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운동, 日 와타나베 부인보다 나을까
동학개미운동, 日 와타나베 부인보다 나을까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4.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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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할 곳 찾아 군집으로 몰려다는 모습 비슷…당국, 유의 요망 권고

 

일본에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이 있다. 특정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김··박씨처럼 일본에서 와타나베(渡辺)가 가장 흔한 성()이어서 금융시장의 개미군단을 지칭하는 용어다.

와타나베 부인은 1990년대에 시작되어 2000년까지 이어진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20기간에 형성되었다. 주식과 부동산의 거품이 붕괴되고 성장률이 저하되고, 제로 금리의 상태가 지속되던 시절에 일본 주부들이 한푼두푼 모은 돈을 어떻게 불릴지 고민하면서 투자를 했다. 그렇게 모인 돈이 국제자본시장에 흘러들어 거대한 자금이 형성되었다. 남성들도 가세해 와타나베 부인은 일본 개미군단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와타나베 부인들은 해외에 눈을 돌렸다. 일본 개미군단은 저리의 자금을 굴려 캐리트레이드(carry-trade)라는 국제자금 흐름을 형성했다. 일본인의 민족성은 집단성이 강한 것처럼 와타나베 부인의 자금도 집단성이 강하다. 한꺼번에 한 곳에 투자하다가 손해를 볼 것 같으면 한꺼번에 빠져나온다. 그러다가 집단으로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와타나베 부인의 흐름은 어느날 갑자기 남아프리카의 랜드화와 터키 리라화를 폭락시키고, 비트코인을 폭등시키기도 했다.

 

올들어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끄러운 때, 주변에 주식투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들은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폭락한 지금이 수십년만에 만난 좋은 기회이며, 이때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어느 사이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용어가 생겻고, 언론들이 이 용어로 공식화하고 있다.

왜 그 많은 단어 중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용어를 붙였을까. 외국인들에게 짓눌린 증권시장을 개미군단이 죽창을 들고 일어나 탈환하자는 의미일까. 그런 것 같다.

 

1894125일 동학농민군은 우금치(牛禁峙) 고개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만여명의 농민군이 고개를 올라 갔다. 정부군은 15백이었고, 일본군이 2백명이었다. 숫적으로 농민군이 10배 이상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정부군과 일본군의 최신무기를 당해내지 못했다.

격럴한 전투가 1주일 동안 50회나 치러졌다. 농민군은 조일 연합군을 밀어붙였지만, 고갯마루 150m 앞에서 관군과 일본군이 쏟아붓는 포탄과 총탄에 더이상 진격하지 못했다. 농민군은 4일간 접전을 펼쳤지만 패배했다. 1210일 조일 연합군은 농민군을 공격해 농민군이 후퇴했다. 이 우금치 전투에서 2만명 농민군 중에서 살아남아 퇴각한 수가 5백명이라고 하니, 전투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학살이었다.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이 패배한 결정적인 원인은 무기였다. 관군과 일본군이 보유한 무기가 농민군에 비해 월등히 우수했다. 농민군의 총은 심지에 불을 붙여 쓰는 화승총으로 사정거리가 불과 100보에 분당 2발을 발사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총도 없는 사람은 죽창으로 싸웠다.

이에 비해 일본군은 사정거리가 400-500보를 넘었고 분당 12발을 쏠수 있는 신형 소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막강한 화력을 지닌 미국제 개틀링 기관총(Gatling gun)을 갖추었기 때문에 농민군은 이 화기를 뛰어 넘을수 없었다.

게다가 농민군은 제대로 군사훈련을 받지 못했고, 전투 기술이 부족했다.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불리한 지형적 조건에서 싸웠다.

 

그래픽=박차영
그래픽=박차영

 

1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증권시장에서 동학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죽창이 호주머니 돈으로 변했고, 국민주권(株券)을 반환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규모가 163천억원에서 26조원, 3월에는 127천억원으로 두배나 불어 났다. 1분기 개인들의 코스피 누적 순매수 금액은 20조원으로, 1999년 이후 분기 기준으로 최대 순매수라고 한다.

일본 와타나베 개미자본이 형성되던 시기와 상황이 비슷하다. 금리가 하락하고 부동산 상승세도 꺾였다. 돈을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 증권시장이 폭락했으니 반등장을 이용하면 대박을 잡을수 있다는 심리가 생겼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줌마버핏(아줌마+워런 버핏)이란 호칭을 받으며 여성투자자들도 나서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성의 참여도가 올들어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한국판 와타나베 부인이다.

 

일본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 이력은 30년 가까이 된다. 그들도 많은 경우 실패를 경험했다.

20151월에도 일본 개미군단이 스위스 프랑화에 대거 투자했다. 그런데 스위스 중앙은행이 유로존 금융위기에 대비해 도입했던 최저환율제를 전격 폐지하면서 스위스 프랑화가 30%나 치솟았다. 그 바람에 일본 개미투자자들이 고배를 마셨다.

20161, 와타나베 부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를 팔아제끼자, 랜드화가 하루에 9%나 폭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전 7시 도쿄 외환시장이 열리면서 일본 개미군단이 랜드화를 대량 매각했다. 와타나베들이 몰려들면서 사자는 주문이 씨가 말랐다.

20185월 일본 와타나베 부인들이 터키 리라화를 투매하면서 리라회가 5%나 폭락했다.

일본 개미들은 그동안 터키 국채가 연 14%의 금리를 준다는 매력에 빠져 터키 금융자산에 대량 투자했다. 터키의 인플레이션이나 성장률, 재정 적자 등은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해초 리라화는 하락기조를 걸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는데다 신흥국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리라화가 가장 큰 타격을 보았다. 리라화는 20% 가까이 하락했다. 그러자 와타나베들이 한꺼번에 리라화에서 탈출한 것이다. 한마디로 터지고 빠진 것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와타나베 부인들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무려 3.0%P나 올렸다.

 

한국의 소액투자를 동학개미운동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다. 동학농민군은 봉건시대 관리들의 폭정에 저항하고 외세와 결탁한 조선 조정을 규탄하며 궐기했다. 그런데 작금의 동학개미군은 개인의 이익을 노리며 운동을 거론한다. 증권 브로커들이 이를 부추긴다. 브로커들은 개미는 반드시 이긴다고 하면서 돈을 유인한다. 애국이란 덫을 씌우지만 터지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어떤 언론은 애국개미라는 칭호도 썼다. 애국은 이타(利他) 행위이고, 투자는 이기(利己) 행위다. 개인 이익을 위해 돈놀이를 하는 사람을 애국 운운하는 것은 개념 없는 표현이다. 이기적 행위에 애국이란 포장을 덮을수는 없다.

 

개미들은 요즘 주가가 반등하면서 많은 이익을 올렸다고 한다. 급락한 주가가 반등하는 사이에 투자 이익을 얻은 것이다. 그들이 산 대부분의 주식은 삼성전자주다. 덕분에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올랐다.

그런데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언제 팔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진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유럽과 미국에선 한창 진행중이다. 미국에선 사망자가 1만명을 넘어섰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위중한 상태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잠시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터진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에서 차익을 노릴수 있다. 그들은 한국 증시를 현금교환기 정도로 알고 있다. 급등락이 심한 한국 증시는 늘상 외국인들의 먹잇감이었다.

 

드디어 관군이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7일 참고자료를 내고 이번 코로나19로 촉발된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는 과거 금융위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향후 주식시장에 대한 예측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인투자자, 특히 경험이 많지 않은 신규 투자자들은 현명하고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구한말 관군은 농민군을 진압하는데 동원되었지만, 지금 관군은 개미군단을 걱정하는 게 달라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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