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⑨…내란의 시기, 몽골초원이 사분오열하다
흉노⑨…내란의 시기, 몽골초원이 사분오열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3.2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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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정통성 사라지며 지역 왕들의 독립…호한야선우, 한나라에 손내밀다

 

흉노의 선우는 연제씨(攣鞮氏) 가문에서 내려왔다. 선우가 죽으면 장자가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대가 끊기면 몽골의 쿠릴타이처럼 부족장과 대신들의 모임인 대인회의에서 후계자를 결정했다.

9대 차제후(且鞮侯單于, 재위 BC101~97)는 임종을 앞두고 맏아들에게 선우 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좌현왕이었던 장자는 병을 앓고 있어 아버지 장례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인회의에서는 둘째 아들을 선우로 옹립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장자가 뒤늦게 선우의 막사(單于庭)에 나타났다. 동생은 마땅히 형이 선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제는 우애가 깊었다. 대신들도 형제의 의견을 받아들여 형을 선우로 모셨으니, 10대 호록고선우(狐鹿姑單于, 재위 BC 97~85).

호록고는 선선이 선우 자리를 돌려준 동생이 고마워 자신이 죽으면 선우자리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좌현왕에 책봉했다. 좌현왕은 대개 후계자에게 책봉하는 자리다. 몇 년뒤 선우의 동생인 좌현왕이 갑자기 병사했다. 그러자 선우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동생이 죽었으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록고는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좌현왕에 책봉했다. 그리고는 죽은 동생의 아들 선현탄(先賢撣)을 서열이 낮은 일축왕에 봉했다.

 

몽골 초원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죽어 나가자 호록고는 신의 징벌이 내렸다고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임종을 앞두고 호록고는 내 아들 좌현왕이 어려서 나라를 다스릴수 없으니 우곡려왕에게 선우를 물려주라고 유언을 남겼다. 우곡려왕은 호록고의 또다른 동생이었다. 호록고가 반성을 했다면 조카 일축왕을 후계로 정해야 옳았다. 호록고의 변덕은 BC 86년에 그가 죽고 큰 분란을 일으켰다.

선우의 정실부인을 전거연지(顓渠閼氏)라고 한다. 호록고의 전거연지는 친아들 좌곡려왕에게 선우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호록고의 유언을 비밀로 했다. 이어 좌곡려왕이 선우가 되었으니, 11대 호연제선우(壺衍鞮單于, 재위 BC 85~68). 호연제는 나이가 아렸으므로, 전거연지가 섭정이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 없는 법. 호록고의 유언이 새어 나갔다. 자신이 마땅히 선우가 될 것이라 생각한 왕들이 많아졌다. 좌현왕, 우곡려왕, 일축왕은 호시탐탐 선우 자리를 노리며 호연제가 실수를 하길 기다렸다.

호현제 시기에 흉노는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었다. 서쪽의 오손(烏孫)을 공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나라를 약탈하려 하다가 오히려 수많은 병사들이 사로잡혔다. 어느 해엔 폭설이 내리고, 또다른 해엔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홍수와 눈사태가 발생했다. 흉노는 하늘을 믿었다. 하늘이 선우를 벌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는 재위 17년만에 죽었다.

호연제가 죽고 배 다른 동생인 좌현왕이 선우가 되었으니, 12대 허려권거선우(虛閭權渠單于, 재위 BC 68~60). 그는 자신을 밀어낸 전거연지를 폐위시켰다. 전거연지는 폐위된 후에도 호시탐탐 정권탈취를 노렸다.

허려권거가 선우로 즉위한 후에도 내부의 분란은 가라앉지 않고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줄곧 밀리기만 했다. 허려권거는 BC 60년에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채 급사했다.

 

활을 쏘는 흉노병의 기마상 (BC 50~ AC 50년경 추정) /위키피디아
활을 쏘는 흉노병의 기마상 (BC 50~ AC 50년경 추정) /위키피디아

 

폐위되어 있던 전거연지가 선수를 쳤다. 전국의 왕과 대신들이 모여 후임 선우를 논의하는 대인회의가 소집되었다. 전거연지는 지방의 왕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자신과 내연 관계에 있는 우현왕 도기당(屠耆堂)을 일방적으로 천거해 선우에 옹립했으니, 13대 악연구제선우(握衍胊鞮單于, 재위 BC 60~58).

뒤늦게 도착한 지방의 왕들은 악연구제가 불법적으로 선우를 탈취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악연구제의 핏줄도 모호하다. 전거연지는 도기당이 6대 오유선우(烏維單于)의 이손(耳孫, 8대손)이라고 했는데, 정통 핏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악연구제는 잔혹한 인물이었다. 그는 대인회의를 소집한 학숙왕 형미앙을 주살하고, 전임 허려권거의 아들과 파면하고 그 자리를 자기 아들로 채웠다. 악연구제는 전거연지를 아내로 맞았고, 처남이 된 도륭기(都隆奇)를 중용했다.

일축왕 선현탄은 이번에도 선우가 되지 못하자 아예 한나라로 투항해 버렸다. 악연구제는 구실을 만들어 선현탄의 두 동생을 붙잡아 죽이려 했다. 선현탄에게는 누이가 있었는데, 남편이 오선막(烏禪幕)이란 대신이었다. 오선막은 처남들을 살리기 위해 선우를 찾아가 애원했지만 선우는 보기좋게 두 처남을 죽여버렸다. 오선막의 집에는 허려권거의 둘째 아들이자 사위인 계후산(稽侯狦)도 피신해 숨어 있었다.

격분한 오선막은 고석왕(姑夕王) 등 흉노 동쪽의 여러 왕들과 연합해 사위 계후산을 선우로 옹립했으니,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 재위 BC 58~31). 일시적으로 두명의 선우가 생겼다. 민심은 호한야에게로 쏠렸다. 새로운 선우가 등장하자 잔혹한 악연구제 곁에 있던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의 친동생인 우현왕마저 등을 돌리자 악연구제는 자살했다. 호한야가 명실상부한 14대 선우로 올랐다.

 

호한야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두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는 나라가 평안해졌다고 오판하고 수하의 몇몇 군사만 남기고 각지의 군대를 해산했다. 둘째, 자신의 승리를 도운 악연구제의 동생 우현왕을 제거하려 했다. 우현왕은 형인 악연구제의 지원요청을 거부하고 정통성이 있는 호한야를 밀었다. 하지만 호한야는 우현왕의 부하들을 사주해 우현왕을 살해하려고 시도했다.

우현왕은 도륭기의 반역 제안을 받아들여 스스로 선우기 되지 않고, 대신에 당형인 박서당(薄胥堂)을 도기선우(屠耆單于)로 세우고 배후조정하려 했다. 하지만 우현왕도 음모에 휘말려 도기선우에게 죽임을 당했다.

또다시 흉노엔 두명의 선우가 대립했다. 호한야는 군사를 해산했기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 그러자 서북의 호게왕(呼揭王)도 스스로 선우(呼揭單于)라고 칭하며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자 선현탄의 형도 원래 선우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며 차리선우(車犁單于)라고 칭했다. 이번엔 호한야의 방어군 수장인 오적도위(烏藉都尉)도 혼란을 틈타 선우(烏藉單于)라 불렀다. BC 56년에 흉노 땅에 한꺼번에 다섯 선우가 병립하게 되었다.

 

흉노 선우계보도 /흉노제국이야기, 張金奎저
흉노 선우계보도 /흉노제국이야기, 張金奎저

 

다섯 선우의 최후승자는 호한야였다. 몽골초원의 종족들은 정통성을 갖는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는 습성을 갖는다. 도기선우가 차리, 오적, 호게선우를 차례로 몰아내고 호한야와 대결했지만 호한야를 중심으로 불어난 세력을 이겨낼수 없어 결국은 투항했다. 호한야는 마침내 흉노를 통합해 유일 선우가 되었다.

그러나 곧 흉노는 갈라졌다. 호한야는 형 호도오사(呼屠吾斯)를 좌곡려왕에 봉하려 했는데, 호도오사는 동쪽의 광대한 땅을 차지하며 스스로 질지골도후선우(郅支骨都侯單于)라 칭하며 독립했다. 그러자 도기선우의 사촌인 휴순왕(休旬王)이 서쪽에서 자립해 윤진선우(閏振單于)라 칭했다. 또다시 흉노는 셋으로 나누어졌다. 윤진은 질지선우를 공격했으나, 섬멸당했다.

그런데 도기선우의 동생이 서쪽으로 도주해 일대를 차지하고 이리목선우(伊利目單于)라고 칭했다. 그는 일대의 형제들을 규합해 영토를 확장했다. 또다시 세 선우의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리목선우는 곧바로 질지선우의 공격을 받아 죽고, 그의 군사 5만명이 질지에게 넘어갔다.

짧은 시간에 8명이 선우라 주장하며 각축전을 벌였다. 마지막으로 질지와 호한야의 두 형제 싸움으로 압축되었다. 흉노의 역사에서 질지선우를 서흉노, 호한야선우를 동흉노라고 부른다. 호한야의 군사는 질지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했다. 질지는 호한야가 차지하던 수도 선우정을 빼앗았다. 쫓기던 호한야는 결국 남쪽으로 눈을 돌려 한()나라와 동맹을 맺어 형 질지와 대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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