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의 출현①…한족에 쫓겨난 흉노의 후예인가
훈족의 출현①…한족에 쫓겨난 흉노의 후예인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06 17: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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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초원서 쫓겨난 북흉노가 오손, 강거, 엄체로 이동하며 훈족으로 진화

 

서양 역사학자들은 중앙아시아에 살던 훈족(Huns)이 서진(西進)하면서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 동고트족이 쫓겨 로마 영내로 이동했고, 그로 인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평가한다. 고대의 대제국이 한낱 초원의 유목민족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일수도 있다. 그 훈족은 중국 북방 초원을 1천년간 지배하다가 한족(漢族)에 의해 밀려난 흉노족의 후예라는 게 서양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기나긴 세월동안 한족과와의 전쟁에서 패한 흉노가 로마제국을 붕괴시켰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서기 376년 로마제국의 발렌스(Flavius Valens) 황제는 하나의 보고를 받게 된다. 흑해 지역에 살던 서고트족이 다뉴브강 북쪽에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훈족이라는 처음 듣는 야만족이 먼저 동고트족을 공격하고, 이어 서고트족을 습격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아틸라(Attila)라는 훈족의 지도자가 사망하는 453년까지 80년간 로마제국은 아시아에서 건너온 야만인의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아틸라가 죽은후 훈족의 공포는 사라졌지만 서로마제국은 20년후인 476년에 훈족에 쫓겨 영내에 진입한 게르만족에 의해 종언을 고한다.

 

흉노-훈족의 이동로 /위키피디아
흉노-훈족의 이동로 /위키피디아

 

그러면 훈족은 어떤 종족인가. 흉노족의 후예인가.

중국 역사서에서 북흉노에 대한 마지막 흔적은 <후한서>에 서기 151년 북흉노의 호연왕(呼衍王)이 서역에 나타나 노략질을 하고 돌아갔다는 갔다는 기록이다. 앞서 서기 89년에 북흉노가 후한의 두헌(竇憲) 장군에 의해 몽골 서부 계략산(稽落山)에서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하고, 살아남은 병사와 부족이 중앙아시아의 오손(烏孫), 강거(康居)로 도주했다. 이후 호시탐탐 동쪽으 초원을 그리며 침략했지만 그마저 151년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다.

중국의 역사서에서 북흉노가 사라진 151년 이후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 역사에 등장하는 376년 사이에 220년의 공백이 있다. 흉노와 훈족은 스스로 남긴 역사서가 없다. 훈족은 죽은 자를 화장했기 때문에 매장문화가 없고 가옥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유물이 없다. 중국의 역사서에 사라졌다가 서양의 역사서에 다시 등장하는 그 사이 2백여년이 미스터리로 남는다. 중국 역사에서 사라진 북흉노(匈奴)2백년후 서양역사에 나타난 훈족(Huns)은 동족일까.

 

1757, 프랑스의 동양학자 조세프 드 기네(Joseph de Guignes)가 훈족이 중국 역사의 흉노족과 동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은 영국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그후 서양 역사학계에 흉노=훈족이라는 동일종족설이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 잡았다.

물론 모든 역사학자들이 흉노=훈족 동일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19세기 들어 일부 학자들은 드 기네와 기번의 주장과 달리 훈족은 투르크어 또는 핀-우그리아어(Finno-Ugric language)를 사용했다며 흉노족이 아닌 다른 종족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20세기초 독일의 동양사학자 프리드리히 히르트(Friedrich Hirth)는 중국 역사서 <위서>(魏書)를 근거로 흉노족과 훈족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사학자 오토 멘헨-헬펜(Otto J. Maenchen-Helfen)은 히르트의 중국연대기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멘헨-헬렌도 나중에 애초의 주장을 뒤집어 흉노-훈 일체설을 인정했다.

 

일부 반론이 있긴 하지만 훈족-흉노 일체설은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첫째는 중국어 흉노(Xiongnu)와 라틴어 훈(Hunn)이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둘째, 기마민족으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전술이 같다는 점이다. 셋째는 지역적 일치다. 흉노가 서쪽 중앙아시아로 이동했다는 중국 기록과 훈족이 카스피해 동부에서 발원했다는 서양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공통분모가 동족설을 뒷받침한다.

 

BC 1세기 중앙아시아 국가들 /위키피디아
BC 1세기 중앙아시아 국가들 /위키피디아

 

중요한 것은 2백년 사이 동양과 서양의 역사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흉노와 훈족의 기록을 찾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중국과 인도, 페르시아(이란)의 고대 역사를 뒤지며 흉노의 희미한 근거를 찾아 내려고 노력했다. 연구 결과, 흉노와 훈족 사이에 희미한 역사의 끈이 찾아졌다.

 

북위(北魏)의 역사를 기록한 <위서>(魏書)에는 서기 91년에 후한과 남흉노 연합군에 쫓겨난 북흉노 선우가 강거로 도주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강거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의 사르다리야강 하류인 아랄해 근처로 간주된다. 그후 몽골초원의 선비족이 160년대에 오손까지 지배력이 미쳤다. 북흉노의 이주민들이 오손에서 강거로 이동했다는 근거로 보인다.

()나라 시대 편찬된 <북사>(北史)에 이런 기록이 있다.

속특국(粟特國, Sogdia)은 총령(悤嶺, 파미르고원) 서쪽에 있다. 이 나라는 예전의 엄체(奄蔡), 온나사(溫那沙)라고도 한다. 큰 호수 근처에 있는 강거의 서쪽에 있다. (, 중국 북부 도시)에서 일만육천리에 있다. 예전에 흉노가 그 왕을 죽이고 나라를 세웠다. 홀례(忽倪) 왕까지 3대를 거쳤다. 그 나라 상인은 대부분 양토(凉土, 간쑤성 하서주랑)까지 가서 교역을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에는 엄체국을 아란(阿蘭)이라 했고, <후한서>(後漢書)에는 엄체국이 아란요국(阿蘭聊國)으로 개명했다고 했다.

흉노가 패퇴시킨 엄채국의 위치는 카스피해와 아랄해 북쪽으로 추정된다.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족의 나라였는데, 후에 이름을 바꾼 아란 또는 아란요국은 그리스·로마사에 등장하는 알란(Alans)이라는 부족과 일치한다.

몽골고원에서 밀려난 북흉노가 파미르고원을 넘어 카스피해 북쪽 초원에서 소그드족의 엄체를 정복해 나라를 세웠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기사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데,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흉노족이 중국 서부까지 대상을 이끌고 교역한 것으로 보인다.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스텝) /위키피디아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스텝) /위키피디아

 

중국사에 드러나는 산발적인 기사를 근거로 보면, 몽골초원에서 쫓겨나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북흉노는 오손으로 갔다가 강거로 이동했고 다시 엄채를 공격해 나라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대략 200여년 사이에 흉노의 무리는 천산산맥 서쪽에서 카스피해 북안까지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근거로 북흉노의 사라진 역사를 재구성 해보자.

서기 91년 북흉노는 몽골 서쪽 금미산(金微山, 알타이산)에서 후한의 장수 경기(耿夔)에 패해 텐산산맥(天山山脈)을 넘어 오손으로 도주했다. 텐산 서쪽 페르가나 분지에 터를 잡은 북흉노의 수장 호연왕은 수시로 서역과 몽골 초원을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151년을 마지막으로 북흉노는 동쪽 고토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손의 옛 땅을 점령해 세력을 키워 나갔다. 위서 서역전에 북선우가 세운 열반국(悅般國)이란 나라가 나오는데, 아마 오손의 옛 땅에 세운 북흉노의 나라로 보인다.

그러다가 어느 해에 흉노족은 오손을 떠나 강거로 이동했다. 앞서 BC 1세기에 서흉노의 질지선우(郅支單于)가 이동한 것과 비슷한 경로일 것이다. 흉노가 강거로 이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역사학자들의 분석은 당시 세력을 떨치던 유연(柔然)이 선비족에게 쫓겨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북흉노를 밀어냈다는 것이다.

서양의 역사에 흉노(훈족)가 등장하는 것은 서기 290년 전후다. 카프카즈와 터키 동부에 자리잡은 아르메니아의 군대에 훈족이 등장한다. 이때 훈족은 알란족과 함께 아르메니아 군에 복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흉노가 엄체(알란)을 공격하던 시기와 대략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흉노가 엄채인(알란족)을 포용해 아르메니아의 용병부대로 투입된 것이다.

 

1세기말에 한족과 남흉노에 쫓겨나 텐산산맥을 넘은 흉노족은 200년의 세월을 보내며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며 현지의 다양한 종족을 정복하고 융화되면서 풍습도 현지화되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이라는 새로운 토양에서 배양된 흉노족은 여러 종족과 혼인하면서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동서양 역사의 레이더망에 200년간 사라졌던 흉노는 4세기에 훈족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서양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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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2023-04-21 21:44:42
어원으로 뿌리를 밝혀야 한다
몽고족 의 사람은 ㅡHun
한국어의 사람은 ㅡBun
몽고어, 일본어의 n의 종성발음은 ng로 난다
몽고어 Hun 은 Hung
일본어 사람은 bun ㅡbung ㅡ下人 ㅡkobung
親人ㅡoyabung
여기서 사람을 훈ㅡ분ㅡ(hunㅡhung)(bunㅡbung)
중국한자 hung+奴 ㅡhiungno로 표기
따라서
Hun 한반도 북방의 같은 어원이다
Gari는 한국어로 나라 를 高구리ㅡ
일본어 國ㅡkuni 와 같은 어원이다
훈가리ㅡ한국사람들이 들으면 훈의 나라
훈은 분으로 사람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