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⑫…후한초 옛 영토 회복하자 다시 분열하다
흉노⑫…후한초 옛 영토 회복하자 다시 분열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01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왕망의 탄압 이겨냈지만…대재해 발생하자 서로 중원에 손 내밀다 갈라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서기력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한나라엔 황실의 외척인 왕망(王莽)이 권력을 장악했다. 왕망은 철저한 유학자이자, 중화론자였다. 그의 눈에는 흉노를 비롯해 변방의 소수민족이 오랑캐로 보였다.

왕망은 흉노 지역에 오환(烏桓) 또는 서역의 주민들이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흉노가 소수민족과 교류하는 것을 차단해 고립시키려는 의도였다. 흉노의 오주류선우(烏珠留單于)는 애써 참았다. 왕망은 선우의 이름 낭지아사(囊知牙斯)가 길다 하여 한 글자로 바꾸라고 했다. 오주류는 이마저 받아들여 자신의 이름을 지()라고 하고, 동생과 아들, 대신들의 이름도 한 자로 줄이라고 지시했다.

AD 9년에 왕망은 황위를 찬탈해 황제에 오르고 신()나라를 건국했다. 역가들은 앞서의 한조(漢朝)를 전한(前漢), 이후를 후한(後漢)라 한다. 또는 전한의 수도가 서쪽 장안(長安)이었고, 후한의 수도가 동쪽 낙양(洛陽)이었다는 점에서 서한(西漢), 동한(東漢)으로 뷴류하기도 한다.

전한의 선제(宣帝)는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준 흉노선우새(匈奴單于璽)라고 새겨진 도장을 주었다. 왕망은 이 도장을 회수하고 신흉노선우장(新匈奴單于章)이라 새긴 새로운 도장을 만들어 주었다. 글자 몇 개 바꾼 게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수도 있지만, 왕망은 자신의 나라 신()이란 글자을 넣고 황제와 동등한 의미의 ’()라는 글자를 제후급 용어인 ’()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오주류선우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선우는 분노해 군사를 몰아 오르도스 북쪽 삭방(朔方)으로 향했다. 호한야선우 이래 유지되어 온 흉노의 복속이 깨어진 것이다. 동시에 중원에는 녹림(綠林적미(赤眉) 등지에서 왕망의 정책에 반대하는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왕망은 내부의 반란을 무마하기 위해 외적을 깎아 내렸다. 흉노를 공노(恭奴) 또는 항노(降奴), 선우(單于)를 선우(善于) 또는 복우(服于)로 격하시켰다.

왕망은 이것도 모자라 분열, 이간책을 썼다. 오주류선우의 아들과 손자 15명을 모두 선우로 임명하고, 우려오왕과 두 아들을 불러 선우로 책봉하고 아들 하나를 볼모로 잡았다. 우려오왕은 자신만이 선우가 된줄 알고 좋아했으나 아들도 선우가 된 것을 알고 왕망의 술책에 넘어갔음을 알게 되었다. 우려오왕은 뒤늦게 후회하고 흉노로 도망쳤지만 오주류가 그를 하급관리로 강등시켜 버렸다.

왕망은 흉노 뿐 아니라 서역의 소국에도 왕()이란 호칭을 후()로 격하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서역 국가들은 한의 서역도보부를 죽이고 흉노의 편에 섰다.

왕망은 30만 군대를 동원해 흉노를 섬멸하려 했다. 오주류는 왕망에 정면 도전했다. 흉노는 한()에 복종했지 신()에 복종하지 않았으며, 한을 멸한 신은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주류는 왕망의 군대에 맹공을 가했고, 왕망 군은 무기력하게 당했다.

AD 13년에 오주류가 죽고 흉노에는 친한파와 반한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하지만 왕망이 흉노에 시집보낸 왕소군(王昭君)의 사위를 선우로 옹립하려 하자 호도선우(呼都單于)가 분노해 다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왕망이 흉노와 전쟁을 준비하던 AD 23년에 반란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흉노의 전쟁 /바이두백과
흉노의 전쟁 /바이두백과

 

흉노는 왕망의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후한의 수립에 일조한 공로를 주장했다. 호도선우는 후한이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 수시로 중원을 공격해 묵돌선우가 이루었던 거대한 제국을 다시 일으켰다. 하지만 후한은 호도선우의 집요한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흉노는 중원이 소란한 틈을 타서 옛영토는 회복했지만, 막강했던 과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AD 46년 호도선우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두 아들을 후계자로 선정했다. 앞서 15대 복주류에서 20대 호도까지 6대가 모두 호한야선우의 아들 형제들이 대를 이어갔다. 호도선우에게는 왕소군이 낳은 이도지아사(伊屠知牙師)라는 배 다른 동생이 있었다. 이도지아사는 좌현왕이었는데, 호도는 아들에게 선우를 넘겨주기 위해 동생의 좌현왕위를 박탈하고 죽여 버렸다.

이에 호도선우의 아들인 오달제후선우(烏達鞮侯單于, 재위 AD 46)21, 그 동생인 포노선우(蒲奴單于, 재위 AD 46~?) 22대를 이어갔다.

그러자 호도선우의 형인 18대 오주류선우의 아들 비()가 불만을 쏟아 냈다. 일축왕이었던 그는 왜 작은 삼촌의 아들이 선우 대를 이어가느냐며, 자신도 선우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후한이 흉노에게 내려준 청동제 도장. ‘漢匈奴歸義親漢長’이라 쓰여 있다. /위키피디아
후한이 흉노에게 내려준 청동제 도장. ‘漢匈奴歸義親漢長’이라 쓰여 있다. /위키피디아

 

몽골초원에 자연재해가 때로 극심한 자연재해가 닥친다. <후한서> 남흉노전에는 AD 45년경 가뭄과 메뚜기 피해로 죽은 사람과 가축이 전체의 2/3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포노선우는 이 곤경을 악용해 후한이 쳐들어올 것을 우려해 먼저 화친사절단을 보냈다.

일축왕 비의 관할구역은 현재 내몽골 지역으로 전한시대에 중원에 투항한 흉노인들이 살고 있었다. 흉노가 다시 세력을 확대하자 내몽골 흉노인들은 후한에 등을 돌리고 선우의 품에 돌아가 중원 공격의 선봉에 섰다. 호도선우는 그곳에 8(八部)를 두고 각 부를 대인(大人)에 맡기고 일축왕을 책임자로 보냈다.

일축왕은 사촌인 선우가 소집하는 대인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흉노에 대기근이 발생하자 선우보다 먼저 후한과 접촉했다. 그런 사실이 선우에게 알려지자, 선우는 일축왕을 벌주기 위해 병력을 동원했다. 하지만 워낙 재해가 심각해 겨우 1만의 군사를 동원해 출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축왕은 5만의 군사를 조성해 대응하자 선우가 패했고, 포노선우는 수도(선우정)도 내줘야 했다.

 

남흉노, 북흉노, 선비의 영역 /김현민
남흉노, 북흉노, 선비의 영역 /김현민

 

서기 48, 남쪽의 8부 대인들이 모여 일축왕을 선우로 추대하고, 호칭을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라고 했다. 호한야선우는 BC 58~31년에 재위한 선우와 같은 명칭인데, 한나라에 의탁하자는 의미에서 그 명칭을 다시 썼다. 다만 선임 선우와 구별하기 위해 후호한야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호한야 2세다.

후호한야는 전임 호한야와 마찬가지로 후한에 사절을 보내 화친을 추구했다. 그는 포노선우 치하의 흉노를 북로(北虜)라 부르며 후한의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호한야가 동족을 오랑캐라 호칭한 것은 늑대족이 꼬리를 내리고 유순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한의 초대황제 광무제(光武帝)는 호한야의 제의를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약하면 꼬리를 내리고 강해지면 이빨을 드러내는 북방민족의 야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한 초기 지방에는 제후들이 사병을 유지하고 있었고, 농민군이 웅거하고 있는 상태에서 광무제에겐 흉노와 전쟁을 치를만한 힘이 부족했다. 대신들은 호한야의 제의를 받아 들이자고 건의했고, 광무제 유수(劉秀)도 이를 받아들였다.

서기 50년 후호한야는 광무제를 찾아 입조했다. 광무제는 전한의 선례에 따라 금으로 만든 새()와 관대, 의복, 마차, 비단, 곡물 25천 말, 소와 양 36천 마리를 하사했다. 이로써 흉노는 다시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되었다.

과거 호한야선우와 질지선우가 동흉노, 서흉노로 갈라섰을 때, 정통이었던 호한야가 전한에 복속했다면 이번엔 비정통인 후호한야가 후한에 복속하고 정통인 포노선우가 밀려난 것이다. 역사가들은 남흉노의 선우를 남선우, 북흉노의 선우를 북선우라고 약칭한다.

남선우가 후한에 복속하자 북선우도 화친을 제의했다. 이번에도 후한은 전한처럼 먼저 복속한 늑대를 우대하고, 나중에 복속한 늑대를 버렸다. 북선우가 세 번이나 낙양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지만 후한은 매정하게 거절했다. 흉노 사이를 이간질해 남과 북의 흉노가 서로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이이제의(以夷制夷) 전략이다.

남흉노는 후한에 복속해 오르도스와 산시성(山西省) 일대를 차지했고, 북흉노는 몽골 고원에 남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