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독도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독도 기록
  • 아틀라스
  • 승인 2019.04.1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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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와 위치는 바뀌었지만, 조선조가 고유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

 

독도는 우리 조상들이 만든 지리서에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종 25(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45 강원도편 지도에 동해를 동저대해(東抵大海: 동쪽의 큰 바다)라고 표기하고, 우산도(于山島)와 울릉도(鬱陵島)를 그려 넣었다. 여기서 우산도는 독도를 의미하는데, 지도를 잘못 그렸다. 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위치한 것이다. 지도를 잘못 그리긴 했지만, 조선은 독도를 우리땅으로 인식한 것은 분명했다.

신동국여지승람 울진현 산천조(山川條)에는 울릉도와 우산도에 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우산도와 울릉도 혹은 무릉 혹은 우릉이라 하는 두 섬은 울진현 동쪽 바다의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는 높이 솟아 있어 하늘을 닿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날씨가 맑으면 봉우리 꼭대기의 나무와 산 아래의 모래들을 역력히 볼수 있다. 바람이 좋으면 두 섬은 이틀이면 가히 닿을수 있다.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려진 독도(우산국). 울릉도와 위치가 바뀌어 있다. /울릉군 독도박물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려진 독도(우산국). 울릉도와 위치가 바뀌어 있다. /울릉군 독도박물관

 

조선의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조선 성종 12(1481)50권을 완성하였고, 성종 16년과 연산군 5년에 수정작업을 했다. 이후 중종 25(1530)에는 이행, 윤은보 등이 내용을 보완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만들었다.

먼저 만든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초기에 국가 지배체제 확립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지리적 사항 파악과 준사, 행정, 경제 등에 비중을 두어 편찬되었다. 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기존의 지리서 내용에 빠진 인물과 고적등의 사항을 추가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독도가 위치상 오류를 보인 것은 편찬자들이 실증적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리지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 사실에서 조선인들이 두 섬을 하나의 영역에 있는 섬으로 인식하고, 영토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45 강원도편 /울릉군 독도박물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45 강원도편 /울릉군 독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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