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 기획 방안③…영웅 서사스토리의 조건
문화콘텐츠 기획 방안③…영웅 서사스토리의 조건
  • 문대홍 PD
  • 승인 2020.03.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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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위주의 스토리 넘어 대중과 공유가치 제공해야…공감의 대상은 우리 안에 있다

 

문화콘텐츠의 영역에서 어쩌면 가장 중앙에 위치한 게임에 등장하는 영웅의 서사 스토리를 정리한 글이다.

 

조셉 켐벨에 따르면 영웅의 일정은 첫째, 일상 세계(The Ordinary World)에서부터 시작된다. 반지의 제왕의 도입부에서 프로도는 호빗 마을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며, 세계를 구원하는 매트릭스의 네오도 단조로운 일상을 견디기 위해 밤이면 해커가 되는 일개 회사원일 뿐이다. 이 단계에서 플레이어는 영웅과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고 영웅과 동류의식(relatable)을 갖게 된다.

두 번째, 모험에의 소명(The Call to Adventure) 단계에 이르면 일상세계의 단조로움에 금이 가고 변화의 징조가 싹트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예비 영웅은 사자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받는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겐달프와 삼촌으로부터 반지의 존재에 대해서 듣게 되고,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모피어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소명을 전달하는 사자의 수단이 마차, 전화라는 점만 다를 뿐 충격적인 서신을 전달한다는 의미 자체는 동일하다.

세 번째, 이제 예비 영웅은 이 소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Refusal of the Call). 그러나 일상 세계에 몸담아 있던 예비 영웅은 아무래도 자신의 힘으로는 벅찬 장애물을 건널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선뜻 세계를 구하라는 소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매트릭스의 네오는 모두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인다. 소명이 거부되면서 극적 긴장감은 오히려 고조되기 마련이다.

네 번째, 이때 예비 영웅에게 용기를 주고 심신을 단련시킬 조력자가 등장하게 된다(Meeting with the Mentor). 조력자는 영웅에게 모험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때때로 영웅이 지쳐서 모험을 중단하려 할 때마다 조력자는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영웅으로 하여금 모험을 계속해 나가도록 격려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의 멘토인 겐달프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 돌아와서 위기에 처한 프로도를 구해주며,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도 목숨을 걸고 네오를 보좌한다.

다섯 번째, 이제 영웅은 특별한 세계에서 첫 발을 내딛고 첫 관문을 통과한다(Crossing the Threshold). 여기서 영웅은 관문의 수호자를 만나게 된다.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영웅은 물리적인 문, 다리, 사막, 절벽 등을 통과해야만 한다.

여섯 번째, 영웅은 거듭되는 시련을 이겨내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인 시험(Tests), 협력자(Allies), 적대자(Enemies)를 만나게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수평적 협력자들과 함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만 다가올 다양한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협력자 외에도 다양한 협력자가 필요하다. 여정 중에 영웅은 때때로 신격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Meeting With the Goddess).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여정 중 경외스러운 여신을 만나게 되며, 매트릭스의 네오도 예언자 오라클을 만나게 된다. 그녀들은 영웅에게 선물과 통찰력을 주어 도와주거나, 자신의 직관, 감정, 정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정 중 영웅은 아버지의 원형으로 재현된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어머니가 전형적으로 보상을 지원하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반면, 아버지는 전형적으로 영웅을 시험하고 재판한 후 가치 있는 보상을 수여한다.

일곱 번째, 영웅은 드디어 여정의 핵심을 이루는 동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접근하게 된다(Approaching the Cave). 여기서 영웅은 첫 번째 미션을 치르게 된다. 미션은 결코 영웅 자신만의 능력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고, 사방에서 적들이 막고 있기 때문에 영웅은 보통 협력자의 협조를 통해서 난관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여덟 번째, 영웅은 드디어 동굴의 가장 중앙에서 최강의 적을 마주하게 된다(The Ordeal).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영웅은 시련을 겪던 중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다시 태어나는 이른바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거쳐야만 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스미스 요원과의 대결에서 죽게 되지만, 자신이 구세주인 '더 원(the One)'이라는 사실을 트리니티의 사랑을 통해서 확인한 후 진정한 영웅으로 부활하게 된다.

아홉 번째, 시련을 이겨낸 영웅은 마침내 검이나 보물, 영약을 보상으로 받고(The Reward), 주변 인물로부터 축하를 받고 축제를 벌이게 된다. 때로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진정한 사랑을 획득하기도 한다.

열 번째, 이제 미션을 모두 수행한 영웅은 그 보상을 거머쥔 채 다시 일상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모험의 세계로 떠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일단 호빗 마을로 귀환하기로 결정한다(The Road Back).

열한 번째, 영웅은 집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영웅의 통과의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웅의 여정이 막을 내리려는 순간, 영웅은 최후의 시련을 맞이하게 되고, 이것을 넘겨야만 진정한 영웅으로 확고하게 거듭날 수 있다. 영웅은 목숨을 담보로 한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마지막 순간, 영웅은 예기치 않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웅의 죽음으로 끝나는 영웅담이란 존재할 수 없다. 영웅은 또다시 부활(Resurrection)하기 마련이다.

열두번째, 마지막 단계는 불로불사의 영약을 지니고 귀환하는 것이다(Returning with the Elixir). 여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지만 영웅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귀환 후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그간의 일들을 기술해 자료로 동지에게 넘겨준 후 자신은 또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영웅으로서의 서사가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1)

 

세상에 밝고 화려한 구경거리는 어디든 있다. 그것이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그 안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모두와 공유 할 수 있는 가치가 된다. 6~70년대 소수에 목적에 의해 강제로 소환 당한 역사문화콘텐츠 복원 프로세스의 전철을 우리가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복기가 필요하다. 역사문화콘텐츠를 소비할 대중은 2019년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포스터/네이버 영화
영화 ‘반지의 제왕’ 포스터/네이버 영화

 

대다수의 역사인물콘텐츠는 일방적인 관점의 역사적 해석이나 역사적 의의에 입각해서 교훈을 강조한 나머지 교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방식의 기념사업에서 일방향적 역사성 강조로 인해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의 요구와 다양한 문화적 환경의 변화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극단적인 경우 우상화의 우를 범하기도 한다. 기념이라는 말은 어원이 함께 기억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동체와 사회의 공통적 이해와 신뢰 그리고 정서에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 인물의 문화콘텐츠는 기념 주체의 일방적 의미 전달을 넘어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관점에서 제시될 필요가 있다.

미셸푸코의 다음의 말처럼현대사회의 대중 기억은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다. 이 과정 속에서 대중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기억이라 할 만한 것을 알게 되고, 동시에 그러한 자신들의 소비 행위 속에서 과거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 찾기를 수행할 수 있다.’ 대중들은 재현된 문화적 현상을 능동적으로 취해 자신들의 인식을 형성해 간다. 대중은 기존의 일방향적 역사 관점에서 벗어나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거나 대중끼리의 공유를 통해, 대중 스스로 과거에 대한 자신들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SNS, 1인 미디어의 시대에 대중의 변화 속도는 방향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관습적인 매체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약해지고 대중 스스로 매체의 중심에 서고 있다.

역사인물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는 일방적인 상품 혹은 재화로서 제공이 아니라, 대중의 관점에서 제시 되어야 한다. 역사인물에 대한 스토리로서가 아니라 역사 인물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역사 인물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전략의 요체인 것이다. 주2) 역사인물 문화콘텐츠의 핵심 요체가 스토리텔링이라면,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체는 공감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공감 능력이 없는 스토리텔링은 또 다른 이름의 강요에 불과 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사부 문화콘텐츠 흥망의 열쇠는,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의 마음에 닿아 스르륵 녹아내리는 공감 여부에 달려 있다. 공감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책상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감의 대상은 대중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이창호 명인의 말처럼 손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 질 만큼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지난한 여정의 과정일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네이버 영화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네이버 영화

 


1) 한혜원(2005), 디지털게임스토리텔링(영웅이 되기 위한 열두 단계)

2) 지역역사인물의 문화콘텐츠 기회에 관한 연구(고헌 박상진 의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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