀이를 다룬 할락궁이전’, 성주신 및 조왕신 등 가택신의 본풀이를 다룬성주전녹두생이전’, 저승사자의 우두머리인 강림도령의 본풀이를 다룬 강림전으로 이어진다.

<신과 함께>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는 무속신은 강림도령, 일직차사, 월직차사로 구성된 세 명의 저승사자이며, 저승사자의 역할은 수명이 다 된 인간을 찾아내어 그 인간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조선시대 선비가 입던 검정색 두루마기와 갓을 착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과 함께>에서는 저승사자가 한국의 전통의상을 착용하지 않고 검정색 양복정장을 착용한다. 이승세계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처럼 저승세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같이 변화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한국의 무속신화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계속 변천되므로, <신과 함께>에서도 한국의 현대적 요소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작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시대가 변해도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근본은 변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승편이승편은 작가가 무속신화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든 것이나, “신화편은 본래 한국에서 구비되던 무속신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신화편에서 처음 등장하는 대별소 별전이야기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이승은 언제나 거짓말과 속임수만 넘치는 부조리한 세계이나, 저승은 남을 속이지도 않고 양심적으로 살 수 있는 공정한 세계로 나온다.

무속신화에서 이승과 저승이 서로 다르게 표현한 이유는 이승세계인 현실에서 살아가는 민중이 약자이기 때문에 권력자의 압제 아래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하지만 저승에 가게 되면 민중은 구원을 받아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게 되고, 민중을 억압하던 권력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큰 벌을 받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저승편에서 주인공 중에서 고인(故人)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평범한 회사원과 전역을 앞둔 육군병장이다. 회사원으로 등장 하는 남성은 매일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퇴근 후 영업접대에서 술을 너무 마시는 바람에 과로사로 죽는다. 육군병장은 보초근무 중 총기사고로 부상을 당하나, 자신의 상관이 책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상당한 육군병장을 몰래 매장하여 죽게 만든다. 두 사람은 자신이 의도하는 것과 상관없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두 사람의 죽음에서 전자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보여주는 노동착취와 인간소외를 고발하고, 후자는 권력자의 부당한 횡포와 군의문사에서 희생된 피해자들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이승편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주택재개발사업 등과 같은 부동산시장의 과잉투기로 인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하는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떠날 수가 없어 철거업체에 저항하지만, 결국 노환으로 죽는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서민들이 부동산투기에 의해 집을 잃는 고통과 핵가족화로 인해 고독사하는 노인의 비극은 우리 사회의 슬픈 모습을 보여준다. <신과 함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의 고통과 슬픔을 작품에 반영하여 웹툰 이용자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네이버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네이버 영화

 

다음은 위대한 작가들의 소설의 탄생 배경은 아주 작은 영감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일부를 인용했다.

 

그날도 톨스토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저택 안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마침내 까무룩 잠결로 빠져드는 순간, 하나의 환영이 불현듯 그의 뇌리를 스쳤다.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 도저히 그 환영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환영은 점점 자라났다. 톨스토이가 홀린 듯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의 팔꿈치 주위로 번져가던 환영은 이윽고 한 인물의 형체를 이루었다. () 1873년 봄 드디어 그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황혼녘에 톨스토이를 찾아온 환상 속의 그대가 어느 불운한 간부의 이야기, [안나 카레니나]로 다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외딴섬을 그린 그림에, 붓으로 수채물감을 찍어 마무리 덧칠을 했다. () 세심한 붓질과 정교한 색채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지도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는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숲 속을 누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1평방미터도 안 되는 납작한 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저마다 무기를 들고 싸움을 벌이며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곧이어 스티븐슨의 머릿속엔 굉장한 모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는 즉시 붓을 내던지고 새 종이를 꺼내어 머릿속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보물섬] 1장의 초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1930년대 초 어느 여름 날, J. R. R. 톨킨은 시험지를 채점하는 중이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 지낸 몇 년 동안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그 일이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수북이 쌓인 시험지를 심드렁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 한 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 그는 즉시 펜을 들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무작정 빈 종이에 적었다. ‘땅속 어느 굴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 호빗이 뭔지, 그게 왜 땅속에서 사는지도 몰랐다. 그저 단 한 줄의 문장일 뿐. 하지만 톨킨은 그 문장 하나를 단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감방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좁은 공간은 험상궂은 죄수들로 바글바글했다. 그 안에서, 그는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쇠창살 너머 스페인 시골 어딘가에서 괴짜 영웅과 그의 충성스러운 시종이 상식 밖의 모험을 펼친다.’ 그렇게 13개월을 보낸 후 감옥에서 풀려난 세르반테스는 곧장 돈키호테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3)

 

다음은 근대국가의 국가권력에 의해 역사문화콘텐츠가 정치권력의 합리화와 정당성 확보에 활용되었는지, 국민들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복종을 유도하고 지배구조의 안정과 영속성을 보장 받으려 하였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통하여 문화정책이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치권력이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변화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당시에 어떠한 현안을 가장 중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를 실천하려 했는냐에 따라서, 문화정책도 그에 따라가거나, 혹은 그와 연관되어진다. 물론, 문화가 단순히 하부구조에 대응되는 상부구조라는 도식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없듯이, 문화정책 역시 단순히 여타 국가정책에 따른 종속변수로만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정권에서는 문화정책이 여타 정책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고자, 그리고 정권의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특정한 문화정책이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국가발전 전략에 조응하는 문화전략으로서 추진되기도 했다. 이 속에는 당시의 여러 국가정책들이 표상하는 바가 담겨져 있으며, 따라서 국가의 지배세력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지배를 합리화하려하였는지에 대한 실마리도 담겨져 있다. 그러한 국민의 동원 전략의 선방에서 국가홍보와 문화정책을 수립집행하였던 국가기관이 바로 문화공보부였다. 박정희 정권는 초반기부터 반공담론과 결합된 위기담론이 확산시켰고, 민족주의가 여기에 결합하면서 국가수호와 관련된 민족전통이 부각되었다.

국가수호와 관련된 문화유물이 적극적으로 문화공보부에 의해서 보수되고 홍보되었으며, 이 유적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이 부각되면서 이들을 영웅화하는 기념사업이 활성화되었다. 과거 국가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중흥을 이룩한(혹은 그렇게 주장하는), 민족전통에 대한 강한 집착은 1960년대의 문공부와 1970년대 문화공보부가 추진한 문화정책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그 결과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호국영웅으로서 이순신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부각되었으며, 민족문화를 세워 우리 역사의 황금기를 구가했다는 세종대왕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 호국영웅과 문화영웅을 키워내어 국가의 인재로 만들었던 어머니상으로서 신사임당이 여성의 모범으로서 기념되었다. 특히, 정권 확립기 후반과 유신체제로 접어들면서 역사적 영웅들에 대한 유적복원과 기념은 점차 더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 대한 기념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복원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들에 대한 교육과 계몽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충무공 정신의 생활화>에서는 모호한 성질의 충무공 정신을 구체적으로 일곱가지를 꼽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충무공 정신은멸사봉공(滅私奉公)의 애국구국 정신, 조국애, 민족애, 자주(自主)자립(自立)자위(自衛)의 정신, 창의와 개척 정신,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 정의에 사는 정신이 된다(문화공보부, 1972: 48-8269). 그리고 이러한 충무공 정신은 곧바로 현실에서 생활화되어야 할 우리의 자세와 연결된다. 자료는 충무공 정신에 대한 논의에 이어 충무공 정신 생활화의 의의와 우리의 자세(문화공보부, 1972: 83-94)”를 논한 장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유비무환의 총력안보태세의 확립 자주자립자위태세의 확립 민족의식과 조국애의 구현이 제시되어 있다. 즉 국가가 제시한 충무공의 정신은 마찬가지로 국가 요구하는 국민의 자세에서 그대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신체제는 개인 이전에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투신할 수 있는 인간상을 구현하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신 체제가 요구하는 개인의 삶이란 이제 더 이상 개인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이에 따라 멸사봉공의 이순신을 개개인이 철저히 따라 배우라는 식의 충무공정신 생활화가 유신 정권에 의해 강조되었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부터 철저하게 충무공 정신을 매개로 유신체제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에 종속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유신체제는 자신들이 바라는 국민의 형상을 충무공의 형상을 빌어서 표현하였으며 충무공의 형상을 통하여 국민들을 설득하고 변모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국가민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외적에게 틈을 보이지 않고 하나로 뭉쳐 있을(문화공보부, 1972: 27-28)” 것을 강조하였다.

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이 세종대왕의 숭배와 기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근대화의 주체적 민족문화 건설이라는 맥락에서 추진된 사업이었다. 이를 통하여 박정희 체제는 유신체제 폭압성을 숨기고 체제 저항에 대응하려 했는데, 당시 민주주의의 요구를 무분별한 외래문화로 치부하고 유신을 세종대왕의 민족문화 창조와 동일선 상에서 인식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따라서 유신체제에 의해서 강조된 세종대왕은 주체적 민족문화의 창달자이며 특히 북방개척과 대마도 정벌 등 국방에도 매우 주도면밀했던 군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시대의 황금기를 구가한 국왕이어서, 유신체제의 미래상을 국민들에게 투사하기에도 적합하였다.

현모양처인 신사임당 제시하면서 유신체계는 전통적 미풍양속인 충효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충효의 관념을 통해서 국가전체와 가족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개인과 집단 전체를 국가 아래 포획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유신체제가 기획했던 유기체적인 국가관 속에서 개인은 가족을 통하여 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여기에서 여성은 국가의 정책이 직접 작용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였고, 그런만큼 신사임당의 전통적인 부덕은 강조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신사임당에 대한 기념사업을 통하여, 유신체제가 주력했던 것은 각종 가족계획사업과 새마을 운동 등의 국가사업에서 국민동원의 매개체로서 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에서 연유하였다. 여성은 단순히 아들을 낳아 충량한 국민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를 넘어서 가정 자체를 작은 국가로 만들고 가정 내에서 철저하게 국가가 제시하는 이념과 정책을 관철시켜야할 매개체였다. 또한 더불어 국가와 사회가 하나의 가족에 비유됨에 따라서, 막 근대화되기 시작한 산업현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작업장의 가부장제적인 통제에도 유순하게 순응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4)

 

다음은 동일한 인물 이순신이 각기 다른 소설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역사 인물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형상화 될 수 있는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연구 결과 위의 네 본문에서 이순신은 모두 다르게 나타나고, 그러한 이순신의 다름은 정치적 조건과 작가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정치적 조건에 대해 살펴보면, 1900년대 초반의 일제 강점이라는 정치적 조건은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으로 형상화하는 데 작용했다. 신채호와 이광수는 항일(抗日)과 친일(親日)이라는 각기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인 작가이지만, 신채호의이순신전과 이광수의 이순신은 일본에 맞서 싸운 민족의 영웅으로 이순신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편, 1987년을 기점으로 진행된 민주화라는 정치적 조건은 주체의 고유한 내면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2000년대에 창작된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주체적 면모를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음으로 작가적 조건에 대해 살펴보면, 자의식이 강했던 신채호는 일본에 대항해 싸우지 않는 것은 자신의 노예 됨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과 그의 이순신전에서 이순신은 일본에 맞서 싸운 투쟁적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편 타인의 인정을 갈구했던 이광수는 소설 이순신에서 이순신을 타자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인격자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또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그의 이순신을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을 배제한 채 전쟁이라는 직무를 기계처럼 수행해나가는 이성적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관습과 질서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김탁환은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을 반항적 인간으로 그렸다.

본고가 본론에서 서술한 정치적 조건과 작가적 조건의 세부는 문학의 본문에 형상화된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문학의 본문에 실존인물이 형상화되는 데에는 정치적 조건과 작가적 조건 외에도 다른 여러 조건들이 관여한다. 그 조건들 각각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각 조건의 세부를 고찰하는 일은 추후의 과제로 미루어 두려 한다. 5)

 


1) 송희영(2014), 지역의 기억문화유산을 활용한 공연콘텐츠 사례연구(프랑스 방데의 역사테마파크 퓌뒤푸를 중심으로)

2) 윤영석(2015), 한국 서브컬쳐콘텐츠에서 한국신화에 대한 연구

3) Johnson Celia Blue 신선해역(2012), 그렇게 한편의 소설이 되었다(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 이야기)

4) 권오헌(2009), 역사적 인물의 영웅화와 기념의 문화정치(1960~70년대를 중심으로)

5) 허진(2011), 이순신의 문학적 형상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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