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블랙먼데이에서 돈을 번 사람들…지금은?
1987 블랙먼데이에서 돈을 번 사람들…지금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3.14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블랙먼데이 때는 경제불황이 없었지만, 지금은 경기위축이 눈에 보여

 

세계금융시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 심각한 재치기를 하고 있다. 뉴욕증시의 주가 지수가 지난주 1210% 급락했다가 다음날 139%나 급등했다. 글로벌 증권가의 많은 참여자들이 33년전 블랙먼데이를 연상했다.

그러면 19871019일 전세계를 경악케 했던 블랙먼데이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짚어보자. 그날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508 포인트(종가 1,738.74), 22.6%나 폭락했다. 사상 최대의 낙폭이었다. 아시아 주가는 그 다음날인 20일 폭락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개장하자마자 매물이 쏟아졌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30여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날 뉴욕 증시가 폭락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증권시장은 폭락한다. 대공황의 원인이 된 1929,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위기에 빠진 2008년에도 월요일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모두 월요일에 발생한다고 해서 '블랙먼데이'{Black Monday)라고 한다.

주기적인 증권시장의 폭락은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공포에 그 원인이 있다. 투자자들은 잘못된 신호로 일거에 도망치기도 한다.

양떼들이 들판에서 풀을 배불리 뜯고 있다가 비가 후득후득 듣자 목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계곡을 지나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목동은 양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으나, 겁에 질린 양떼들은 좁은 계곡을 서로 밀치며 도망쳤다. 양떼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동료의 몸을 밟고 맹렬하게 도망쳤다.

이 간단한 비유가 금융시장의 패닉 분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1997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풍요를 구가하던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도 목동의 총에 비유된다. 양떼들이 갑자기 좁은 탈출구를 향해 돌진하자,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밟혀져 죽었고, 돈을 잃은 투자자는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33년이 지난 지금 블랙먼데이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양떼들에게 총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자신만만해 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가로지른후 500여년만에 처음으로 대서양 횡단을 금지시켰다. 이탈리아에선 돌림병으로 1천여명이 죽고, 전국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이 뭔가 큰 놈이 몰려올 것을 예감이나 한 듯, 긴급 이사회(FOMC)를 열어 금리를 0.5%P나 전격 인하했다. 고요한 평원에 따발총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항공산업, 여행산업은 물론이고 제조업 전반에 경제적 충격이 몰려올 것이라는 비관론이 난무했다. 증권시장이란 풀밭에 기름진 풀을 뜯어먹던 양떼들은 숨을 곳을 찾아 한꺼번에 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증권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주장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기업 수익이 좋은데 허튼소리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동안 주식시장에 돈이 꾸역꾸역 들어가면서 시장에 거품이 형성되고 있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Fed10년 가까이 금융완화정책을 취함에 따라 엄청난 유동성이 증권시장으로 몰려왔다. Fed가 다시 긴축기조로 전환했지만 금융시장의 충격을 줄까 두려워 금리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주식시장의 양떼들은 겂없이 풀을 뜯어먹었다.

3년전에 미국 금융전문 사이트인 마켓워치(MarketWatch)의 컬럼니스트 하워드 골드(Howard Gold)1987년 이후 금융시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이 없기 때문에 블랙먼데이가 재현할 경우, 훨씬 더 큰 규모로 진행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 때 그는 블랙먼데이 재연시 규모가 커질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 거래소가 너무 세분화되어 퉁제가 어렵다. 1987년엔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시카고 상품거래소(CME)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스닥을 비롯해 10곳 이상의 거래소에서 증권이 거래된다. NYSE의 거래비중이 1987년엔 90%였지만, 지금은 30%로 그 비중이 축소되었다.

둘째, 온라인 거래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1987년 폭락에서도 프로그램 투자가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땐 지금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비중이었다. J.P.모건에 따르면 주식거래에서 수학의 개념으로 자동화한 거래가 전채의 60%를 차지해 10년전에 비해 두배로 커졌다. 그 규모가 10조 달러를 넘어선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1987년 블랙먼데이로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당시 블랙먼데이의 패닉이 1929년 대공황때처럼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미국 경제의 불황은 3년후 1990년에 잠깐 나타났으나, 블랙먼데이의 충격으로 보긴 힘들다.

 

하지만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실물경제의 불황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유수의 경제기관들이 제시하는 성장률 하향 전망을 굳이 꺼내 들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여러나라 정부들이 기본권의 첫 번째인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다. 경제의 기초는 사람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직장에 가고 시장을 보고 여행을 하며 친구들과 떠들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경제활동이다. 그런데 격리를 하라고 한다. 격리는 경제활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 수치가 어떻게 되든, 실물경제는 위축되고, 대단한 경제 위축이 올 것은 분명하다.

 

증시상승을 의미하는 황소와, 하락을 의미하는 곰 형상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위키피디아
증시상승을 의미하는 황소와, 하락을 의미하는 곰 형상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위키피디아

 

재미 있는 사실은 30년여전 블랙먼데이 때 뉴욕 월가의 유명한 두 펀드매니저들가 다른 방향의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판단을 보면서 현재 요동치는 금융시장을 헤쳐 나갈 지혜를 배워보자. 물론 지금의 경제상황은 그때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시 투자은행 살로먼브러더스에는 존 굿프렌드(John Gutfreund)와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라는 펀드매니저가 있었다. 굿프렌드는 그 회사의 회장을, 메리웨더는 그저 평범한 펀드매니저였다. 굿프렌드와 메리웨더는 다른 데스크를 사용했다. 월가 투자회사에서는 회장이라도 개별 펀드매니저의 투자에 간여하지 못한다. 펀드매니저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투자하고 회사에 이익을 내준다. 경영진은 다만 수익이 나지 않은 펀드매니저를 해고시킬 뿐이다.

블랙먼데이 상황이 터지자 굿프렌드와 메리웨더는 상황판단을 달리했다. 같은 회사 내에서 두 팀은 다른 방향으로 투자했다.

굿프렌드의 팀은 주가가 폭락하자 드디어 1929년의 대공황의 전조라고 판단했다. 대공황 때 미국 증시는 4년동안 내리 하락했고, 대신에 정부가 발행한 채권 가격은 상승했다.

 

주식은 투기성이 강하지만, 호황시에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 이에 비해 채권은 호황시의 주가 상승률만큼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하지만, 고정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위기 시에 주식과 채권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주가가 폭락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채권쪽으로 몰리고, 상대적으로 채권 유통가격이 올라간다.

굿프렌드는 금융 공황이 지속될 것으로 믿고 주식을 팔고 채권을 샀다. 그는 이성적이거나 과학적이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여건을 볼 때 당시 공황 가능성은 없었다. 금융시장의 이상 과열에 지나지 않았던 현상을 그들은 즉흥적으로 판단했다. 굿프렌드는 20억 달러를 투자, 신규발행된 30년 만기 TB(재무부채권)를 샀다.

블랙먼데이의 여진이 3주만에 진정되고 주식시장이 회복됐다. 오르기를 기대하고 사두었던 채권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굿프렌드는 완패했다. 그들은 7,5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경제전문 잡지인 비즈니스 위크지는 그들을 자만심의 화신이라고 명명했다.

 

이에 비해 메리웨더는 하이에나처럼 영악했다. 그는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차분하게 먹이감이 움직일 방향을 계산했다. 그는 경제학 이론과 금융시장의 현실을 접목하려고 한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메리웨더의 팀은 블랙먼데이가 터지자 하루아침에 12,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잔인하리만큼 냉정했다. 자신의 부하들에게 그는 특별한 주문을 냈다. 신규발행한 30년 만기 TB를 매각하고, 3개월전에 발행된 30년 만기 TB(정확히 말하면 299개월 후에 만기가 돌아오는 TB)를 사라는 것이었다. 만기가 30년이나 되는 장기 채권에 3개월의 짧은 기간이 어떤 가격차를 결정할 것인가. 메리웨더는 여기에 중요한 투자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도 굿프렌드와 같은 액수인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메리웨더는 굿프렌드와 달리 블랙먼데이가 대공황의 전조가 아니며, 금융시장이 금방 정상화될 것으로 판단했다. 증시에서 실패한 투자자들이 신규발행된 30년 만기 TB로 몰려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비해 3개월전에 발행된 30년 만기 TB 가격은 상대적으로 쌌다. 그는 30년 만기 TB를 팔고, 299개월 만기 TB를 샀다.

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메리웨더는 유유히 굿프렌드를 누룰수 있게 됐다. 회장이면 다인가. 월가에서는 돈을 많이 벌면 최고지, 회장이니 사장이니 하는 직책이 소용없다. 메리웨더의 팀은 블랙먼데이의 대혼란 와중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20억 달러를 투자, 3개월만에 15.000만 달러를 벌었으니, 연간수익율로 환산하면 30%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해 월가 최대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사가 연간 39,100만 달러의 이익을 낸 점을 감안하면 메리웨더가 석달동안 번 수익은 엄청난 액수였다. 이로써 메리웨더는 블랙먼데이로 월가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메리웨더는 11년후 롱텀매니지먼트캐피털(LTCM)이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어 파산시키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