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의 출현②…西進의 시작, 동서 고트족 내몰다
훈족의 출현②…西進의 시작, 동서 고트족 내몰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07 14: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란, 사르마트, 동고트, 서고트족 차례로 정벌…서고트족 로마 진입

 

카스피해 북쪽 초원에 살던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350년경으로 추정된다. 훈족이 가장 먼저 부디친 종족은 중국에서 엄채(奄蔡)라 부르고, 서양에선 알란(Alans)이라 부른 나라였다. 알란족은 흑해 아조프해로 흘러내려 가는 돈강(Don River) 동쪽에 살고 있던 유목종족이었다.

그러면 훈족은 왜 서쪽으로 이동했을까. 세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기후변화다. 중앙아시아에 극심한 추위가 닥쳐 훈족이 따듯한 곳을 찾아 이동했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중국 북방을 장악한 유연(柔然)이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훈족이 떠밀려 서진(西進)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로마제국의 부를 약탈하기 위해 공세를 폈다는 것이다. 세가지 모두 역사학자들의 추측인데 분명치는 않다.

대체적인 견해는 기상악화설을 지지하는 편이다. 북방 유목민들이 다른 종족을 약탈할 경우, 기후조건이 악화될 때가 많다. 몽골 고원에는 수십년에 한번씩 조드(dzud 또는 zud)라는 대가뭄과 혹한의 대재앙이 찾아오면 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대규모의 가축이 몰사한다. 먹고살기 힘든 유목민들은 이웃 종족을 침략해 약탈하고, 때로는 전쟁을 일으킨다. 기상학적 자료가 없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지만 아마 이 무렵에 훈족이 견디기 힘든 자연재해가 닥쳤을 가능성이 크다.

 

훈족과 알란족의 전투 그림 /위키피디아
훈족과 알란족의 전투 그림 /위키피디아

 

로마 후기의 역사학자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에 따르면, 알란족은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노란색이었다고 한다. 알란족을 인도-유럽계 아리아인(Aryan)의 이란 방언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알란족은 유목민족으로 생활방식이 훈족과 비슷했다. 기마에 능하고 소와 말의 고기와 유제품을 주식으로 했다. 알란족은 남쪽 아르메니아에 공주를 보내 결혼동맹을 맺는등 흑해 일대에 제법 강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하지만 그들은 훈족과 경쟁이 되지 못했다. 훈족은 기병을 날랜 기병으로 공격했고, 무차별 살육으로 공포에 질리게 했다. 국왕은 살해되고 일란족의 상당수는 훈족의 보조군대로 편입되었다. 살아남은 알란족은 카프카즈 산맥으로 도주하거나 로마제국 영내로 이주해 갈리아(프랑스)와 스페인으로 이동했다

.

훈족의 다음 타깃은 돈강 서쪽의 사르마트족(Sarmatians)이었다. 스키타이족의 일족인 이 종족은 머리색이 붉거나 노란색이었고 알란족과 유사했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이란계 아리아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르마트족은 훈족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르마트족도 훈족 군대로 편성되었다.

 

알란족의 이동로 /위키피디아
알란족의 이동로 /위키피디아

 

그 다음은 우크라이나 초원이었다. 당시 그 초원의 주인은 동고트족(eastern Goths)이었다. 고트족은 하나의 종족을 유지하다가 어느 때인가 드네스트르 강(Dniester River)을 경계로 동코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지배자에 의해 통치되었다.

훈족과 동고트족과 사이에는 거대한 자연 장벽이 있었다. 돈강이 아조프해(Azov Sea, 흑해의 내해)와 만나는 하류지역에 형성된 거대한 메오티데 늪(Maeotic Swamp)은 인간으로선 건널수 없었다. 6세기 고트족 출신의 역사학자 요르다네스(Jordanes)는 이 늪을 이렇게 설명했다. “늪 지대로 둘러 싸인 곳엔 이동통로가 막혀 있고, 땅과 물이 한데 뒤섞여 사람들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에서 기괴한 동물의 울음소리를 듣고 혼령이 높 안에서 발버둥치는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훈족 사이에는 이 늪을 관통하는 길을 찾은 전설이 남아 있다.

어느날, 훈족 사냥군들이 사슴 한 마리가 늪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살금살금 다가가 활을 겨누었더니, 사슴이 놀라 늪 안쪽으로 달아 났다.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사슴을 쫓다가 어느새 늪의 건너편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사냥감은 놓쳤지만 늪을 건너는 길을 발견한 것이다. 사슴은 훈족에겐 영감을 주었지만 동고트족에겐 저주를 주었다.

 

요르다네스에 따르면 당시 동고트 왕은 에르마나리크(Ermanaric)였고 훈족 왕은 발람베르( Balamber)였다. 발람베르가 실존인물인지 가공인물인지에 역사학계에 논란이 있지만, 그 시대에 전하는 이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서기 374년 겨울, 발람베르는 훈족을 주력으로 하고 알란족과 사르마트족을 보조 병력으로 삼아 우크라이나 초원의 동고트를 쳐들어갔다. 동고트왕은 훈족이 기습적으로 공격해올 줄 몰랐다.

그들은 형상부터 무서웠다. 동족인 요하다네스는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외모는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에게 두려움과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커멓고 그을린 외모에 겁을 집어 먹은 적군은 당장에 놀라 달아났다. 그들의 머리는 기이한 형체를 하고 눈은 바늘구멍 같아 사람의 눈과 같지 않았다. 거친 외모에 강인한 성격을 지닌 그들은 어린 아기에게도 난폭하게 굴었다.”

고트족도 로마인에게는 야만족이었다. 그런 야만족에게 훈족은 더 야만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불로 요리를 하지도 않았고, 양념을 넣는 것도 몰랐다. 말을 몰면서 사타구니에 넣어 숙성시킨 고기를 날 것으로 먹었다.

아시아 야만족은 날쎄게 달려와 화살을 쏘아 대고 뒤로 빠졌다. 기이한 함성을 질러대는 그들은 고트족을 공포로 몰아 넣었고, 동유럽 야만족은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패배했고, 에르마나리크는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조카 비티메르(Vithimiris)가 왕위에 올라 패잔병을 이끌고 사력을 다해 서쪽을 방어했다. 비티메르도 훈족의 집요한 공격에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고 전사했다. 그가 죽고 아들 비데리크(Viderichus)가 왕에 올랐으나 너무 어려 수하 장군들이 남은 종족을 이끌고 드네스트르 강을 건너 서고트족(western Goths)에 합류했다. 서고트족은 동족을 받아주었다.

 

러시아 남부-우크라이나 초원지대 /위키피디아
러시아 남부-우크라이나 초원지대 /위키피디아

 

훈족은 드네스트르 강을 건너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서고트로 쳐들어갔다. 서고트의 왕 아타나리크(Athanaric)는 드네스트르 강에 방어진을 쳤다. 훈족은 순식간에 서고트 방어진을 무너뜨렸다.

로마의 장군이자 역사기술가인 암미아누스는 이렇게 서술했다. “훈족은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상류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방법을 선택했다. 훈적의 기습에 선발대는 놀라 도망쳤고, 아타나리크의 본대가 뚫렸다. 아타나리크는 반격을 시도했으나 병력 손실이 커지면서 산으로 도주했다.”

서고트족은 퇴각해 로마제국 국경인 다뉴브강에 이르렀다. 훈족왕 발람베르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초원으로 돌아갔다. 얻은 영토가 넓은데다 쉬어갈 필요도 있었다.

 

아타나리크 서고트왕 /위키피디아
아타나리크 서고트왕 /위키피디아

 

서기 376년 로마황제 발렌스(Valens)는 파르티아(이란)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머물고 있었다. 황제는 고트족이 다뉴브강 건너편에 몰려와 살아갈 토지를 달라는 보고를 받았다. 아타나리크는 발렌스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고트족을 로마군에 합류시켜 북방을 방어할 터이니, 다뉴브 강 남쪽의 트라키아에 살 곳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발렌스 황제는 바보같은 결정을 내렸다. 발렌스는 아타나리크의 제안을 매력적으로 보았다. 첫째 다뉴브 강을 지키는 병력이 증강된다. 둘째, 야만족의 습격으로 인구가 줄던 국경지대에 새로운 인구 유입으로 농작물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발렌스는 트라키아 주둔 사령관에게 파발을 띄워 고트족을 트라키아에 들어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376년 가을이 깊어갈 무렵, 서고트족은 다뉴브강을 건너 지금의 불가리아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로마제국은 앞서 프랑크족, 반달족, 앵글로족, 색슨족 등 다양한 야만족의 침공을 받았고, 방어벽이 뚤려 영내에 들어온 종족도 있었지만, 합법적으로 거주를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발렌스 황제는 로마역사에 처음으로 서고트족의 영토내 진입을 합법적으로 허용했다. 그는 서고트족이 로마법을 준수하며 국경수비대 역할을 해줄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서고트족은 곧이어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고 제국을 휘젖고 다닌다. 그들이 로마 땅에 합법적으로 들어온지 100년만인 476년에 서로마는 멸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2021-12-06 01:28:55
부디친 --> 부딛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