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인’ 노트르담 대성당 불탔다
‘우리의 여인’ 노트르담 대성당 불탔다
  • 아틀라스
  • 승인 2019.04.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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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대명사, 고딕양식의 절정…화재로 지붕과 첨탑 붕괴

 

프랑스의 소설가인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찬미자였다. 그는 대성당의 전통을 일깨우기 위해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다.

노트르담(Notre Dame)'우리의 여인' ,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현지시간 15일 불탔다. 이날 오후 650분께 파리 구도심 센 강변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쳐 성당의 지붕과 첨탑이 붕괴되었다.

노트르담을 찾는 방문객은 매년 1,2001,400만명으로 파리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명소다. 1163년 프랑스 루이 7세의 명령으로 건설을 시작해 프랑스 고딕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가로, 세로가 각각 48m128m, 탑의 높이가 69m인 바실리카 구조다.

외부의 균형잡힌 구조와 다채로운 조각상,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극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내부의 '장미 창' 스테인드글라스 세 개가 가장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 메리 여왕 등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식이 열렸고, 1804년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노트르담 대성당 /위키피디아
노트르담 대성당 /위키피디아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은 프랑스 파리 시테 섬 동쪽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 건물로서, 파리 대주교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로 회자되는 건물이다.

공사는 국왕 루이 7(Louis VII) 시대인 1163년에 시작되었고, 당시 교황은 알렉산데르 3(Pope Alexander III)였다. 성당 건설은 파리 교구장이었던 드 쉴리(Maurice de Sully) 주교였다. 그는 성당을 건설하는 데에 자신의 삶과 재산 대부분을 바쳤다.

1160년 파리의 성당이 유럽 임금들의 본당이 되자 성당의 규모가 제 역할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모리스 드 쉴리는 파리 교구장이 되자, 원래의 성당을 무너뜨렸다. 전해지는 바로는 파리의 새로운 영광스러운 대성당의 모습을 상상한 드 쉴리가 그것을 원래 성당의 바깥 흙에 스케치했다고 한다. 건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구장은 몇 채의 집들을 무너뜨렸고, 성당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운송하기 위해 새 도로를 만들었다. 대성당은 1345년경에 완성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초기 고딕양식 성당으로, 조각들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부족한 세속적인 외관을 더해준다.

1548년 위그노(개신교 신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대성당의 성상들을 우상숭배라고 여겨 대성당의 외관을 파괴했다. 루이 14세 때와 루이 15세 때에 전 유럽에 걸쳐 대성당들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개축했다.

1793년 프랑스 혁명 때에 많은 보물들이 파괴되거나 강탈당했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유다 왕들의 조각상들이 프랑스 왕들로 오인되어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많은 머리들이 1977년에 인근을 발굴하면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클뤼니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이 시대에 제대에 위치해 있던 성모 마리아상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교체되었다. 중요한 종들은 간신히 용해되는 것에서 피할 수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말 먹이나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사용되었다.

 

성당은 여러개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하다. 오르간은 설치 전문가였던 프랑수아앙리 클리코에 의해 1700년대에 완성되었다. 클리코가 만든 페달 구획 안의 파이프 기구는 오늘날까지 소리를 낸다. 오르간은 19세기에 아리스티드 카베이에콜에 의해 다시 만들어 졌다.

오르간은 7,800개의 파이프를 가지고 있다. 오르간은 109개의 오르간 스톱, 5개의 56건의 손건반과 한 개의 32건의 발건반을 갖고 있다. 199212, 3개의 LAN을 통해 오르간을 완전히 전산화하는 작업이 끝났다.

 

1905년에 제정된 정교분리법에 따라 노트르담은 정부에 귀속되었으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당으로 사용하는 것은 승인되었다.

파리에서 시작하는 고속도로에서 거리를 나타내는 참고점인 프랑스의 도로원표(Point zéro)가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있는 광장에 있다.

19세기 초에 대성당은 황폐한 상태였으며, 도시계획가들은 노트르담의 철거까지 고려했다.

대성당의 맨 위에는 13개의 변색된 조각상들이 있다. 그들 중 12개는 열두 사도를 나타낸 것으로 바깥을 향하고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건축가 자신의 조각상으로 안쪽을 향하고 있으며 그의 팔을 뻗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오르간과 스테인글라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오르간과 스테인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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