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⑬…몽골초원 등지고 중앙아시아로 떠나다
흉노⑬…몽골초원 등지고 중앙아시아로 떠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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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흉노, 후한 두헌에 패해 궤멸한후 오손·강거로 이동…선비가 그 자리 차지

 

서력 50년 흉노가 분열하면서 남흉노와 북흉노는 서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북흉노는 후한에 화친을 제의했다가 거절되자 남흉노에 화풀이를 했다. 형제가 갈라서면 남보다 더 무섭게 싸운다.

AD 56년에 후호한야선우가 죽고 63년까지 남흉노에는 구부우제(浮尤鞮), 이벌어려제(伊伐於慮鞮), 온동시축우제(䤈僮尸逐侯鞮), 구제거림제(丘除車林鞮), 호사시축후제(胡邪尸逐侯鞮) 등 다섯 선우가 7년 사이에 바뀌었다. 역사서엔 짧은 시기에 많은 선우가 교체된데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북흉노가 수시로 쳐들어와 전투 과정에서 선우교체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이 있다.

후한은 초기에 흉노의 내전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서서히 국력을 회복해 나가면서 후한은 북흉노와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흉노가 분열되었을 때, 몽골초원 동부와 만주지역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흉노에 복속해 있던 선비족이 세력을 확장한 것이다. 선비족(鮮卑族)과 오환족(烏桓族)은 동호(東胡)를 구성하던 종족인데,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두 종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졌다고 한다. 아마 같은 종족이 나라를 달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묵돌선우가 동호를 정벌하면서 두 종족은 흉노의 지배를 받았다. 전한의 무제가 흉노와 고조선을 정벌할 때에 선비와 오환은 북만주로 쫓겨 났다가 흉노가 약화되면서 북만주 일대를 차지하며 급속하게 세력을 확대했다.

후한은 북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선비족을 활용했다. 후한의 요동태수는 선비족에게 흉노의 목을 베는만큼 상금을 준다고 꾀었고, 선비는 상금에 눈이 어두워 흉노족 잡이에 나섰다.

 

서역의 소국들 /흉노제국이야기, 張金奎저 스캔
서역의 소국들 /흉노제국이야기, 張金奎저 스캔

 

후한은 남흉노의 투항을 받은 후 국력을 축적했다가 대대적으로 북흉노 정벌에 나섰다. 서기 73년에 후한 조정은 장군 두고(竇固)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북흉노를 치게 했다. 북흉노가 멀리 도망갔다 76년에 다시 나타나자, 후한은 남흉노, 오환의 동맹군과 함께 출격했다. 이때 북흉노의 사망자와 포로가 수천에 달했다. 쫓기던 북흉노 백성 상당수는 남흉노로 도망쳤다. 북흉노의 포노선우(蒲奴)선우는 안팎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북흉노는 결국 현재 신장(新彊) 지역의 서역 소국을 노리게 된다. 거기에는 후한의 명장 반초(班超)가 기다리고 있었다. 1세기에 서역에서 북흉노와 후한의 밀고 밀리는 전쟁이 전개되었다. 반초의 형 반고(班固)<한서>(漢書)를 쓴 유명한 역사가로, 반초의 서역 활동을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반고는 73년과 74년에 불과 36명의 병사를 이끌고 두차례 사신으로 가 선선국(鄯善國)과 우전(于闐國), 소륵국(疏勒國) 등 세 나라를 복속시켰다. 이어 두고가 차사국(車師國) 마저 제압해 후한은 서역의 비단길을 다시 열게 되었다.

하지만 먼 서역에 후한이 북흉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벙력을 주둔시키기는 어려웠다. 후한은 서역 주둔군을 철수시켰고, 그 틈을 타서 서기 86년에 북흉노가 서역을 다시 지배했다.

서기 87년에 또다시 몽골초원에 메뚜기떼가 몰려오면서 곡물에 큰 피해가 났다. 곧이어 우류선우가 즉위했다. 먹을 것이 궁해진 북흉노는 남흉노로 가서 구걸해야 하는 처지인데, 우류선우는 서역 경영에 치중했다. 우류가 수도(선우정)를 서부 오르콘 계곡으로 옮기자 동부의 귀족들이 반기를 들고, 그의 형을 선우로 옹립했다. 북흉노가 다시 분열하게 되었다.

그 틈을 타서 선비족이 북흉노를 공격했다. 선비족은 우류선우를 참살하고 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삼았다. 선우가 죽자 굶주린 북흉노 5820만명이 남흉노로 투항했다.

 

두헌의 북벌로 /每日頭條
두헌의 북벌로 /每日頭條

 

서기 88, 후한에 장제(章帝)가 죽고 화제(和帝)10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두태후(竇太后]가 섭정을 맡았다. 두태후는 오빠 두헌(竇憲)을 거기장군으로 임명해 4만의 군사를 주어 북흉노 토벌에 나서게 했다.

두헌은 남흉노를 끌어들였다. 흉노로 흉노를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다. 남흉노는 후한군을 이용해 북흉노를 섬멸하고 흉노를 통일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기 89년 두헌은 남흉노군을 대동해 몽골 서쪽 알타이산맥의 계략산(稽落山)까지 가서 북흉노군을 초토화시켰다. 두헌은 쫓기는 북흉노군을 추격해 13천명을 포로로 잡고, 소와 양, 낙타등 1백여만 마리를 포획했다. 이 때 후한에 투항한 사람이 81부족 20여만명이었고 중국의 사서는 기록했다.

북흉노가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하자, 반초는 서역으로 가 50여개 소국을 복속시켰다. 이후 서기 90년 남흉노가 북흉노를 공격하고, 91년에 후한의 두헌이 다시 정벌에 나서 북흉노 선우의 어머니 등을 포로로 잡고 5천여명을 살해했다. 이때 두헌의 원정은 변경에서 5천리나 먼 곳이었는데, 전한과 후한을 걸쳐 가장 먼 원정이었다.

북흉노가 위축될 때 우곡려왕이었던 선우의 동생 우제건이 82만의 군사로 스스로 선우가 되어 후한과 화친을 시도했다. 두헌은 이를 인정해 주었다. 이번엔 남흉노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우제건은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그곳은 선비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서역으로 갔다가 다시 후한군에 쫓겨 살해되었고, 그의 병사들도 죽거나 투항했다.

 

알타이산맥 /위키피디아
알타이산맥 /위키피디아

 

이후 북흉노의 기록은 드문드문 나타난다. 선우에 대한 기록도 아예 없다.

역사가들은 이때 북흉노가 멸망한 것으로 본다. 남은 북흉노는 몽골초원을 떠나 중앙아시아의 오손(烏孫) , 강거(康居)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흉노가 비운 몽골초원은 선비가 차지했다.

이후 2백년 가까이 지나 376년 로마제국에 하나의 보고가 올라온다. 서고트족이 동방에 나타난 강력한 기마군단에 의해 무너져 국경근처인 도나우강 북안까지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서고트족을 밀어낸 종족은 훈족(Huns)이라고 했다. 그 훈족이 바로 후한 화제 때 두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간 북흉노의 후예라는 게 많은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북흉노 도주로 /중국 사이트 知呼
북흉노 도주로 /중국 사이트 知呼

 

남흉노는 동족이 서천(西遷)한 후 오르도스 및 산시성(山西省) 일대를 지키며 후한의 국경수비대(番兵) 역할을 했다. 남흉노는 북흉노 대신에 몽골초원을 차지한 선비와 오환족을 방어했다.

서기 94년 좌곡려왕 사자(師子)가 선우가 되었다. 그는 남흉노에 투항한 북흉노인들을 미워했다. 선우는 난폭한 기질을 드러내면서 투항한 북흉노인들을 핍박했다.

그러자 북흉노 출신들은 붕후(逢侯)를 선우로 추대했고, 봉후는 1520만명을 이끌고 몽골초원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이미 그곳은 선비족이 차지해 있었다. 남흉노는 선비와 연합해 봉후 세력을 공격했다. 봉후는 2만여 군사를 잃었다. 봉후는 달아나 북방을 떠돌다가 더 이상 갈곳이 없어 20년 후인 118년에 후한에 투항했다. 몽골초원에는 이제 흉노족이 사라졌다. 남은 흉노는 선비족에 융화되었다.

이후에도 북흉노의 기록은 간간히 중국 역사서에 나타난다. 119년 서역 이오려(伊吾廬) 일대에서 북흉노 호연왕(呼衍王)이 나타났다. 호연왕은 서기 73년 두고가 북벌할 때에도 등장하는데, 북흉노왕의 명칭으로 보인다. 곧이어 후한군이 반격하고 호현황은 사라졌다. 126년에도 호연왕이 서역에 나타났다가 패했고, 135년에도 호연왕의 서역을 침략했다가 137년 후한군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 14년후인 151년에도 호현왕이 서역에 나타나 노략질을 하고 돌아갔다는 마지막 기록이 전한다. 북흉노는 중앙아시아로 건너갔지만 동방의 초원 제국을 그리며 호시탐탐 침략한 것이다.

 

한편 남흉노는 후한이 선비, 오환, () 등을 토벌하는데 용병부대로 참여했다. 일부 왕과 귀족들은 한족 정권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선우에 불만을 품어 유력자들 사이에 끊임없는 대립이 있었다.

남흉노는 21대 호주천선우(呼廚泉單于)까지 대를 있다가 후한 말기인 216년에 조조(曹操)가 남흉노 영토를 5부로 재편하며 직할지로 편입하면서 그 수명을 다했다.

 

남흉노선우의 계보도 /흉노제국이야기, 張金奎저 스캔
남흉노선우의 계보도 /흉노제국이야기, 張金奎저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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