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④…북아시아 유목민족의 첫 영웅 묵돌선우
흉노④…북아시아 유목민족의 첫 영웅 묵돌선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3.2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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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살해하고 권력 장악…동서남북으로 영토확장, 중원으로 진격

 

흉노의 2대 묵돌선우(冒頓單于)는 흉노의 강역을 최대로 확장한 인물이다. 초원의 영웅들, 징기스칸, 티무르, 아틸라와 마찬가지로 묵돌은 초어느날 갑자기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에 소리없이 사라졌다. 아틸라가 고대 로마제국에 신의 채찍이었다면, 묵돌은 고대 중국에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묵돌선우 /위키피디아
묵돌선우 /위키피디아

 

흉노의 초대 두만선우(頭曼單于)은 진시황(秦始皇)이 죽고(210) 몽염(蒙恬)도 살해되자 자만심에 빠졌다. 두만은 젊은 연지(閼氏=후궁)를 얻어 아들을 낳았다. 두만선우는 후궁을 이뻐하며 그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묵돌(冒頓)은 두만선우의 장자로 일찍부터 태자가 되었다. 묵돌은 흉노어로 용감한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묵돌은 기골이 장대하고 포부가 웅대하고 뜻이 심원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새 부인에게 빠져 갓난아이에게 제위를 물려주려는 게 마음이 걸렸다.

두만선우는 묵돌을 제거하지 않고는 막내에게 승계를 시킬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서쪽의 월지(月支)가 하서주랑(河西走廊=간쑤성)을 차지하며 흉노에 볼모를 보내라고 압박했다. 두만의 입장에선 맏아들을 볼모로 보내 월지를 달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월지가 볼모를 죽이면 앓던 이 빠진 격이 될 터이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묵돌이 볼모로 간지 얼마후 두만은 병사를 이끌고 월지를 쳐들어갔다. 묵돌은 혼란한 틈을 이용해 월지의 명마를 훔쳐 흉노로 도주했다. 아버지 선우는 일이 어긋났지만 그래도 살아온 장남을 가상히 여겨 1만 군사를 주어 장군으로 삼았다.

 

묵돌은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면 태자 자리도 뺏기고 자신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그는 숙련공에게 명적(鳴鏑)을 만들게 했다. 명적은 화살 끝부분에 피리처럼 소리가 나는 기구를 설치해 적을 놀라게 하거나 장수가 타깃을 정해주는 화살이다.

명적 /위키피디아
명적 /위키피디아

 

그는 병사들에게 내가 명적을 쏜 곳에 화살을 쏘아라. 쏘지 않으면 응징할 것이다.”고 지시했다.

묵돌은 사냥을 나가 자신이 아끼는 명마를 과녁으로 명적을 쏘았다. 많은 병사들이 묵돌이 명적을 쏜 곳을 향해 화살을 쏘았지만, 일부 병사는 감히 장군의 명마를 쏠수 없어 화살을 쏘지 않았다. 묵돌은 그 병사들을 죽였다.

묵돌은 또 자신의 아내에게 명적을 날렸다. 또 주저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묵돌은 그 병사들을 죽여버렸다.

얼마뒤 묵돌은 사냥을 나갔다가 아버지 두만의 명마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이번에는 모든 병사들이 말을 향해 활을 쏘았다. 묵돌은 흡족해 했다.

마지막 타깃은 아버지 두만선우였다. 어느날, 두만선우와 묵돌이 함께 사냥을 나갔다. 묵돌은 아버지를 향해 명적을 날렸다. 병사들이 일제히 선우를 향해 활을 쏘았고, 두만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묵돌은 아내와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삼아 선우의 자리에 올랐다. 때는 209, 진시황이 죽은 이듬해였다. 그가 선우에 오른 직후에 진()나라가 멸망하고(207), 초의 항우(項羽)와 한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놓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묵돌선우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동쪽의 동호(東胡)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동호는 묵돌이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흉노를 공격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동호는 사신을 보내 묵돌의 아버지 두만이 생전에 아끼던 천리마를 달라고 요구했다. 묵돌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은 한결같이 반대했다. 그러자 묵돌은 말했다. “동호는 우리 이웃이다. 두 나라가 화목하게 지낼수 있다면 그깟 천리마가 대수겠소. 그냥 줍시다.” 물돌은 천리마를 내주었다.

동호는 이번에는 묵돌이 가장 아끼는 연지(후궁)을 달라고 했다. 신하들은 펄쩍 뛰었다. 묵돌은 이번에도 여자 하나 때문에 이웃나라의 미움을 사서야 되겠느냐며 미모의 연지를 보내 주었다.

동호는 곧이어 흉노와의 국경 사이에 있는 황무지를 달라고 했다. 흉노와 동호 사이에는 천리에 걸친 황무지가 있었다. 묵돌은 신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물었다.

이번에도 신하들은 선우가 땅을 내줄 것이라고 믿고 나라 사이에 있는 황무지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땅이니, 양국의 화친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 마땅할줄 압니다고 대답했다.

이에 묵돌은 화를 크게 내며 땅은 나라의 근본이거늘, 함부로 내어줄수 있다는 말이냐며 땅을 내주라고 한 신하들에게 벌을 주었다.

 

묵돌선우 치하의 흉노 /위키피디아
묵돌선우 치하의 흉노 /위키피디아

 

묵돌은 동호를 선제공격했다. 동호 왕은 흉노가 호락호락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주자, 방어할 태세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묵돌이 순순히 말이며 후궁을 내어준 것은 동호의 경계를 풀기 위한 고차원의 전략이었다.

묵돌은 군령을 내려 보병과 기병으로 30만을 꾸려 요동(遼東)으로 진격했다. 동호왕은 묵돌을 가볍게 여겨 병력을 동원했는데 10만에 불과했다. 묵돌은 동호를 가볍게 격파했고, 동호왕은 멀리 도망쳤다. 묵돌은 동호왕을 더 이상 추격하다가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요서(遼西)로 철수했다. 이때가 BC 206년이었다.

묵돌선우는 내친 김에 병력을 서쪽으로 이끌고 가 한때 자신이 볼모로 가 있던 월지를 공격했다. 현재 간쑤성(甘肃省) 일대의 하서주랑을 빼앗긴 월지는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쫓겨나 스키타이를 몰아낸 후 그곳에 대월지국(大月支國)을 세워 쿠샨 왕조(Kushan Dynasty)를 열게 된다. 이 쿠샨왕조는 고대인도의 대제국을 형성한다. 또 월지에게 밀려난 스키타이족은 동유럽으로 건너가 게르만족을 압박해 민족대이동의 시초가 된다.

 

월지족의 이동로 /위키피디아
월지족의 이동로 /위키피디아

 

동쪽과 서쪽의 위협을 제거한후 묵돌은 남쪽으로 전진했다. 흉노는 만리장성을 넘어 조()나라 무령왕(武寧王)에게 빼앗겼던 누번(樓煩)을 되찾고 백양(白羊)의 영토를 점령하고, ()의 몽염(蒙恬)에게 빼앗겼던 하투(河套)평원(오르도스)를 수복했다.

묵돌은 더 이상 남하하지 않았다. 그가 남하를 중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하투평원 이남은 농경지여서 유목민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장성 이남은 유방의 근거지였다. 당시 유방은 중원의 패권으로 놓고 항우와 싸우다 패해 곤경에 빠져 있었는데, 만약 묵돌이 유방의 근거지로 내려가면 항우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된다. 묵돌은 항우보다 유방이 승리하길 원했다는 분석이다.

묵돌은 북쪽으로 눈을 돌려 혼유(渾庾), 굴야(屈射), 정령(丁零) 등의 부족을 복속시켜 몽골 고원을 제패한다.

 

하서주랑 /위키피디아
하서주랑 /위키피디아

 

묵돌선우가 동서남북으로 북방을 제압했을 때 초한전쟁(楚漢戰爭)의 막이 내리고 있었다. BC 202년 항우가 죽고 유방이 중원을 다시 통일한다. 하지만 지방에는 곳곳에 제후들이 왕()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묵돌은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지금의 베이징 근처인 태원(太原)을 공격했다. 유방은 한왕(韓王) ()에게 군대를 주어 흉노의 공격을 막으라고 명을 내렸다. 유방의 입장에서 성씨가 다른 제후에게 전쟁을 맡겨 이기면 충신으로 삼고, 지면 제거하려는 이중의 목적이 있었다.

한왕 신이 태원에 도착하니, 방어시설이 부족했다. 방어시설을 만들기에 흉노의 침공이 임박했다. 다급해진 한왕은 유방에게 도읍을 마읍(馬邑)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 유방은 이를 허락했다. 한왕은 급히 마읍성을 보수하고 물자를 비축했다.

BC 201년 가을 마읍성 보수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흉노군이 마읍성을 포위했다. 마읍성은 자그마한 성이었지만 공성전에 약한 흉노에겐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흉노는 장기전으로 전환해 포위전을 선택했다.

한왕은 묵돌에게 사절을 보내 협상을 요청했다. 이 소식은 유방의 귀에 한왕이 투항하려 한다는 말로 보고되었다. 유방이 노발대발했고, 한왕은 유방의 문책을 두려워 결국은 묵돌에게 투항했다.

유방은 한왕의 반역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젠 자신이 직접 흉노 정벌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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